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노조 집회 때였습니다. 집회 땐 공연 한 두개 정도가 편성되는데 보통은 풍물패나 노동가요 노래패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엔 집행부가 젊은 노조원들을 위해서 그런건지 비보이와 비걸을 불렀습니다.
애초 그런 기대를 하지 못한 노조원들은 공연이라길래 보나마나 그거겠지 하며 심드렁하게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톤이 전혀 다른 힙합 음악과 함께 늘씬한 몸매의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댄서들이 무대로 올라와 격렬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시끌벅적하던 대부분이 남자인, 천명 가까운 군중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시선은 무대 위의 여성댄서의 흐느적 거리는 몸에 고정되었습니다. 속된 말로 남자들 침 넘어가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아주짧았습니다. 다음 순간 성적 대상을 은밀히 지켜보는 내 자신이 느껴졌고 누군가에게 비난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집단의 침묵이 민망하게 느껴졌습니다. 고등학교 때 쇼프로에서 김완선이 나오자 갑자기 그날 모인 남자 가족들이 모두 조용해졌는데 그때의 바로 그 민망함이었습니다. "고등학생 쯤 되보이는데 얘들 처다보고 이게 뭐하는 짓이지" 아마 이런 생각이 자동적으로 스쳐갔을 겁니다.
얼마 뒤 침묵을 깨는 소리가 어디선가 나왔습니다. "야 쥑인다. 집행부가 화끈한 거 준비했네" 그제서야 환호와 고함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박수와 웃음이 시작되었습니다. 댄서들도 더 신이 나서 추는 듯 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침묵을 깨는 소리가 나오기 전과 후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게. 그 목소리가 나오기 전엔 음침한 분위기였는데 목소리가 터지자 밝고 건강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침묵을 깬 그 목소리는 도대체 뭘까?
그건 바로 표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젊은 육체를 보고 아무도 말을 못할 때 사람들은 왠지 모를 민망함과 음침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 아름다움을 얘기하자 그제서야 다들 동의의 박수와 웃음을 보낸 겁니다.
대학시절 인기있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표현을 잘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표현을 하지 않고 불안한지 훔쳐보는 지 모를 눈빛을 주는 상대에게 여자들은 불안함을 느끼고 피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실패했던 대부분의 시도들도 상대를 바라보고 침만 삼키며 건강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연애들입니다.(물론 표현을 하는데엔, 얼마나 자신을 가지는 가 하는 경제적인 원인도 있지만 여기에선 그런 건 따지지 맙시다)
중학생들의 알몸 졸업식이 화제입니다. 특히 여학생들이 다 벗었다는 것이 주된 놀라움의 대상입니다. 대부분 비난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어떻게 애들이 그럴 수 있냐는 겁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애들이니까 그러는 겁니다. 애들 때 아니면 그러지 못합니다.
그들은 한 때의 퍼포먼스를 즐겼습니다. 그 퍼포먼스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벗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벗었다는 것은 흔치않은 일이고 쉽게 해선 안될 일이지만 비도덕적인 일은 아닙니다.
벗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벗은 몸이 우리의 시선을 성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린 학생들의 몸을 보고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아예 안보여줬으면 이런 민망함을 느끼지 않았을텐데 하는 원망도 듭니다. 눈으론 소비하면서 입으론 닫고 있는 자신의 이중성이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애들한테 화낼 순 없는 겁니다. 자신이 받은 자극을 표현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내부적 긴장을 애들에게 돌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애들은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를 했고 당신은 그걸 표현해서 말하면 됩니다. 애들이 당신을 부도덕하게 유혹한 것도 아닌데 화낼 수는 없는 겁니다.
이건 심각한 척 눈을 아래 위로 부라리고 세상 뒤집어 진 것처럼 호통칠 일은 아닙니다. 그냥 가볍게 타이르고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입니다.
고 녀석들 어른 다 됐네." "저 튼실한 허벅지 보래이" "가슴도 빵실하데이" "어이구야 허허허" 묻어두지 말고 이정도로 표현하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순간 우린 그들의 벗은 몸을 좀 더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건강함은 벗었냐 안벗었냐가 아니라 그걸 보는 태도에 있습니다. 표현의 출구가 있는 사회는 건강하고 그걸 막는 사회는 곳곳에 음침함만 쌓아 불건강해집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성을 즐기는(소비하는) 방식이 골목골목의 단란주점일 겁니다.
