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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 3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포즈 잡고 있는 두 녀석은 제 동생들입니다. 당시 6살, 4살.

사진 속의 터는 아이들이 매일 모이는 장소였습니다. 학교 갔다 오면 여기 모여 금을 긋고 '다망구'나 '라면땅' '오징어달구지'같은 놀이를 했습니다.

여기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것은 순전히 공장 덕분이었습니다. 뒤에 보이는 공장이 차량 진입로 덕분에 아이들이 놀만한 조그만 터가 생긴 것입니다. 트럭이 들어올 때면 놀이를 중지하고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유니폼에 '빵떡모자'를 쓴 여공누나들이 저 문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른들은 이 공장사장이 일본사람이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문설주 맨 위에 빨간 글자로 '멸공'이 쓰여져 있는데, 저땐 아주 흔한 구호였습니다. 다른 쪽 문설주에도 비슷한 반공구호가 적혀있었습니다.

좀 더 오른쪽에 붙어 있는 종이는 극장에서 붙인 2편 동시 상영 영화 포스터입니다. 저 때는 시내 개봉관에서 먼저 상영하고, 동네변두리 극장은 나중에 상영했습니다. 풀이 가득 든 통을 들고 저 종이를 붙이고 다니시던 아저씨 모습이 생각납니다. 풀 바른 벽에 종이 붙이고 다시 그  위에 풀을 듬뿍 발랐습니다.

오른쪽 끝에 담이 있는데 그 중에 맨 앞쪽의 낮은 담은 남자아이들 담력 시험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저 담을 뛰어 넘지 못하면 겁쟁이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저거 못 뛰어넘는다고 동네친구들에게 둘러싸여 겁쟁이 소리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2학년 쯤인가 간신히 뛰어넘었는데, 그때의 그 짜릿함이 아직 잊혀지지 않습니다.

당시 아이들의 순진한 모습에 제 어린 시절까지 압축해서 보여주는 사진이라 여간 애착이 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캔해서 인터넷에 저장해두고 가끔 꺼내보며 웃음짓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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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사진 속의 장소를 가봤습니다. 예상대로 30년 전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공장 자리엔 이미 옛날에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골목에서 옛날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땐 달려갔던 창민이네 집이 20미터도 안된다는 것을 그날 알았습니다. 어릴 때 크고 멀었던 것들이 아주 작고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옛날 사진첩에서 자신의 추억이 압축된 사진 한장씩들 찾아서 스캔해보세요.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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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파리 2008/05/10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한 사진 잘 봤습니다.
    저 역시도 고향에 가면 추억에 젖곤 하는데 그때 뛰놀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수영을 하던 저수지가 작다는것에 놀라곤 합니다.
    '멸공'이란 포스터 참 오랜만 이네요....
    잠시 추억에 젖어 봅니다.

  2. 주인된국민 2008/05/10 1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7년이면 제가 국민학교(그때말로) 2학년때이군요. ㅎㅎㅎ
    이곳에도 멸공, 반공방첩, 심지어는 때려잡자 김일성 이라는
    글도 있었쬬.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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