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은 영원히 죽을까. 무한한 시간은 이 대답을 머뭇거리게 한다. 깨진 유리컵이 다시 붙을려면 유리 입자들이 붙을 수 있는 위치로 배열하고 그것들이 결합할 수 있는 적절한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한다. 이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제로는 아니다. 제로가 아니라면 무한한 시간 앞에서 그 사건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부활할 확률은 깨진 유리컵이 다시 붙을 확률보다 높다. 과학이라는 도구가 그 가능성을 훨씬 더 높이기 때문이다. 이미 23세기의 과학은 나의 기록을 바탕으로 육체를 만들고 정신을 재생했다. 과학이 좀 더 발달하고 과거에 대한 자료가 더 쌓이면 기록이 없는 사람도 과학의 힘으로 부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영원히 산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수 있지만 무한한 시간 속에 모든 것은 가능성을 가진다. 영원히 죽는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커서님"


자영이 두 명의 남자와 같이 들어왔다. 한 남자는 어제 쓰러졌을 때 뛰어들어왔던 준형이라는 남자였다. 다른 남자는 안경을 쓰고 좀 더 젊어보였는데 준형과 달리 휜 까운이 아닌 캐주얼한 옷차림이었다. 두 사람의 옷차림의 차이는 얼굴에서도 나타났다. 새로운 남자는 준형보다 훨씬 밝고 활기찬 인상이었다.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가 있었는데 눈빛만 스쳐도 뭔가 상대에 호응할 말들을 쏟아낼 것처럼 보였다.  


"태어나셔서 아직 아무것도 안드셨는데 배고프지 않으세요?" 


자영의 옷이 달라졌다. 청바지에 좀 더 타이트하게 붙는 상의를 입고 입었다. 봉긋한 가슴선이 눈에 들어왔다. 자영의 새로운 옷차림은 육체의 탄력감을 더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혹시 믹스커피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커서님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이 방엔 21세기의 물품들도 준비해뒀습니다." 


안경을 쓴 남자가 식탁 쪽을 뛰어갔다 오더니 빙그레 웃으며 믹스커피를 들어보였다.


"페이스북에 '커서님 방에 무엇을 준비할까요?'라고 물어봤습니다. 믹스커피가 4번째로 많았죠".


봉지를 찢어 물에 타자 커피향이 방안을 채웠다. 다시 태어나 느끼는 가장 강한 후각이었다. 진호가 주는 커피잔을 받았다.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 커피잔을 살짝 쥐었다. 다시 태어나 느끼는 가장 뜨거운 온기였다. 커피잔에 코를 박고 커피향을 들이켰다. 코가 진동을 했다. 한 모금 마셨다. 뜨끈함이 혀를 타고 목젖을 지나 식도로 떨어졌다. 온기가 지나간 혓바닥 위에 씁쓸하면서 달콤한 커피맛이 베어들었다. 아침에 커피를 한잔 마시고나면 하루가 시작된다는 느낌이었다. 이제서야 내가 살아있다는 현실감이 들었다. 


"여긴 부활센터 의료담당 준형씨입니다. 그리고 여긴 소통담당을 맡고 있는 진호씨입니다. 준형씨는 커서님의 건강을 체크할 겁니다. 진호씨는 커서님이 23세기와 만나는데 도움을 줄 겁니다. 궁금한 거나 필요하신 거  있으면 진호씨에게 말씀하세요."


'준형'은 전형적인 몽골리안 얼굴이었는데 발달된 광대와 두터운 하관이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흰색 까운에 어울리는 그의 얼굴은 의사로서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길쭉한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은 '진호'의 얼굴은 경계심을 풀게 만드는 인상이었다. 행동도 빨랐고 말도 빠른 편이었는데 그가 소통담당이 된 것이 이런 대인능력 덕분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밖을 볼 수 있습니까?"


"창문"


자영이 말하자 벽면의 거울이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변하면서 창문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멀리 산봉우리들이 나타났다. 그 아래로 건물들이 늘어섰다. 사이사이 도로와 차들도 보였다. 


"커서님이 평생을 사신 부산입니다. 저 산은 금정산입니다. 저 앞에 다리가 놓여있는 곳이 온천천이고요. 아시죠? 여기서 자라셨으니." 


다양한 형태와 여러가지 색깔의 건물들이 창밖에 펼쳐졌다. 곡면의 윤곽을 가진 높지 않은 건물들이 산자락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졌다. 산세와 어우러진 건축물들이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알던 부산의 풍경과는 달랐다. 그러나 부산이었다. 알아볼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금정산이었다. 금정산을 보는 순간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층건물이 막지않은 금정산은 초등학교 시절 집 옥상에서 보던 바로 그 산이었다. 그때처럼 금정산은 노을이 지는 하늘을 혼자서 병풍처럼 막아서고 있었다.


"저를 일부러 여기에서 부활시킨 건가요."


"예. 아무래도 200년 뒤  세상에 오시는데 익숙한 장소가 좋을 것 같아서요. 부활센터를 여기에 세웠습니다"


"금정산막걸리 좋아하셨죠. 괜찮아지시면 오리고기에 한잔 해야죠?"


"2차는 해운대 해변에서 맥주로..."


진호가 술잔을 꺽는 액션까지 곁들이며 자영의 말을 거들었다. 


금정산을 보고나니 가족이 생각났다. 그러자 어제 느꼈던 그 공포가 스물스물 올라왔다. 금정산도 있고 해운대도 있지만 그걸 같이 나눌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 공포심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떠오르는 공포심을 떨치려 머리를 비웠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1분 정도 가만히 있었다.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신체 반응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준형이 자영에게 보고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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