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다는 대학생 한 분을 인터뷰한 기사를 올렷습니다. 그 기사에 아래와 같이 자신도 정치적인 변화를 겪었다는 어느 분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 분이 정치적으로 변심하게 된 계기는 촛불이었습니다. 중고딩 때만 해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욕하기도 했는데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정치에 관심이 깊어졌고 참여자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치적인 변심의 과정을 겪은 이분에게 인터뷰를 부탁드렸습니다. 질문지를 보냈는데 4일 뒤에 답장이 왔습니다. 바빠서 늦었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정성들인 장문의 글이었습니다. 너무나 하고싶은 말이 많았고 그 생각들을 또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답하느라 4일이 걸렸는데 그래도 적지 못한 부분이 있어 아쉽다고 했습니다. 촛불대학생이라 참여적이라는 건 알고있는데 인터뷰까지 이렇게 참여적일줄이야...

촛불 이후로 이 분은 정말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그 참여의욕 때문에 고초도 몇번 겪었습니다. 물대포를 맞고 도로에서 인도로 튀어나갔고, kbs 앞에서는 노인분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도 했습니다. 촛불대학생의 맹렬참여기를 한번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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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심한 부산사람을 찾습니다 
2. '보수⇒진보'로 변한 후배, 백명은 전도(?)하겠다
3. '보수⇒진보'로 변한 대학생, 태백산맥이 그를 바꿨다




커서 : 본인 소개 해주세요.

촛불대학생 : 대학 2학년 학생입니다.

커서 : 촛불집회에 처음 참여한 날 기억 나십니까?

촛불대학생 : 2008년 5월31일 밤 11시 30분에 누나가 아프리카TV로 촛불집회를 생중계하는 것을 같이 보다가 6월 1일 새벽 2시40분 경에 인터넷에서 사람들과 연락하여 4~5명정도 모여 경복궁으로 갔습니다.

커서 : 집회에 나가게 된 계기는? 

촛불대학생 : 물대포를 쏘고 폭력진압을 하는 경찰에 분노를 꾹꾹 참다가 결국 폭발하여 나갔습니다. 약 3시간동안 동영상을 지켜보며 가면 체포당한다는 두려움과 분노, 같이 싸워야 한다는 투쟁등이 계속 교차하다가 결국 무모하게 나갔습니다=_=;;( 내 한몸 생각하면 절대 해선 안될일이었는데.)

커서 : 같이 있던 누나가 집회에 나가는 걸 말리지 않았습니까?

촛불대학생 : "조심해서 잘 다녀와"하며 걱정하며 제 결단에 찬성했습니다. 아버지는 나중에 누나에게 전해 들으셨는지 "그딴거 가지말라"는 입장을 보이셨고 어머니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집회나간걸 모르십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아셨다간 제가 죽거든요 =_=;;;(신변의 위험 때문에 집회에 나서는 것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커서 : 처음 집회에 나가면서 어떤 각오였습니까?

촛불대학생 : "지금 가만히 있으면 안전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두고두고 치욕으로 남을 것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나서보자. 잡혀가면 2일 동안 구치소에서 외박하자. 지금 나서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들,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게 떳떳할 수 없다" 이런 일념과 각오로 나섰던 거 같습니다. 당시 잡힐 수 있다는 공포감도 컸지만 그보다 컸던것이 경찰의 폭력진압과 침묵하는 내 자신에 대한 분노가 더 컸었습니다.

커서 : 혹시 체포되신 적은 있습니까? 주변에는?

