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흔여덟살 유순득 할머니는 부산지하철 매점에서 일하신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10시 쯤 퇴근하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매점에 나오신다.

할머니에게 100만원 벌이는 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정색을 하시고 말씀하신다.

"뭐 100만원요? 아이고 50만원만 되도 내가 할배야 캅니다."

할머니는 하루에 10만원 어치 정도의 물건을 파는데 그 정도면 만원 조금 넘게 남는다고 한다. 한 달 꼬박 일하면 할머니는 매점에서 30만원 정도를 번다.

30만원을 모두를 가져가진 못한다. 매점 임대료를 내야 한다. 전기와 전화요금도 있다. 매점 임대료는 석 달에 30만원이고 전기·전화요금은 10만원 정도다. 한달 평균하면 13만원 쯤. 그러니까 할머니는 한 달 내내 일해서 17만원을 실제로 손에 쥐게 된다.   


지하철매점 벌이가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 시작한 10년 전에는 하루에 20만원에서 25만원을 팔았다. 그 매상이 작년에는 15만원까지 줄었고 올해는 설 지나고나서 확 줄어 10만원까지 내려왔다. 임금은 10년 전보다 두배 가까이 올랐는데 할머니의 지하철매점 매출은 반으로 줄었다.


지하철매점에선 담배가 잘 나가는 편이다. 할머니는 지난 일주일 동안 9만3천원어치의 담배를 팔았다. 담배 마진은 딱 10%니까 할머니는 지난 일주일 동안 담배로 9천3백원을 벌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담배를 일주일에 30만원 이상 팔았다. 우산은 한 달에 한 개를 팔기 힘들다. 요즘은 사람들이 비가 와도 안산다고 한다. 음료수는 오늘 3개를 팔았다.


가격이 싼 마트나 수퍼가 많이 생기는 바람에 지하철매점같은 구멍가게는 점점 매출이 줄고 있는 형편이다. 할머니 건너편의 지하철매점은 이미 3년 전에 문을 닫았다. 부산지하철엔 이렇게 문을 닫고 있는 매점이 꽤 있다. 대합실에 보통 두 개의 매점이 있는데 도시 중심부에서 좀 떨어진 역의 경우 둘 다 문 닫은 곳도 있다. 할머니도 올해 계약이 끝나면 문을 닫을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이 역도 두 개 매점 모두 문을 닫을지 모른다.
 
작년에 지하철매점을 계약할 때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그 돈 버느니 차라리 영세민수당을 받아보라고 했다. 사업자등록증이 있으면 수당을 받지 못하니 장사를 포기하고 차라리 수당을 받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가 벌어 묵고 살아야" 하는 거라면서 사람들 말을 물리치고 작년에 다시 2년 기간의 계약을 했다. 그러나 매출이 너무 떨어진 지금 할머니는 그때 사람들 말을 듣지 않은 걸 후회하신다.

할머니의 점심과 저녁 도시락


할아버지는 5년 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지금 40대 후반의 아들과 같이 살고 계신다. 할머니의 아들은 정신장애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준비를 하다 갑자기 발병을 했다. 할머니가 발병 후 10년 동안 병을 고치려고 온갖 고생을 했지만 아들의 병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예전에 정신장애인센터의 소장님 한 분을 인터뷰 한 적이 있어 이 병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이 병의 결과는 가난이다. 정신장애인센터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10년 넘게 병을 고치려 애쓰다 지쳐 오게되는데 그 때 쯤이면 가족들은 정신적·물질적으로 많이 소진한 상태이다.


할머니 아들은 10년 전 정신장애인 판정을 받아 정부로부터 29만원의 정신장애인 수당을 받고 있다. 할머니의 매점 수입을 합하면 할머니 가정의 한 달 수입은 46만원이다.

할머니는 현재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 짜리 집에 살고 있다. 할머니의 아들은 하루에 담배를 한갑씩 피운다. 집에만 있는 아들의 유일한 낙이다. 대략 한 달 6만원 쯤 될 것이다. 할머니는 1년 전부터 가슴이 아프시다. 5분 거리의 집을 걸어가는데 몇 번을 쉬었다 가실 정도다. 두달에 한번 병원에서 6만5천원의 약을 타오신다. 한 달이면 3만원 정도다. 한 달 고정지출 29만원을 빼면 이제 할머니에겐 17만원이 남는다. 이 돈으로 할머니가족은 한 달 간 먹고 입고 쓰셔야 한다.


