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별 기대하지 않았다. 들려오는 소리가 영화에 대한 환호성이 아니라 안도의 숨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앞선 리뷰들의 행간을 이해하면 "휴 그나마 볼만했다" "액션이나마 살아 다행이다"라는 식이었다.
2007년 헐리우드의 이벤트만 요란한 허접시리즈들이 이어지면서 리뷰어들도 이제는 날카로운 비판에 안스러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같았다.
그들이 안도했던 자동차와 헬기의 충돌, 마지막 전투가와의 대결 등 볼만했다는 액션은 확인했다. 그러나 역시 짐작대로였다. 그외에 더 이상 볼거리는 없었다.
다이하드 1, 2 에서 관객이 환호했던 것은 맥클레인이 아날로그 방식으로도 중무기와 디지털로 무장한 테러범을 설득력있게 제압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맥클레인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 열세의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과정을 기가막히게 이끌어냈다. 다이하드 시리즈의 재미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3편이 실패한 것은 대결에서의 우위의 근거가 너무 어렵고 작위적이어서였다. 그 다급한 와중에 테러범의 수수께끼를 풀고 있는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설정이었다.
그런데 이제 4편에선 바로 그 다이하드 시리즈의 재미를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부르스는 아픈척 엄살 피우고 피 조금 흘리는 람보가 되어버렸다. 액션에서 맥클레인이 테러범에게 우위를 점할 이유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액션을 결정지은 것은 맥클레인의 고생과 기지보다는 우연이었다.
해커의 집에서 예상치 못한 폭발로 상대를 물리친 것은 영화에서 한번은 나옴직한 재수라 치자. 도대체 다 죽어가는 맥클레인 앞에서 서커스를 하고 자빠진 테러범은 뭐고 총 놔두고 손으로 어렵게 제압하는 건 또 뭔가. 긴장해야할 순간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맥클레인이 다 큰 딸의 아버지라서? 남편은 고생시켜도 아버지는 고생시킬 수 없다는 각본의 배려로 남편의 '고생담'이 아버지의 '무용담'이 되버린 느낌이다.
아버지가 돼서 그런지 영화의 철학도 바뀌었다. 다이하드의 또 다른 재미는 엘리트에 대한 조롱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총동원된 엘리트들은 번번히 무력화 되고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소시민이나 소외된 사람과 맥클레인이었다. 이런 얘기 구조에 관객들은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러나 4편에서 맥클레인을 돕는 사람은 평범한 소시민이 아니라 특별한 컴퓨터 천재다. 맥클레인의 작전에 일조하는 해커의 도움은 이전에 비하면 너무나 당연해 보여 별로 통쾌하지가 않다.
또 엘리트들은 그리 조롱받지 않는다. 사태의 총책임자는 진지하게 그려지고 맥클레인을 존중한다. 대신 맥클레인의 비아냥은 정치적으로 진보쪽을 향해 있는 느낌이다. 노동자 맥클레인에서 기성세대 맥클레인이 되어서 그런걸까.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류의 성공을 거두는 시리즈물 때문인지 최근 헐리우드는 이야기의 완결성보다는 원작의 정확한 재현이나 트랜스포머같은 관객의 특수정서에 기댄 작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한마디로 창의성 엿 바꿔 먹은 작품들만 양산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고 관객에게 기대한다. "이거 로보트 영화니까 그거 감안하고 보세요" "만화영화 재현하다 보니 어쩔 수 없네요" 이런 식이다. 이야기는 생략되고 반복된다.
최근 몇 년간 영화에 대한 환호성이 안들린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게 스파이더맨 2인 것같다. 이야기는 고립되고 액션은 물량공세로 퍼부으면서 이제 헐리우드 영화는 의심받고 있다. "그 정도면 됐지." "블록버스터에 뭘 그렇게 많이 기대하니." 식의 평가들이 댓글에 난무하고 있다.
많이 보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말까지도 나온다. 영화는 상품이다. 그러나 또 문화이기도 하다. 상품이 양적인 것이라면 문화는 질적인 것이다. 2007년은 질은 없고 요란한 이벤트와 양만 퍼부은 영화에 관객들이 압사당할 지경이다.
누가 스필버그를 욕했는가 그 정도로 깔끔한 오락영화를 본지가 도대체가 몇년전인가. 에일리언과 터미네이터가 그립다. 그런 명작들을 감히 씹어대던 시절이 그립다. 매트릭스는 이제 10년 뒤에나 나올까. 이렇게 뻔뻔하고 나태한 영화들을 봤을 때 그럴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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