촛불대학생 : 체포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있었죠. 부모님 몰래 하는 거다 보니까 만일 잡혀서 시위하는 걸 아시면 엠비랑 싸우기전에 집안내부에서 부모님을 상대로 싸울 각오를 해야할지도 모르니까요.(공부하겠다고 방학 때 기숙사 간 놈이 시위를 해? 하면서 혼내시면 할 말이 없었을 겁니다. 소심한 자의 안습 =_=)  체포를 당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상황파악이 늦어서 임기응변이 늦는데 주위의 분들이 도와주셔서 운 좋게 잡힌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안 잡힌 대신 다른 분들이 체포당했다고 생각하면 씁쓸해지죠.(산 자의 고통.... orz) 제 주위 사람들인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시위를 안 나가니 잡힐 일이 없었고, 대신 카페회원분들이 잡힌 분이 3명 정도 있었던 걸로 압니다.  

커서 : 5월31일 저녁 당시 인터넷에서 연락하여 같이 나간 사람들은 그때 처음 본 사람들입니까? 대단한 열의인데 어떤 분들이 그 새벽에 나오셨던가요? 지금은 만나시는 분이 있는지요?

촛불대학생 : 모두 처음 만난 분들이었습니다. 1개월된 딸의 아버지, 20대 커플, 임산부(이분은 안전문제로 같이 못가셨지만 대신 김밥을 싸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했던 ㅠㅠ), 그리고 기억이 나지않는 나머지 한사람 등 총5분을 뵈었습니다. 딸의 아버지 분께서 동영상에 댓글로 '경복궁 같이 가실 분 연락주세요!!'하면서 휴대전화 번호를 올리셨고 이 번호로 연락을 하여 모여서 같이 갔었습니다. 지금은 연락을 못 합니다. 6월 1일때 강제진압으로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려 각자의 생사를 알 수 없었고 휴대전화마저 물대포로 물 먹어서 맛이 가버렸었습니다.(덕분에 어머니가 휴대전화기 왜 맛 갔냐 물어보실때 변기에 빠뜨렸다는 어처구니 없는 변명을 했었죠 =_=;;)

커서 : 촛불집회에서 본 장면 중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어떤 게 있습니까? 시민의 모습이나 경찰의 모습 중.

촛불대학생 : 7월 5일 서울광장에서 50만명의 국민들이 모여서 연대를 하였던 것, 밤새도록 비를 맞아가면서 서울거리를 돌아다니며 엠비타도를 외쳤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덤으로 물대포 쏘기전에 얼른 해산하라고 경고하던 여경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나는데 전경 10명보다 짜증지수를 올려주시던 1등 공신이었습니다.(그런 짓 하려고 경찰하나?) 

커서 : 아고라 등을 보면촛불집회를 거치면서 과거 70-80년대 민주투사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목숨을 내놓다시피 운동한 사람들에 대한 요즘 세대의 존경심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데 촛불대학생님은 그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촛불대학생 : 당연히 저도 존경합니다. 그 당시 70-80년대에는 민주주의 관련 서적이 금지되고 대학가에는 경찰이나 군대가 운동장에 캠프를 하며 감시했다고 하던 정도이니 요즘이랑은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죠. 다만 그 때의 민주화의 열기를 좀 더 이어나가서 친일파 및 독재정권에 충성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역사청산을 못한게 아쉽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재판원들도 보수파가 아닌 진보파 사람들로 넣었어야 했는데... 하는 등 아쉬움이 있죠.

커서 : 당시 한달 이상 촛불에 나가면서 생활이 말이 아니었을텐데 한창 촛불집회에 참여할 때 생활상을 좀 얘기해주세요.

촛불대학생 : 질문을 보니 촛불들고 다닐 때 피폐한 생활을 상상하신거 같은데... 결코 피폐하지 않은 생활을 했습니다(실망하셨다면 죄송=_= 인터뷰하는데 결코가 많이 나오네요 ㅎㅎ) 제가 학교가 안성에 있어서 촛불집회에 나갈때마다 지하철을 평택역에서부터 시청역까지 2시간을 걸려서 갔습니다. 서울광장, 안되면 청계광장(소라광장), 경복궁, KBS 정문 등등에서 집회를 했죠. 그러다 보니 밤늦게까지 서울에서 촛불집회하고 아침늦게 겨우 기숙사에 도착해서 늦잠을 잠자던 경우도 2,3번 정도 있었습니다. 외출비는 그동안 나름 모아둔게 있어서 그걸로 촛불나가는데 문제없었고, 밥도 기숙사에 있으면 먹을 수 있었고, 집에서 촛불집회로 싸울 일도 없었으니 문제 없었죠. (공부를 위해 간 기숙사가 무슨 아지트가 되어버린 느낌이...=_=?)

