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브란스'를 보면 루이16세의 왕비 마리앙트아네트가 단두대에 목이 잘렸을 때 자신의 잘린 몸을 눈으로 확인하고 죽었을지 궁금해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잘린 머리가 몸을 볼 수 있다는 얘기에 의문을 품었던 남자는 나중에 자신의 잘린 목을 확인하고 '어! 진짜네' 하는 표정으로 죽게됩니다.
팀버튼의 영화는 괴기하지만 잔인하다고 느끼진 않습니다. 그건 세브란스처럼 영화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산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은 사람은 삶에 간절하지도 않습니다. 간혹 어떤 장면에선 삶에 매달리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는데 영화가 그런 애원에 별 신경을 쓰지않아 관객도 그냥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죽음과 잔혹한 장면에도 실감을 못합다다. 죽는 게 죽는 거 같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전의 팀버튼 영화와 달리 스위니토드는 죽는 게 죽는 거 같습니다.
스위니토드는 죽음을 관찰합니다. 영화는 면도칼로 목이 그이고 이층에서 일층 땅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사람들의 죽음을 관찰합니다. 피는 분수처럼 튀어오르고 얼마만큼 피가 솟구치고나면 칼로 그어져 지지력을 잃은 목 앞쪽으로 머리가 드리웁니다. 그리고 조니뎁이 페달을 밟으면 몸체는 고기처럼 이층에서 일층으로 떨어집니다. 영화는 죽음을 물리학적으로만 봅니다. 죽음에 별다른 이유나 과정도 없습니다. 죽는 자들에 대해 아무런 교감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영화속에 죽는 자들은 그저 죽음의 장면을 위해 동원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세브란의 궁금증이 떠오릅니다. 떨어진 사람은 이 상황을 언제까지 의식하고 있을까요. 땅에 떨어진 후에도 얼마간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초등학교 때 집에서 키우던 개가 내 앞에서 죽은 적이 있습니다. 주인이 집을 나서는 걸 눈치채고 신이나서 먼저 계단을 내려가다 늦장부리는 절 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만 승용차가 덮쳐버렸습니다. 절 정말 많이 따르던 놈이었습니다. 죽은 개를 볼 용기가 없어 바로 방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나중에 옆집 아저씨가 그럽니다. "죽은 강아지 개장수가 데려가데"
유럽인들에게 친구인 개가 한국인에겐 얼큰한 해장국이 됩니다. 인도인에게 숭배대상인 소가 나머지 세계인에겐 맛있는 고기가 됩니다. 눈치까지 살피며 친구같이 지내던 그 녀석도 개고기집 주인에겐 '왠떡이냐' 싶은 고기였습니다. 사랑받는 생물체였고 다른 곳이라면 친구나 영물로 떠받들여졌을 존재가 누군가에겐 고기라는 점에서 영화 속 인육은 약간의 설득력을 가집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티벳에선 인간이 먹진 않지만 짐승에게 인육을 바치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어딘가엔 죽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의 살을 먹는 장례문화도 있습니다. 만약 인류문화가 죽음을 달리 해석했다면 어쩌면 인간은 인육을 먹었을지 모릅니다. 러빗부인의 인육파이에서 살인을 빼면 어떨까요. 매일같이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수십만의 인육을 땅에 묻고 다른 종을 통해서 고기를 얻는 것이 어찌보면 비효율적이고 인간만의 이기적인 행태라고 볼수도 있지 않을까요. 너무 무서운 상상인가요? 영화만큼만 상상력을 발휘해봤습니다.
조니뎁의 연기는 훌륭합니다. 그의 뛰어난 표정연기는 스위니토드의 살인행각에 대한 관객들의 영화적 의구심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반면 러빗부인이 그를 돕는 이유는 좀 궁금합니다. 그러나 조니뎁의 열연도 영화가 끝나면 별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조니뎁이 생각 안나는데 다른 사람이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죽음을 관찰하는 장면의 무게에 영화의 정서가 모조리 빨려들어가 버렸습니다.
애초에 팀버튼이 관심을 가진 건 원작의 면도칼과 인육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성공했다 볼 수 있습니다. 정서적인 면도 노렸다면 실패한 영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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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스위니토드 볼 기회가 생겼는데 포스팅 읽으니 꼭 보고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커서님 행복한 설날 보내세요. ^ ^
솔직히 그럭저럭은 봤는데 재밌는 거 같진 않아요. ^^;;
내용보다는 연출에 더 비중을 두고 감상해야할 영화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야연, 물랑루즈등의 영화가 그러했지 않았나요. 그 둘 말고 또 떠오르는 것이 없네요... 스위니토드도 내용 진행에서 흥미롭거나 할 점은 못 찾았지만 분위기, 분장 등의 연출은 만족스러웠습니다. 러빗부인은 스위니를 사랑했기 때문에 도왔고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었고 그의 전처를 숨겼지요. 스위니의 딸을 좋아하던 그 청년도 단 한번 눈이 마주쳤다고 사랑에 빠져 그 여자를 구하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참 짜증스럽지 않았나요. 이래서 어린 놈들은..... '사랑'이라는 건 참 편한 핑계가 되는 것 같죠.
저도 말씀하시는 그런 연출은 재미있었습니다. 근데 원래 기대한 거라 크게 인상받진 못했죠. 뭐라 평하긴 어렵고 그냥 영화의 감상이 그닥 남아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랑을 참 편한 핑계로 쓴 다는 부분은 동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