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 미국 최악의 대통령은 닉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불명예한 자리를 부시가 퇴임하면서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닉슨에게 부시는 30년만에 나타난 참 고마운 인물입니다.

도대체 닉슨이 얼마나 나쁜놈(?)이기에 부시와 불명예의 자리를 겨룰까요? 닉슨하면 워터게이트가 자동적으로 따라붙는데 사실 처음엔 이 워터게이트 하나만으로 정치인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분이 그걸로만 그런 평가를 받는 건 아니더군요. 이미 러셀이나 사르트르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모의재판을 열어 닉슨을 월남전의 책임을 물어 사형은 언도한 바 있습니다. 프로스트vs닉슨의 영화에서도 프로스트팀의 한 명은 닉슨을 히틀러수준으로 언급하고 아주 경멸적으로 바라봅니다. 영화 식코에선 최악의 의료보험제도를 시작한 장본인이 바로 닉슨이라고 알려줍니다.

얼마전 '프로스트vs닉슨'을 보고나서 이 정치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는데 그제 우연찮게 책을 정리하다 이 분이 쓴 책 한 권이 집에 있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세계를 움직인 거인들>이라는 제목으로 83년도에 출판된 책인데, 아마 어디서 굴러다니는 걸 나중에 보려고 주워놓은 것 같습니다. 영화의 감상과 기억을 연관해서 보면 책이 더 잘봐집니다. 이 기회에 정치인 닉슨과 당시의 세계 정치사를 알아봐야겠다 싶어 책을 펼쳤습니다. 

닉슨이 기업가출신 정치지도자가 불가하다 말한 부분은 책의 서문에 나옵니다. 평판이 나쁜 정치인이긴 하지만 기업가출신 정치지도자에 대한 닉슨의 일침은 새겨 들을만 합니다.


꽤 오랫동안 미국사람들은  그들의 조국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란 대규모의 기업을 효과적이며 능률적으로 관리할 수 있음을 증명한 일류의  실업가들이며, 이런 사람들이 정부를 이끌고가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경영관리와 지도력은 전혀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우스캐롤라이너 대학교의 경영학과 교수인 웨렌 베니스가 지적한대로 경영자의 목표는 일을 '올바르게'하는 것이지만 지도자의 목표는 '올바른'일을 해야하는 것이다.


'올바르게' 한다는 것은 목표만 좋으면 된다는 말이고 '올바른' 일을 한다는 것은 목표와 수단이 모두 좋아야한다는 의미입니다. 기업가는 올바르게 하겠다는 이유로 올바르지 않은 짓을 정당화 할 수 있지만 정치인에게 그런 식의 정당화는 통하지 않습니다. 닉슨은 목표를 위해 수단을 정당화 하는 기업가는 상당히 위험한 집단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닉슨은 왜 정당하지 못한 도청을 했을까요? 말과 행동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뭐... 

이어지는 내용에서 닉슨은 정치인과 기업가를 문학장르에 비유해서 설명합니다.  


지도력은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기술 그 이상의 것으로서 문학에 비유해 보면 경영력은 산문이지만 지도력은 시인 것이다. 지도자는 상징과 이미지와 역사의 원동력이 되는 활기찬 이념에 매우 깊은 관심을 둔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는 이성을 사용하고, 움직이는 데는 감정을 사용하게 되므로 지도자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움질일 수 있는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경영자는 오늘과 내일만 생각하면 되지만 지도자는 모레까지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경영자는 하나의 과정을 말하고 있지만 지도자는 역사의 방향을 말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경영할 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지만 권력을 갖지 아니한 지도자라도 추종자들을 거느릴 수가 있는 것이다.


기업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기업가를 산문에 비유했지만 솔직히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지도자는 기업경영가와 비교할 수 없는 고도의 종합예술이라는 것입니다. 기업과 같은 조직을 움직이는데는 자료와 명령으로 충분하지만 국가의 모든 구성원을 움직일려면 더 많은 것이 동원됩니다. 그리고 더 멀리 바라봐야 합니다.

주식에 비교하자면 종목투자와 선물이라고 할까요? 종목투자는 그 기업만 알면 되지만 선물은 표면적으로는 홀짝이라도 그 홀짝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꿰고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물이 훨씬 더 고도의 종합적 투자가 되는 겁니다. 

기업가출신 정치지도자를 은근히 경멸한 닉슨은 이제 위대한 지도자는 어떠해야하는지 얘기합니다. 기업가 니들이 감히 할 수 있겠냐는 거죠. 


위대한 지도력은 지도자에게 영감을 넣어주며 나아가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고도의 통찰력을 요구한다. 국민들은 위대한 지도자를 사랑하기도 하며 또한 미워하기도 하는 법이어서 그들이 지도자들에게 무관심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도자가 올바른 일을 '알고'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며 지도자는 반드시 올바른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중략) 위대한 지도자는 통찰력과 함께 올바른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까지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올바른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지도자는 보조자를 고용할 수 있으나 방향을 제시하고 원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은 오로지 위대한 지도자 그 자신 뿐인 것이다.



이런 말을 닉슨이 해서 좀 아쉽네요. 좀 더 존경받는 정치인이 했더라면, 그래서 이 말이 정치계에서는 하나의 경구로 통했더라면 세상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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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빠렐 2009.03.12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명박이형....
    올바르게와 올바른 참 좋네요
    몇십년이 지나고 아니 너무 기나요.. 임기가 끝날때의
    명박이형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될까요 ㅋ

  2. 다이앤 2009.03.13 0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커서님.
    항상 좋은글 잘 보고 있습니다.
    다른 블로그를 이용하는 이유로 캡쳐로 님의 글들을 가져가는 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퍼온글 표시와 출처는 항상 명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글 보니까 비록 닉슨이라도 너무 맘에 드는 말이라 글 남기게 되었네요.
    그런 닉슨도 몇가지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2MB는...하는 생각을 합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암튼, 계속 좋은 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좋은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