커서 : 정치적 각성의 계기가 촛불집회라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가장 많은 각성이 되었습니까? 

촛불대학생 : 촛불집회 모든 것이 놀라웠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수 많은 사람들과의 연대, 진정한 민주주의 토론, 경찰의 폭력, 물대포의 강렬한 타격(맞고 도로에서 인도로 날라갔죠--;;)등등.... 그 중에서 가장 자극을 받은 것은 경찰의 폭력 진압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겉은 민주주의공화국이지만 속은 언제나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언제든지 단숨에 독재국가가 될수 있는 나라' 라는 속쓰린 진실을 알게 해주었죠.(노무현 전 대통령때 기본적인 상식이라 믿었던 것들을 모조리 뒤집어 주시던 전경들과 엠비각하, 어떤의미로 참 대단하더군요 -ㅛ-) 

커서 : 촛불 이후 친구들이나 주변의 여론은 변한 걸 느끼십니까? 주변에 정치적 변심한 친구나 지인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노대통령 서거 후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혹시 노무현대통령 서거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나요?

촛불대학생 : 처음에는, 그니까 2008년 때에는 그렇게까지 기대할 만큼 여론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동기들에게 '집회에 나가서 물대포맛, 방패맛 좀 보고온 별난 학생'으로 찍힌 정도였고 여전히 주위의 여론은 현 사태에 무관심했죠. 2009년이 되니까 저랑 친한 아이들도 저때문인지, 인터넷등으로 명박이의 한심한 행태를 봐서 쌓인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이명박을 싫어하더군요. 노 전 대통령서거때는 아르바이트 하는 부서의 한 선생님이 이명박이 노무현을 죽였다고 비판하시기도 했습니다. 덤으로 7월 국회의 언론악법 날치기 상정하는 걸 보고 네이트 온에서 분노를 표출하던 중학교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하여 조금씩이라도 안 좋다고 생각하는 시각이 늘어가는 거 같습니다.

커서 : 촛불카페 활동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활동인지 소개해주십시오.

촛불대학생 : 촛불집회 함께가기라는 카페를 통해 활동했습니다. 혼자 촛불을 들기 뻘쭘하거나 어디서 모일지 등을 모르던 사람들이 모여서 촛불집회를 하기위해 만들어진 카페인데 저는 그냥 일반회원이었죠 ㅎㅎ 집회가 결정되어 메일로 알려지면 정해진 장소로 가서 사람들과 모여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커서 : 촛불대학생님은 정치적 견해가 다른 분(친구 또는 어른)과의 논쟁도 마다하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논쟁의 사례가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그 사람들이 촛불에 대해선 어떻게 얘기합니까?

