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신 기분이 어떠세요?"


삶에서 죽음을 직면하면 두렵다. 죽음에서 삶으로 가면 어떨까? 죽음은 인지할 수 없다. 죽음은 그저 단절일 뿐이다. 단절된 과정에 감흥이 실릴리 없다. 그들은 내가 살아났다는 것이 기뻤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시공간에 대한 공포가 스물스물 밀려왔다. 어렸을 때 밤기차를 타고 가다 불빛 하나 없는 창밖을 보면서 저기 홀로 남겨지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때 온몸이 소스라쳤다. 그런 공포였다. 나는 지금 23세기 존재한다. 아무도 없는 이 시대는 내게 밤기차의 창밖보다 더 어두운 시공간이다. 갑자기 맞딱드린 낯선 사람들의 환대도 날 위로하지 못했다. 갑자기 온 몸에 지독한 한기가 덮쳤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팔로 상체를 감쌌다. 눈두덩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안압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준형씨"


거울이 갈라지더니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팀장님 혈압이 300을 넘었습니다. 어떡할까요? 육체 접속을 해제할까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한기는 떨쳐지지 않았다. 몸을 웅크리면 웅크릴 수록 한기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공포였다. 정신은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패닉에 빠져있는데 몸은 죽고싶지 않아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존재의 딜레마였다.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다시 대기상태로 돌려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육체가 정지하겠습니다. 그러면 SDNA코드도 변질됩니다."


"잠깐만 잠깐만...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무슨 말씀이시죠?"


"기술적으로 보완한다고 해서 해결된 문제가 아니란 말이죠. 달걀을 깨고 나오듯 이건 커서님이 감당해야할 산통인 거 같아요."


"감당하지 못하면요? 그러면 부활은 실패하고 그들이 내일 당장 여길 차지할 겁니다."


"감당할 수 있게 해야죠."


"어떻게요?"


손 등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자영이 내 왼손을 잡았다. 그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 오른손을 그 위에 꽉 잡아 포갰다. 자영의 몸이 천천히 웅크린 내 몸을 덮었다. 온기도 함께 내 몸을 덮었다. 떨림이 누그러지자 웅크렸던 몸이 조금씩 펴졌다. 사지가 펴진 사이로 자영이 팔과 다리를 채웠다. 숨가빴던 호흡과 떨림도 진정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온기가 채워지자 자영을 향해 돌아누웠다. 허리를 당기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철봉대에 매달린 것처럼 자영의 왼쪽 다리를 내 사타구니에 끼웠다. 그건 아직 머리 속에 맴도는 공포를 떨쳐내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어느 순간 졸음이 밀려왔다. 


"준형씨 이불 가져오세요."


자영이 일어서려는 순간 잠이 깼다. 그대로 있었다.  


"어떻게 하신 거죠?" 


"공포를 느끼고 있잖아."


"무슨 공포죠? 삶을 다시 얻은 게 공포스러울 수 있나요?"


자영이 내 볼을 어루만졌다. 눈물이 차올랐다.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울대를 몇번이고 삼켰다. 


"온전한 의식으로 새로운 시대와 육체를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마냥 기쁘진 않을 거야. 낯선 시공간에서 괴리감도 느낄 거고. 그게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 죽음도 공포지만 그 역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또 공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의 공포는 죽으면 느낄 수 없지만 존재의 공포는 존재하는 순간 느낄 수 있잖아. 부활한 커서님에겐 바로 그게 산통이었을 거고."


중학교 때 인간이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란 걸 깨닫고 밤새 베개를 적신 적이 있다. 내가 없이도 세상이 존재하고 난 그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게 너무나 두려웠다. 나는 지금 내가 없이도 존재하는 세상을 보고 있다. 그러나 그때와 다름없는 공포를 느끼고 있다. 세상은 있지만 사람이 없었다. 당장 여길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하자 그것이 공포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존재하는 것 그것이 존재의 공포다. 존재의 공포도 죽음의 공포처럼 점점 옅어질까?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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