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여년 전 영국엔 노예제 폐지를 두고 극심한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노예무역은 영국 국내총생산의 1/4을 차지했다. 노예무역이 폐지되면 영국경제가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노예무역폐지 반대론자들은 이 경제파국론을 반대논리로 적극 내세웠다. 그러나 영국의회는 경제파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노예무역폐지를 결의했다.

영국경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급발진했다. 노예제를 폐지해놓고 보니 노예제는 노예를 묶는 재갈과 사슬이 아니라 영국경제를 묶는 구속이었다. 노예제는 영국경제를 노예의 노동에 의존케함으로써 생산력 발전을 방해하고 있었다. 노예제가 없어지자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나선 사람들에 의해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이 적용된 분야는 시장의 효율성이 작동해 생산력을 높이기 때문에 시장은 많을 수록 좋다고 믿는다. 그러나 200 여년 전 영국의 경험은 어떤 시장은 사회의 생산력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주 값싼 노예시장의 노동력에 의존한 경제는 더 효율적인 생산력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노예산업 종사자들은 노예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더 값싸게 노예를 공급하는 방법과 노예에게서 최대한의 노동력을 뽑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들의 고민은 경제의 발전을 가로막았고 세상을 눈뜨고 볼 수 없는 추악한 곳으로 만들었다.

만약 의료가 완전히 시장화가 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의료의 시장화는 돈이 없으면 병원에 갈 수 없다는 말이다. 돈이 없으면 그냥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곧 사람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자신의 의료를 대비해 많은 에너지를 쏟을 것이고 그렇게 에너지가 소진된 사람들은 창의력이나 도전정신을 가지기 어렵다. 사람들은 미래를 향한 도전보다는 자신에게 의료를 하나라도 보장해줄 수 있는 회사나 유력자에게 더 의존하려 할 것이다. 시민에서 점점 노예가 되는 것이다. 예속적인 구성원이 많은 사회일 수록 후진적 사회라는 건 지금 세상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의료의 시장화는 의학의 발전도 보장하지 못한다. 의료는 소비자가 그 상품의 질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서비스의 내용은 어렵고 복잡하다. 그리고 상품 중엔 아직 의학적으로 파악되지 못한 부분도 많다. 시장화가 발전을 이끌어내려면 상품의 질을 소비자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의료의 경우 소비자가 상품의 질을 판단하기도 어렵거나 불가능하고 또 소비자가 판단하게 내버려 둬선 안되는 것도 상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시장의 결과는 의료의 발전을 이끌기보다는 의료의 왜곡과 의료효과와 상관 없는 상술을 더 발전시켜줄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의료가 시장이 아닐 때 다양한 계층의 객관적인 자료 확보를 통하여 의학이 더 발전할 수 있다.


명지대조교협의회 공식카페



노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사회일 수록 노동력에서 이익을 찾아내려고 한다. 노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사회라면 노동에 대한 법적 보호 등에 허점이 있고 여론도 그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본가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보다는 그런 허점을 파고드는 데 더 머리를 많이 굴릴 게 뻔하다. 반대로 노동의 가치가 높은 사회는 노동이 법적 여론적 보호가 강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노동이 아닌 시스템과 기술에서 이익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당장은 노동력에서 뽑아내는 게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기술과 시스템의 효율화가 더 높은 이익을 보장한다. 따라서 노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사회는 점점 후진화으로 되고 높게 평가하는 사회는 선진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러라도 노동의 가치는 높여야 하는 것이다.

몇가지 답을 정리해보자. 아무 거나 함부로 시장화 해선 안된다. 의료나 수도, 전기 등을 시장화하면 시장화에 따른 자체의 생산력 발전보다 전체 사회에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사회의 생산력을 향상을 위해선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들에 대한 인간들의 두려움과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그래야 인간은 더 활력적으로 생산과 도전에 임할 것이다.

노동가치를 높여야 한다. 지금 우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의 가치를 낮추고 있다. 비정규직은 노동을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서 노동의 가치를 형편없게 낮추어 버린다. 이렇게 낮추어버려진 노동의 가치는 다시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돌아온다. 인간과 관련된 가치는 무엇이든 높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가 낮아지면 다시 그 가치는 돌아와서 우리를 제한하고 구속한다. 인간에 대한 가치가 낮으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의 가치가 높아져가기 때문이다.
 
2009년 지금 한국에 200 여년전 영국의 노예혁명이 필요하다. 잘못된 시장을 없애고 노동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21세기 산업혁명이 한국에서 가능할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커서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