촛불대학생 : 제가 논리적인 말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웬만해선 논쟁을 않겠지만 견해가 다른이가 너무 심하다 싶을시(엠비찬양등)에는 열받아서 논쟁을 할거 같습니다. 논쟁대신 몸싸움은 있었습니다. 2008년 7월 23일에 카페에서 KBS에서 모이기로 하기로 해서 갔는데 너무 일찍 나와서 저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 혼자 KBS 안을 돌아다니다가 후문쪽으로 나왔는데 노인분들이 집회를 나오셨는지 40명 정도 모여있었습니다.(손에는 모두 사이좋게 중앙일보를 들고 있더군요) 그냥 뭐하나 궁금해서 보는데 정연주 사장의 퇴임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보면 볼수록 말이 안되는 어불성설을 늘어 놓더군요. 한 10분정도 그 집회 안에 들어가서 보는데 엉터리 주장을 하는 놈이나, 그걸 따르는 노친네들이나 한심하고. 열받아서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국민을 선동하지 마라!' 말 하면서... 그런데 노인분들이 절 죽이려고 하시더군요. 지팡이로 때리고 손으로 할퀴시고 주먹도 날리시고...(늙으신 분들이 저를 때리시기 위해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의외로 건강하시더라구요--;;) 그런 상황에 40대 남성 3명이 저에게 다가와서 '좋은 말 할때 얼른 꺼지시지?'하는 긴박한 상황. 결국 저는 도주했습니다 =_=;;(노인들의 패죽일거 같은 분위기에 겁이 질려서;;) 그렇게 도주를 하는데 노인들은 저를 향해서 돌과 생수병을 던지시며 난폭한 배웅을 해주셨죠.(다행이 쫓아오진 않았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죠. KBS 건물로 도주했는데 거기까지 쫓아오면 제대로 다굴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잘못한 부분이 있었네요. 말로 먼저 풀어야 했는데 성이 나서 몸으로 부닥친 거.... 근데 과연 그 분들에게 말이 통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아래 부분은 촛불대학생님이 자문자답한 부분입니다. 인터뷰로 꼭 전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 소개합니다.

촛불대학생(질문) : 작년 촛불집회에 20대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모습이 보이지않아 20대가 보수화 되었네, 정치에관심없네, 10대만 못하네 등이 얘기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촛불대학생(대답) : 20%는 맞지만 80%는 잘못되었다는 것이 나의 소견입니다. 우선 맞다고 하는 이유는 내 대학 친구들에게 정치관련 이슈를 애기해 보았자 별로 큰 관심들을 갖지 않았습니다. 08년 2학기때 '현대인과 윤리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그 시간에 의료민영화반대에 반대하는 발표를 20분동안 했습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들으니 모두 엄청 짜증냈다고 ㅠㅠ(발표시간은 최대 10분이었는데 나땜에 못 쉬었다고 불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촛불집회 관련 발표하시는 분이 있으셨는데 촛불집회에 나갔던 사람들 손을 들어보세요 할때 나밖에 손을 든 사람이 없었습니다--;;;

잘못되었다고 하는 이유는 앞장서서 투쟁하는 학생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고라에서는 청년행동(일명 레드캣), 서울지역 대학생 반독재 투쟁위원회등이 있으며 4월달에 전국 총학생회 회장들이 모여서 삭발투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20대들이 나서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적어도 이명박 정부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적어도 올해는 이명박 찬양하는 20대를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초중고 시절부터 명문대 입학을 위한 입시전쟁에 세월보내다보니 남을 밟는 것에 익숙해 연대라는 단어조차 생소합니다. 요즘 취업난을 스펙을 올리는 것이 상책이다라는 생각들을 하는 것도 한 몫하기도 합니다. 또한 등록금에 대한 부담도 있어서 소극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국립대라고 하지만 1학기당 2백만, 1년당 약 5백만원입니다.)


* 촛불대학생의 이야기 후편이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신문의 중요성을 깨닫은 촛불대학생님이 자신이 왜 2개의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지 얘기합니다. 신문은 '보탬'이 아니라 '쇠뇌' 수준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촛불대학생님의 얘기엔 새길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 정치적으로 변심한 분들을 찾습니다. 보수적 정치인식을 가졌거나 지역주의에 갖힌 정치적 인식에 있다 탈피한 사람들을 찾습니다. 당신의 변심을 얘기해주십시오. 영남사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보수에서 진보로 변한 분들이라면 됩니다. 당신의 그 극적인 정치적 변화를 듣고 싶습니다. 메일 주십시오. 가까운 지역은 대면 인터뷰도 가능합니다. 여긴 부산입니다.

po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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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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