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남이 막장드라마라고 한다. 극단적 빈부차의 설정과 자극적인 가학성 장면 등이 막장드라마 못지않아 그렇다는 것이다. 디시인사이드 설문조사에서는 꽃남이 한창 막장을 달리는 아내의 유혹을 제치고 무려 2위를 차지했다. 

정말 꽃남은 막장드라마일까? 

그렇지않다. 꽃남은 절대 너는 내 운명이나 아내의 유혹 같은 그런 대책 없는 막장드라마가 아니다. 꽃남이 막장과 비막장의 경계선을 가까스로 넘어선 정도를 두고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꽃남은 그런 장르로 분류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연출을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다.

꽃남이 막장이 아닌 근거 4가지를 들 수 있다. 앞으로 벌어질 막장 논쟁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이 근거들을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첫째, 때깔 좋은 막장은 없다. 궁궐같은 집과 대학캠퍼스를 능가하는 학교 등 꽃남엔 재벌가 자제 4명을 받치기 위한, 왠만한 드라마는 넘보기 힘든 고급스런 장면들이 나온다. 어떤 방송사가 막장에 이런 때깔을 입히겠나? 거대한 크루즈를 동원하고 자동차 경주씬을 연출하면서 이런 막장을 만들 정신나간 연출자는 없다. 

막장은 작정을 하고 만든다. 비용을 덜 들이고 시청율을 올리고 싶어하는 방송사의 욕구에 맞춰 기획되는 것이 막장드라마다. 자극적 소재로 막장질을 서슴지 않는 작가가 골라지고, 배우들은 작가의 대본에 따라 사무실과 집을 오가면서 오만때만 인상과 패륜을 저지르면서 막장을 만들어 간다. 

막장드라마와 때깔드라마는 그 기획 단계에서 다르다. 막장은 한 순간의 시청율을 원하고 때깔은 원소스 멀티유즈의 상업성을 노린다. 시청율에 동원된 드라마와 장기적 상품성을 내다보고 기획된 드라마는 그 차이가 크다. 아내의 유혹은 끝나는 순간 시청자의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꽃남 같은 때깔 드라마는 성공 여부에 따라 대장금이나 궁처럼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화제작이 될 수 있다. 

둘째, 꽃남엔 정서적 일관성이 있다. 비현실성으로 작품의 수준을 따진다면 공상과학 영화는 모두 쓰레기가 된다. SF영화들이 명작이 되는 것은 현실성이 아니라 스토리의 논리적 일관성에 근거한다. 그러나 스토리의 논리적 일관성 여부로도 그 작품성을 논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있다. 팀버튼의 영화는 비현실적인데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전개함에도 명작 취급받는다.

왜 그럴까? 정서적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하나의 정서로 꿰어내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했다면 그건 성공한 작품이다. 스토리든 정서든 영상이든 작품은 무언가로 꿰어내 가시적인 흐름을 보여줄 때 관객에게 의미있는 감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

꽃남에는 드라마를 꿰어내는 그런 일관된 정서가 있다. 꽃남에는 변형된 신데렐라 정서가 잘 구현되어있다. 이 시대 귀족에 대한 환상과 코믹한 신데렐라가 잘 어울려 드라마를 따라 시원하게 흘러가고 있다. 시청자는 드라마의 비현실성보다 정서의 비일관성에 더 불편함을 느낀다. 신데렐라 정서를 즐기는 시청자에겐 시험공부 고민하는 신데렐라보다 두 왕자의 사랑 앞에서 고민하는 신데렐라가 더 편안한 것이다.

셋째, 꽃남은 캐릭터가 안정적이다. 막장드라마의 연기가 어려운 것은 캐릭터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막장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인터뷰 등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신분열적 캐릭터의 감정이입의 어려움을 호소했. 너는 내 운명의 박재정이 발호세라는 별명은 얻은 것도 막장드라마 캐릭터 감정이입의 어려움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연기경력 수십년의 배우도 난감하게 하는 막장 대본에 젊은 배우들이 연기의 감을 잡지 못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러나 꽃남의 캐릭터는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런 점은 있지만 정신분열적이진 않다. 배역들은 자기 캐릭터를 분명하게 구축하고 있고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꽃남에서 금잔디의 아빠와 엄마는 과장된 속물적 캐릭터를 재밌게 표현하고 진선미는 금잔디를 괴롭히는 캔디의 '이라이자' 캐릭터를 충실히 수행한다. 꽃남엔 현란한 캐릭터의 변신을 보여주었던 발호세와 같은 배역은 없다.

넷째, 꽃남엔 명품 대사가 있다. 구준표가 금잔디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대보라고 한다. 거기에 대답하지 못하는 금잔디. 그 고민을 전해들은 윤지후가 금잔디에게 그 답을 말해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공기라고.

막장엔 이런 명품 대사가 없다. 직접적 전달이 아니면 선호하지 않는 막장에 이렇게 쉼표를 끊어가며 치는 대사가 있을 수 없다. 시청자가 음미할 수 있는 명품대사가 나오려면 드라마는 일관된 흐름을 이어야 하고 장면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런 토대 위에서 대사는 그 의미가 더 명징해진다. 토대 자체가 없는 막장엔 당연히 소 뒷발치다 쥐잡는 명품대사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명품대사는 그 작품이 막장이 아니란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가학적 왕따 장면에 대해서

금잔디의 왕따 장면이 꽃남이 막장 논란에 휩싸인 계기가 된 것 같다. 금잔디가 계란을 맞고 밀가루를 덮어쓴 것이 너무나 가학적이었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가학성은 구준표 같은 가진자들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인 역할을 한 점이 있다. 겉으로는 품위를 자랑하지만 내부에선 어디보다 추악한 일들이 벌어지는 상류층 세계의 실상을 폭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작자들이 그 세계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그 장면을 연출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은 트렌디 드라마 꽃남에 사회구조적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드라마가 금잔디의 판타지 외에도 극심한 빈부차를 보이는 둘의 관계에 대한 현실적 해결도 시도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 것이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는 이유도 제작진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두루두루 닥본사 꽃남이다.

Posted by 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