전 한발 더 나아가 여중생들이 여성으로서 보여준 그 전위적 모습이 반갑습니다. 그들의 그런 시도가 이 사회의 여성의 모습을 새롭게 했다는 점에서 기쁩니다. 그렇게 여성의 몸을 거리에서 공개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음침함을 해소할 수 있다면 몇번 더 해도 상관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건 표현 안하는 자들입니다. 댄서들 앞에서 침묵을 깬 어느 노조원의 목소리처럼 그 여학생의 몸짓은 우리 사회의 위선을 한겹 더 깨낼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여중생들의 그 벗은 모습은 한국여성사에 기록될 혁명의 순간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거다란 블로그]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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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 요즘 2MB과, 학교에서 5년간 봤음 됐지 이제는 그만 마주치고 싶은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뉴스에 너무 많이 등장해 뉴스를 안보고 살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있었군요,
놀러온 김에 여러 포스트 읽고 갑니다. 자주 놀러올게요.
감사합니다. 자주 오세요.
비난 일색인 요즘의 졸업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 잘 봤습니다. 알몸 학생들을 보며 불편해하는 어른들과 노조의 B걸들, 그리고 TV의 김완선의 연결이 참 재밌네요. 저는 그리 옹호하는 입장은 아닙니다만 우리 사회에 훨씬 더 많은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엔 정말 공감이 갑니다.
표현이 많을 수록 선진국이죠. ^^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 ^^
여중생을 성적대상으로 인식하며, 혼자서 부끄러워하고, 훔쳐보고, 앞에서는 그들을 비난하는 행태.. 이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색다른 시선을 주시니.. 오히려 이런 시선이 희망처럼 느껴집니다.
혁명이 별거 아니죠. 로자파크 여사는 백인에게 자리를 안비켜준 고집으로 시대를 앞당긴 위인 대접 받죠. 그렇게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하나 둘 앞당기는 게 가능합니다. ^^
저는 나름대로 다른 결론에 다다라서 수긍은 못하겠지만, 저와는 다른 관점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적으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 ^^;;
"야 쥑인다. 중학생들이 화끈한 거 준비했네" 이렇게 받아드리라구요? 허허
딸 가진 부모로써 그런 졸업식은 안보내고 싶네요..
저도 딸을 가진 부몬데 사실 적으면서 고민을 좀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가진 부모만 걱정 안하고 딸 가진 부모만 걱정해야 한다는 게 좀 말이 안돼는 거 같아서
비밀댓글 입니다
다구리 식의 비난 일색 중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좋은 관점을 보여주고 계시네요. 졸업식 관련 내용이 여러 블로그에 올라 오고 짐짓 그들을 꾸짖는 척 하면서 서로서로 자극적인 사진들을 올리는 모습들을 보고 많이 실망했었습니다. 하지만 위의 댓글처럼 딸 가진 부모 입장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 그분들 야단치지 않을까 사실 조마조마 하기도 합니다. ^^;;
참 재미있고 색다른 시선이지만, 왜 저는 위험해 보일까요..
"고 녀석들 어른 다 됐네." "저 튼실한 허벅지 보래이" "가슴도 빵실하데이" "어이구야 허허허"
글쎄요.. 이것이 바로 성희롱입니다... 아이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여기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보다 표현하는게 좋다면, 왜 표현의 궁극인 스킨십은 안되는걸까요? 왜 원조교제가 안되는 걸까요?
직장 직원이 예쁜 미니스커트를 입고 왔다고 해서 쳐다보는 것으로 모자라 "역시 XX씨는 다리가 죽여~"이런 표현이 자연스럽다고 해서 그 말을 듣는 사람도 과연 그럴지는..
자연스러운 표현은 그럴만한 자리에서, 그럴만한 사람과 해야죠.
성희롱 찬양론이 아니길 바랍니다. 좋은 의도로 던지는 표현이 화살이 되서 박히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참 많이 고민한 부분인데 바로 지적해주시네요. 지적 일리 있습니다. 좀 더 다른 표현을 생각해봤어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글쎄요.
오히려 그렇게 대놓고 벗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고 녀석들 어른 다 됐네." "저 튼실한 허벅지 보래이" "가슴도 빵실하데이" "어이구야 허허허"
이정도의 발언이 성희롱이 된다면...
그건 좀 웃기네요.
듣는 당사자가 수치심을 느낀다면 성희롱이 되겠지요.
알몸 졸업식을 두고 참 많은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대다수의 글이 '알몸 졸업식' 주인공들에게 초점을 맞춘 비판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님의 글은 다른 분들이 댓글 남기신데로 새로운 관점에서의 접근이네요.
알몸 졸업식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던 우리라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비판하지 말자'라는 손쉬운 기획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성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을 이야기 하신 점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새로운 기획과 새 시선을 가지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저에게 공부가 되는 좋은 글이 었습니다.
글쎄요님이 이야기 해주신 것 처럼 표현이나 내용상 부족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제 의견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평가했을 때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근본적 문제제기와 접근을 가진 것으로 이 글은 좋은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종종 찾겠습니다! 좋은 하루보내세요!
쭉 읽어 봤는데.. 동의하진 않지만 나름 희망적인 관점이라 생각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