"커서님"


낮지만 또렸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 눈을 떴다. 아니 눈이 떠진 것 같았다. 흐릿한 빛이 느껴졌다. 잠시 뒤 카메라 초점이 잡히 듯 선명한 상이 맺혔다. 실내였다. 왼쪽에 소파가 보였고 오른 쪽엔 창이 보였다. 밖은 바다였다. 바다를 본 건 아니다. 파란 하늘만 보이길래 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나셨어요?"


왼쪽에서 한 여자가 시야로 들어왔다. 누구냐고 묻고 싶었는데 마치 가위를 눌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답은 못 하실겁니다. 커서님은 현재 시각만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커서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요."


여자가 이 말을 하는 순간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말이 있기 전까지 나는 앞의 시야만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여자가 생각의 장치를 작동시킨 느낌이었다.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병원에 있었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숨쉬는 것도 힘들었다. 이런 몸 상태는 그전에도 두어번 겪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모든 게 귀찮아졌다. 병원에 들어온 후의 삶은 이런 상태의 반복이었다. '잠들면 내일이 올까?' 그냥 지금 이 상태만 벗어난다면 어디라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설령 죽음이라도. 가족들이 흐느끼며 날 부르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깜빡 잠들었는가 싶더니 무언가 희미한 게 보이면서 눈이 떠졌다. 그런데 여긴 병원이 아니다. 내 앞에 있던 가족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커서님은 2065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200년 후인 2265년 9월29일 오늘 다시 태어나셨습니다. 깜빡 존 거 같은데 200년이 지났다니 놀라셨을 겁니다. 의식이 죽어 시간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니 200년의 단절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실 겁니다."


무엇보다 내가 지금 어느 상태인지 궁금했다. 보이기만 할뿐 지금 듣고 있는 것도 듣고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귀를 울리는 그런 들림이 아니었다. 시각 외엔 뭔가 또렸한 게 없는 기분이었다.


"시각만 활성화 되었습니다. 지금 듣고 계신 제 말은 컴퓨터에 입력된 신호입니다. 아 그렇다고 제가 무슨 홀로그램이나 그런 건 아닙니다. 커서님은 지금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컴퓨터에 입력된 신호를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현재 커서님의 의식은 컴퓨터 속에 있습니다. 그 의식은 방금 시각의 설치와 동시에 깨어났습니다. 왜 컴퓨터 안에 있나고요?"

 

그 의문을 떠올림과 동시에 여자의 답이 나왔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이 여자의 뇌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답이 너무 빨랐죠."

 

여자가 분명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제서야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30대 후반 정도였다. 미소를 띨 때 지어지는 입가 주름은 나이를 짐작케 함과 동시에 지적인 인상을 풍겼다. 약간 도톰한 콧날은 쾌활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검은색 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걸쳤고 머리는 잘끈 묶어 넘겼다. 흘러내린 귀밑머리가 화장 안한 얼굴에 여성스러움을 불어넣고 있었다. 


"커서님은 지금 의식은 있지만 아직 육체는 없는 상태입니다. 커서님의 정신은 곧 육체에 이식될 겁니다. 그전에 시각만 활성화 해서 지금 이 세계와 만나고 계신 겁니다. 시각만 있기 때문에 의식은 아직 명료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 이 여자는 나를 계속 커서라고 부르고 있다. 그건 내 온라인 아이디다. 왜 본명이 아닌 아이디를 부르는 걸까?


"커서님의 본명은 물론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커서님을 아이디로 부르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커서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금 바로 해야할 질문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질문은 어떻게 200년 전에 존재하던 내가 지금 다시 부활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말도 안되는 상황부터 알고 넘어가야 했다. 이제서야 의식이 본 궤도에 진입한 것 같았다. 


"커서님이 부활한 원리는 이렇습니다. 22세기 경 인간의 논리구조가 완벽히 파악되었습니다. 그때 인간의 정신이 기본적 논리코드의 조합이란 게 밝혀졌죠. 육체에 DNA가 있듯이 정신에도 DNA, 즉 'SOUL DNA'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거죠. 계속적인 연구결과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기본적 논리코드는 256개라는 것도 밝혀냈습니다. 이 코드를 조합하면 염색체를 조합해서 유전자를 만들 듯이 한 인간의 정신을 만들 수 있습니다. 커서님의 SDNA 코드는 커서님이 인터넷에 남긴 SNS 기록들에서 SDNA 흔적을 분석해서 복원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SNS가 나를 부활시켰단 말인가? 


"예 그런 셈이죠. 커서님의 블로그나 페이스북 기록이 가장 핵심적 분석 데이타였습니다. 만약 그 기록들이 없었다면 커서님을 이렇게 빨리 부활시키기 어려웠을 겁니다. 데이타가 많을 수록 그리고 그 데이타가 집중적이고 직관적인 사고의 결과물일 수록 SDNA코드 분석에 유용합니다."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지? 


"이제 인사드리네요. 커서님 반갑습니다. 저는 부활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민자영이라고 합니다. 23세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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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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