그 돈으로 어떻게 먹고사시냐고 물으니 밥값은 얼마 안든다고 웃으신다. 할머니가 집에서 가져오신 도시락을 보여주신다. 반은 점심에 먹고 반은 저녁에 드신다.

머리 속에서 계속 한 달 17만원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다. 집의 전기세와 수도세는? 옷은? 갑자기 몸에 탈이 나면 그때는? 두 사람이 살아가는데 최소로 필요한 돈은 과연 얼마?  

할머니는 올해 매점을 그만둔다고 하셨는데 이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물건들은 다 외상으로 들여와서 조금씩 수금해주는데 장사를 당장 관두면 그 외상값을 한꺼번에 다 갚아야 한다. 외상값을 갚느라 한동안은 영세민수당도 제대로 못 쓸 것이다.



할머니는 대구가 고향이다. 21살에 결혼을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한량이셨다. 할아버지는 부모가 남겨주신 재산을 어느새 집 한 채 남기고 다 팔아 먹었다. 그 집을 팔아 할머니는 부산에 오셨다. 아미동, 부평동, 감전동 등으로 이사다니시면서 할머니는 부산에서 44년을 사셨다.  

6년 전엔 그래도 할머니에게 작으나마 집이 한 채 있었다. 그런데 보증을 서다 그 집을 빼앗겨버렸다. 집과 짐들이 모두 경매로 넘어가고 할머니는 몸만 달랑 나왔다고 한다. 그때부터 석 달 간 낮에는 매점에서 일하고 저녁엔 절에 가서 기도하고 잠시 눈을 붙이는 생활을 하셨다.
 
할머니가 돈을 떼이신 건 이 때만 아니다. 10년 전 지하철 매점을 시작하실 때도 보증금 700만원을 떼이셨다. 지하철공사와 계약한 업자와 계약을 했는데 그 업자가 보증금을 들고 날라버린 것이다.

썰렁한 매점 안엔 난로가 없었다. 춥지않냐고 물으시니 전기장판 위에 있으면 "따시다"며 손을 넣어보라고 하신다. 할머니 얘기를 한시간 쯤 듣고있으니 한기가 느껴져 몸이 떨려왔다. 전기장판 위로 내 손이 슬쩍 올려졌다. 이 탁하고 찬공기의 대합실에서 할머니는 하루 12시간 이상 10년을 계셨다. 

할머니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미안해서 할머니 매점에서 드링크를 세 병 샀다. 두 병은 우리 일행이 먹고 한 병은 할머니에게 드시라며 드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극구 안드신다며 오천원에서 두 병값만 제한 잔돈 3천원을 주셨다. 할머니의 단호함에 두 병 값만 계산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은 그 사람이 쌓은 조건들이 아니라 그가 견디어온 삶의 무게로 평가받아야 한다. 아주 어려운 삶을 살고도 편안한 얼굴과 정신으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그게 바로 존경받는 삶일 것이다. 자신이 쌓은 조건이 하나라도 사라지는 게 두려워 비굴해지고 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어쩔줄 몰라하는 인간이야 말로 초라한 인생이다.

삶의 질곡을 헤쳐나온 할머니에게 많은 사람들이 기대어 위안을 얻었을 걸 생각하니 할머니가 존경스러워졌다. 그러나 과연 할머니같은 삶을 나라면 견디어낼 수 있을까 생각하니 두려워졌다.  이 세상이 나에게 할머니의 위대함을 시험한다면, 할머니의 삶을 시험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 닥친다면, 어느날 나의 아이가 장애를 얻고, 세상이 한 달 몇십만원으로 나를 방치한다면, 나는 과연 편안한 얼굴과 올바른 정신으로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이 우리를 좀 덜 시험했으면 한다. 할머니의 삶에서 존경을 덜 느껴도 좋다. 그만큼 두려움도 덜 느꼈으면 좋겠다.

 

Posted by 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