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처음 봤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 본 건 아닙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구해오신 연극표를 얼떨결에 받아 딱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땐 뭐가뭔지도 모를 때였습니다. 본 게 아니라 그냥 자리에 앉아있었다는 게 맞을 겁니다. 지금 남아있는 기억은 여자배우들이 객석을 향해 악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서야 연극을 한번 봤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소극장에 들어서서 받은 느낌은 '이렇게 바로 보이는 데서 어떻게 공연을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무대에서 객석까지의 거리는 몇미터 되지 않았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무대에서 손을 뻗으면 4번째 줄의 제게 물건도 건내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선 늘 앞자리를 찾는 편입니다. 앞에서 봐야 시원하고 통쾌한 화면을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스펙타클한 영화는 5번째열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소극장에선 마치 강의실처럼 앞좌석 앉기가 꺼려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연기자들의 표정연기를 가까이서 보면 더 재미날텐데 말입니다. 

무대의 연기자가 나를 본다는 부담감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스크린속 연기자는 관객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무대속의 연기자들은 관객의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나의 자세와 태도에 반응하는 무대 위 연기자의 표정을 내가 인지한다면 나는 분명 움찔할 것입니다. 또 상황에 따라 민밍한 순간도 있을 겁니다. 영화나 테레비에만 익숙한 나에겐 이렇게 상호인지가 가능한 관람행위가 처음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나를 평가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같은 관객의 자세와 호응도를 통해서 그들 작품의 가치를 평가할 것입니다. 연기를 하면서 보내는 그들의 시선에 '난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까?' 그런 걱정이 들었습니다. 같이 보던 아내도 연극을 보면 연극인들은 힘들다는 생각이 자꾸 먼저 떠오른다고 합니다. 아내와 내가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을 관람하면서 물질적 고민이 먼저 떠오르는 한국은 참 예술감상이 힘든 곳입니다.

오만 잡생각이 스치는 사이 연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길눈이라는 5명의 젊은 배우가 연극을 리드했습니다. 장난기 어린 젊은 배역들은 연극을 유쾌하게 이끌었습니다. 히바쿠샤는 원폭피해자의 얘기입니다. 공을 던지며 우스꽝스런 대사를 주고받은 이 5명은 무겁고 심각한 중심분위기를 쳐주면서 연극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다섯명의 길눈이들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외부자이면서 또 이야기가 전개될 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메꿔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간호사나 신문기자 등으로 계속 역할을 바꿔가면서 영화와 같이 달렸습니다. 헐리웃 영화에서 이야기를 나레이션하다 극 속으로 녹아들기도 하는 그런 배역들이 극에 재미를 주기도 하는데 길눈이가 바로 그런 역할이었습니다. 확실히 길눈이는 연극의 초반부를 흥미롭게 했습니다. 길눈이 5명의 노래와 안무에 극 초반부 관객들은 눈길을 뺐겼습니다. 

길눈이가 익숙해질 때쯤 주요배역들이 등장했습니다. 변호사와 신부가 나왔는데 그들이 나오자 극의 분위기가 확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신부는 눈을 끔뻑꺼리며 선량한 웃음을 지었고 변호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면을 강하게 응시했습니다. 그들이 연극에 캐릭터를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주 편해졌습니다. 연극 시작 전 들었던 그 불편한 맘이 완전히 가셨습니다. 나도 모르게 몸이 뒤로 젖혀졌습니다. 그전까지 길눈이를 통해 극의 생동감을 즐겼다면 이제 비중있는 캐릭터로 이야기에 몰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캐릭터에 실린 그들의 연기는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연기란 맨 몸이 아니라 이렇게 캐릭터 위에 입혀져야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전형성 위에 이야기가 실려야 받아들입니다. 선량한 신부와 날카로운 변호사가 나오면 그때서야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캐릭터가 배치되지 않으면 이야기는 감잡을 수 없게되고 기대할 수 없는 이야기에 관객은 흥미를 잃게 됩니다.




7시30분에 시작한 연극은 8시30분에 1부를 끝냈습니다. 우리 바로 옆에서 여고생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으니 선생님 추천으로 왔다고 합니다. 학교에 연극을 좋아하는 선생님이 계신가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와서 연극기획자에게 들어보니 사연이 조금 달랐습니다. 연극을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는 게 아니라 연극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학교에 계셨습니다.

'히바큐샤의 배역 중 한 분이 이 학생들이 다니는 삼성여고에서 일주일에 한시간 씩 연극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삼성여고는 연말에 그간의 연극수업을 바탕으로 작품을 공연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연극을 수업과목으로 가르치는 학교는 별로 없습니다. 공연을 보고 나가면서 극단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연극수업은 교장선생님 뜻이 많이 실린 것이라고 합니다.  

 


휴식시간에 학생들이 배우들의 사진을 보면서 구준표가 누구냐며 찾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나중에 극단관계자에게 들은 얘기인데 전날 연극을 본 학생들로부터 연극에 구준표 닮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아이들이 그 배우의 사진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구준표 소문 덕분에 이날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찾았다고 합니다. 실제 사진을 보고 구준표는 아니라며 실망감을 표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 수줍음이 많은 학생은 웅변학원보다 연극수업 받는 게 백배는 낫지않을까요. 그리고 연극은 이 시대의 컨텐츠인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데 아주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삼성여고의 연극수업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구준표일까요?



영화를 보면서도 연기가 최고의 컨텐츠라는 걸 느끼곤 했습니다. 배우의 표정을 클로즈업할 때 영화의 흥분이 최고조에 이르는 걸 종종 봤기 때문입니다. 그때 실제 살아있는 연기를 직접 보면 영화에 대한 이해도 풍부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날 연극배우들의 연기를 직접 본 것은 연기를 바탕으로 한 장르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카메라 한대만 보여주는 화면을 볼 수밖에 없는 테레비와 달리 연극은 무대에 나온 배역들 모두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재밌었습니다.  길눈이로 나온 여성중 한명의 연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간호사로 나올 때 새침을 떠는 연기가 아주 재밌었습니다. 나중에 그 여배우의 연기에 자꾸 눈길이 따라갔습니다. 비행기를 들고 혼자서 몰입하는 연기도 귀여웠습니다. 연극은 테레비와 달리 골라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연극배우들의 시원하고 또렸한 발성도 듣기 좋았습니다. 테레비에서 흔히 보는 씹는 발성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연극의 발성은 아주 많은 것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관객이 짜증 안나게 관객의 주의를 끌어야 하고, 의미를 확실히 전달해야 하고, 배역의 감정도 분명히 연기해야 합니다. 이런 발성으로 2시간을 연기하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닐 겁니다. 연극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발성이 연기의 기본이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9시30분 쯤 연극이 끝났습니다. 두 시간이 언제 가는지 모를 정도로 재밌게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약간 진이 빠지는데 연극은 에너지를 얻은 기분이 듭니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상하게 몸에서 힘이 나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배우들 신명에 내 몸이 공명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바로 몇미터 앞에서 혼신의 힘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을 봤는데 에너지를 받지 않는 게 더 이상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극이 보약이네요. 이런저런 이유로 앞으로 연극 자주 볼 것 같습니다.


* 아래는 연극 히바쿠샤 웹포스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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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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