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체제가 부정되어야 하는 이유 세번째 


1977년 일본에서 발행되는「세계」지에 시「노예수첩」이 게재되었다는 이유로 양성우 시인이 구속되었다. 혐의는 '긴급조치9호' 및 '국가모독’ 위반이다. 그런데 양성우시인에게 적용된 국가모독죄가 좀 희안하다. 만약 양성우시인의 시가 일본에서 발표되지 않았다면 국가모독죄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저항적 시에 '국가모독죄'를 씌운 거야 서슬퍼런 유신독재시대라 그럴 수 있다지만 해외잡지 발표여부에 따라 죄가 성립되는 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형법 제2장 외환의 죄 중
제104조의2 (국가모독 등)
① 내국인이 국외에서 대한민국 또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거나 그에 관한 사실을 왜곡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안전·이익 또는 위신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② 내국인이 외국인이나 외국단체 등을 이용하여 국내에서 전항의 행위를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③ 제2항의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국가모독' 법조항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국가모독죄가 성립되려면 국가모독행위가 국외에서 이루어지거나 국내라도 외국인이나 외국단체를 통해야만 하는 것이다.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을 줄 알았는데 간단한 법조항이 그 이유라니 좀 황당하다. 도대체 이런 희안한 법조항은 어떻게 생기게 된 걸까?

이 황당한 법은 양성우시인이 구속되기 2년 전인 75년 3월 19일에 통과되었다. 이법이 제정되는 과정은 2009년의 '미디어법사태'와 유사하다. 당시 여당인 공화당은 3월11일 91회 임시국회를 단독소집한다. 이 법조항은 공화당의 박준규정책위의장 등이 3월 18일 제안·발의하였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은 국가모독죄조항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적극 저지를 결의한다. 지금의 미디어법사태와 비슷한 건 여기까지다. 공화당은 이 법을 발의한지 하루만인 3월 19일 단독으로 법사위를 소집하여 국회도서관 2층에서 변칙 처리한 후 야당이 점거 중인 본회의장을 피해 의원휴게실에서 본회의를 열어 이 법을 포함한 25개 법안을 무더기로 처리한다.

황당한 악법이지만 당시 공화당은 나름대로의 이 법조항 제정논리나 배경을 가진 듯 하다. 73년 미국에 망명한 전중앙정보부장 김형욱씨가 미국에서 박정희정권에 대해 비판적 발언과 책을 발간하면서 박정권을 불편하게 했는데 이런 일을 재발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아마 당시 정권은 내부의 일을 외국에서 떠벌려 흉보는 건 부적절하다는 국민정서를 이용해 이 법의 정당성을 여론에 호소했을 듯 싶다.

그래도 이 법이 김형욱정보부장같은 배신자를 처단한다는 입법취지가 잘지켜진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재정권은 이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법'을 배신자가 아닌 민주인사를 잡아들이는데 활용했다. 법이 제정된지 석달 후인 6월 11일 동아일보백지광고사태의 한가운데에서 동아투위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이부영전의원이 국가모독죄로 수감되었다. 국가모독죄는 국가보안법과 함께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투옥하는데 쌍무마차 역할을 하게된다. 


보도지침사건 판결문 중에서. 당시 판사는 고심 끝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려 방청석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국가모독죄법 적용은 피할 수 없었다.



이 법은 유신을 넘어 5공화국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된다. 87년 보도지침을 폭로한 김태홍, 신홍범 두 사람에게 외신을 불러 보도지침폭로 기자회견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모독죄를 적용한다. 민주당 우상호전의원도 국가모독죄로 구속되었다. 87년 뉴욕타임스지 회견중 전두환 정권을 파시즘에 비유했다는 내용이 외국단체를 이용하여 국가를 모독했다는 조항에 걸린 것이다. 

이 법을 둘러싸고 극적인 장면도 벌어졌다. 한국기독협의회 김철기상임총무는 82년 7월 도주한 외국기업을 비난하는 유인물을 외신기자에게 배포했다는 이유로 국가모독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국가모독죄는 미수범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며 김철기상임총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그러나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힌다. 83년 6월1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을 파기하고 대법원판사 13명 중 11명의 찬성으로 미수범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기수범으로 봐야한다는 판결을 내린다.

지금 선진당 총재인 이회창씨가 이 법을 반대했던 판사 2명 중 한명이었다. 그는 "'외국인을 이용하여' 라는 의미를 '외국인에 대하여'로 새겨 외국인을 상대로 국가모독 행위를 한 이상 처벌대상이 된다고 주장하나 이는 입법취지를 벗어난 확대해석이므로 부당하다" 며 법적용의 부당성을 날카롭게 집어낸다. 반대했던 다른 한명은 이일규대법원판사이다.

당시 국가모독죄가 위법이라고 판결한 83년 6월15일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가관이다.


 “국가모독죄의 입법 목적과 취지를 보자. 오늘의 세계를 국제시대라고 한다. 이 국제시대를 사는 우리 국민이 자주독립국가의 민주국민으로서의 그 긍지와 자각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청된다는 것은 그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하물며 이 지구상에서 가장 호전적이라는 북한공산집단과 실로 형용할 수 없는 가열한 대치상태를 계속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때 이와 같은 요청은 한층 더 제고되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민이 우리 민족의 역사적 병폐라고 하는 사대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국내외에서 외국인이나 외국단체에 대하여 그의 조국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이나 그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모욕, 비방하고 그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허위사실을 날조, 유포하는 행위를 자행하여 국가의 안전이나 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사례가 거듭 되풀이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대법원 1983. 6. 14. 선고 83도515 판결 중에서).
[출처] 그 때 그 법원 여영학 변호사 (환경법률센터 소장)


법이 어떻게 권력의 입맛에 맞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판결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법은 87항쟁의 결과 1988년 개정되어 사라진다

국가모독죄는 그 입법과정이나 배경과 숨은 의도 등이 사이버모욕죄와 닮은 곳이 많다. 유신 정권은 김형욱정보부장의 배신을 핑계로 이 법을 만들어 실제로는 민주인사를 탄압하는 데 악용했다. 한나라당은 최진실씨 등의 연예인 자살여론에 힙입어 이 법을 추진하려한다. 그러나 야당과 네티즌들은 이 법이 실제로는 정부에 비판적인 인터넷여론을 통제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의 여당이 인터넷의 파급력을 문제시하는데 34년전 유신정권은 외신의 파급력을 두려워하여 이 법의 제정을 서둘렀을 것이다.  

만약 사이버모욕죄가 입법된다면 어떻게 될까? 유신시대의 국가모독죄같은 전철을 밟지않을까? 과연 그 법이 입법취지에 맞춰 악플을 대처하는데만 쓰일까? 판사들은 이회창판사처럼 소신있게 법의 사이버모욕죄의 입법취지를 묻게될까? 그리고 사이버모욕죄는 얼마나 버틸까? 국가모독죄처럼 13년은 버틸까? 버티는 동안 그 법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참고로 하나만 더 얘기하자. 극적장면을 연출했던 김철기씨는 현재 친박연대의 사무총장이다. 한국기독교협회 사무총장을 하면서 70,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느라 청춘을 보내신 분이다. 친박그룹들의 사이버모욕죄에 대한 대처도 궁금해진다.

[인터뷰]친박연대 김철기 사무총장

Posted by 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