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김주완김훤주 블로그 http://2kim.idomin.com/1289




지난 12월 5일 갱상도 블로그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를 간담회에 초청했다. 

먼저 귀가 기울여졌던 말은 가족소개였다. 강기갑 대표는 3남 1녀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아이가 넷이다 된다는 게 눈길을 끈다. 요즘 세상에 셋만 나아도 상대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처다보는데 넷씩이나.
 
강기갑 대표 자신이 4남4녀의 다복한 가정에서 자라서 아이를 많이 가진 건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강기갑 대표의 종교도 한 몫했을 듯 하다.

출처 : 강기갑 홈페이지

 

강기갑 대표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한때는 수사를 꿈꾸던 사람이다. 강기갑 대표의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생명의 선택권을 부모가 아닌 아이에게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수사의 길로 들어선 배경이 약간 독특하다. 강기갑 대표를 수도원으로 불러들인 데엔 종교적 열정보다 사회 변혁의 열정이 더 컸다. "기도를 통해 자기정화 자기완성을 하는 것이 어쩌면 전세계 사람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한 수사의 말이 강기갑 대표의 가슴에 와닿은 것이다. 


출처 : 강기갑 홈페이지



강기갑 대표가 3남1녀를 나이별로 소개해준다. "첫째가 고2, 둘째 중3, 셋째 초등학생, 넷째는 7살 유치원생입니다." 막내가 유치원생?


출처 : 다음검색



지금 강기갑 대표 나이가 얼마인가? 53년생이면 63, 73, 83, 93, 2003 해서 50이고 거기다 6년 더해지니까 한국 나이로 57이다. 그렇다면 막내를 51에 보셨다.


위 트윗은 미디어몽구님이 한 말이 아니라 혜련이라는 분이 한 말을 몽구님이 전한 것입니다.



이 얘길 트윗에 전하니 반응이 뜨겁다. 그럴줄(?) 몰랐다는 사람도 있고 그 배경을 아는 사람의 설명도 있다.


출처 : 강기갑 홈페이지



위 트윗의 '@heyun'님 말처럼 강기갑 대표는 결혼을 늦게했다. 그런데 자신도 급하면서 오지랍 넓은 짓을 하셨다. 결혼도 못하신 분이 농촌총각 결혼대책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신 것이다. 


출처 : 강기갑 홈페이지



농촌총각들을 결혼시켜주다보니 강기갑 대표도 짝이 그리웠을까? 강기갑 대표도 사랑에 빠지게 된다. 같은 사무실에서 결혼대책위원회의 간사를 맡아 활동한 박영옥씨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울기도 하고 기도도 했지만 사랑하는 그녀를 떨쳐낼 수 없었다. 결국 강기갑 대표는 어느날 서울대 캠퍼스에서 "박간사 내가 니를 사랑하는줄 몰랐더나?" 라는 멋진 사랑고백을 하게 된다.

남들을 결혼시켜주더니 강기갑 대표도 2년 뒤인 1991년 5월 그 보상을 받아 박영옥씨와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결혼 당시 강기갑 대표는 39이고 신부인 박영옥씨는 25이었다. 강기갑 대표에게 유치원생 막내가 있다는 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부부의 14살의 나이차가 50을 넘긴 나이의 강기갑 대표에게 막내 아들을 안겨줄 수 있었던 것 같다.


강기갑 대표를 존경한다는 분이 그린 인두화. 수덕사에 있다고 한다. 출처 : 강기갑 홈페이지



지난 18대 총선을 앞두고 강기갑 대표는 아내에게 무릎을 끓었다고 한다. 그간 강기갑 대표를 따라주던 아내가 가정과 정치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강기갑 대표는 바리 무릎을 끓고 이렇게 빌었다고 한다.

"내가 후보 사퇴하면 농민과 노동자를 배신하게 된다.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낙선하면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말.) 그러나 결과를 흔쾌히 받아들일려면 쉽게 해선 안된다. 온몸을 던져 죽자사자 달려들어야 한다."

지면 정치를 물러나겠다는 강기갑 대표의 말은 박영옥씨를 움직였다. 박영옥씨는 그 후 강기갑 대표가 "집사람이 저 보다 더 운동 많이 했다."고 말할 정도로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선거운동 기간 중 부부는 "밤마다 그날 다닌 선거운동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이러다 당선되는 거 아니냐면서 웃다가 울다가 했다"고 한다. 


출처 : 강기갑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강기갑 대표는 사실 18대 총선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직전까지 FTA반대 운동 하느라 선거운동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강기갑 대표가 선거 전에 본격 뛰어든 것은 4월 9일 선거일을 한 달 정도 앞둔 3월초부터였다.


출처 : 강기갑 홈페이지



어떻게 한 달만에 한나라당의 아성에서 이런 역전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강기갑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전국의 농민 수천명이 강기갑 선거사무실을 다녀갔고 농민단체 대표들은 자기 돈으로 밥먹고 자면서 사천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태안주민들은 보름간 사천을 다니면서 강기갑 대표가 태안에서 어떻게 일했는지 사천시민들에게 자기 일처럼 들려주었다고 한다.  


출처 : 강기갑 홈페이지



강기갑 대표는 그러나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강기갑을 지역의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사천시민들이라고 말했다. "사천시민을 하늘처럼 받들 것"이라고 얘기했다. 


출처 : 강기갑 홈페이지



강기갑 대표는 올해 10월 2008년 총선이후 가장 중요한 선거를 하나 치렀다. 10.28재보선에서 야 4당이 지지한 안산의 임종인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그러나 임종인 후보는 낙선하고 말았다. 


출처 : 김주완김훤주 블로그 http://2kim.idomin.com/1289



강기갑 대표는 임종인 후보를 종자후보라고 표현했다. 야 4당이 낸 야권대연합의 종자후보가 당선되었다면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반mb 선거연대의 좋은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을 거라며 안산에서 야권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것을 많이 안타까워했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마들 연구소에서 강연하는 모습. 대출처 : 강기갑 홈페이지



그러면서 강기갑 대표는 반mb선거연대에 대해 mb심판을 목적으로한 묻지마 연합은 안되며 좀 더 진보적 내용을 담은 심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연합에서 민주당을 진보적으로 당길려면 진보진영의 힘이 더 커야 하는데 그럴려면 진보진영이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강기갑 대표 자신이 진보진영 통합을 위해 움직이고 있고 내년 1월 쯤에 구체적 로드맵도 나올 것이라고도 얘기했다.


출처 : 김주완김훤주 블로그 http://2kim.idomin.com/1289



12월 5일 10시30분부터 12시30분까지 갱상도 블로그의 블로거들과 강기갑 대표는 2시간의 간담회를 가졌다. 강기갑 대표의 말은 듣기 아주 좋았다. 말을 차분하게 하면서도 겹치지 않았다. 그러니까 말에 힘이 넘쳐났다. 그의 말에서 생각의 곧음이 느껴졌다. 정말 말을 잘한다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다.

강기갑 대표가 이날 간담회에서 했던 말 중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누군가 민주노동당이 내세우는 자주와 평등 중 '자주'가 맘에 걸린다고 하자 그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말이다.

"사랑에는 정의가 기반되어야 한다. 정의가 기반되어야 사랑이 꽃핀다. 마찬가지로 자주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자주가 확립되어야 평등이 꽃필 수 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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