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많아지고 집회규모는작아졌어요."


4월 7일부터 10일까지 제주도에서 일본노동자들과 함께 한라산을 등반하고 4.3유적지를 참배했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이 소식은 이미 전해드렸습니다.

제주도에서 일본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일본에서 온 노동자 17명 중 유일하게 여성 한 분이 계셨습니다. 홍일점인데다 한국말 통역을 담당해서 더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회자료집에서 찾아보니 이름은 오다 토모코이고 JR총련에서 공제담당부장을 맡고 있는 분입니다. 알아보니 몇년 전 한국에 1년 동안 파견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본노조원으로서 한국노동상황을 잘 알고 한국어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인터뷰 욕심이 안날 수 없습니다. 기회를 노리다 마지막날 점심시간에 간신히 30분 정도 시간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잔디밭의 말똥을 피해 자리잡고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노조 소속이시죠?

저는 노조에서 일하는 사람 전임자는 아닙니다. 전임자라면 철도 등에서 일하다가 노조일을 전담하는 건데 그게 아니라 노조가 고용한 사람입니다. 2003년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한국에 파견나오셨다고 하는데 몇년도에 오셨습니까.

2005년부터 1년 동안 한국의 국제노동자교류센터에 파견나왔습니다.

이번 한일노동자 등반대회를 보면 한국노동자들에 비해 일본노동자들의 연령대가 좀 더 젊은 편입니다.

JR총련 노조에서 일하는 많은 조합원이 있는데 젊은 조합원들이 모여서 만든 청년부가 중심이 되서 온 편이예요. 한국노조도 중간에 젊은 사람들이 없잖아요. 일본도 10년 동안 신입사원이 없었는데 그후에 입사했던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있어요. 지금 청년부가 30대가 되었고 노조중심을 맡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른 나라와도 국제교류를 합니까.

10년 전에 한국과 먼저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3년 전에 국제노동자교류센터 만들었고 그후에 필리핀, 태국, 대만, 호주, 뉴질란드 등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 일본노동자들이 한국노동운동의 분위기나 에너지를 보고 많은 느낌을 받는다고 들었는데.

그래요. 한국의 노동자대회를 보고 한국노동자의 힘이 있는 걸 느낌니다. 일본에서 그렇게 못해요. 광화문 큰 도로를 다 끼고서 그렇게 큰 노동자 대회를 열 수 없어요. 한국노동조합이 힘이 있어서 그럴 수 있어요.  그런 거 일본에서 볼 수 없으니까 일본노동자들이 감격받았다고 하고 그 힘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좀 달라진 점이 있나요. 교류 이후에 일본이 달라진 점은.

그래서 일본에서도 배워야겠다. 5년전인가 6년전부터 청년부를 중심으로 11월 노동자대회에 참여해요. 그리고 평화행사도 하고, 서울의 서대문 형무소나 그런 것도 가고. 70년대에 죽은 노동자, 전태일 그 분 책도 읽고 와요.

'오다'씨는 항상 오십니까

노동자대회 때는 꼭 오고 등반대회도 옵니다.

오늘 4.3현장 보고 느끼신 점은.

제주도라는 게 골프나 관광지나 그런 거만 알고 있었는데 작년에 4.3사건 60주년 그 때 알게 되었어요. 알 수록 너무 비극적인 것 같아요. 오늘도 백조일손묘역 학살현장 봤는데 그거 너무 가슴 아파요. 재일교포 중에서 제주 출신 많은데 유족 중 한 분에게 4.3에 대해 얘기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다 울고 그랬어요. 일본의 4.3 유족들이 작년에 작년에 처음에 한국의 60주년 기념식에 왔어요. 그전까지 일본에서도 4.3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 수 도 없었다고 그래요. 

그때 몇 명이 왔었죠.

100명 정도. 유족만 아니라 활동하는 사람들도 같이 왔어요. NHK에서도 그거 방송했어요.

오늘 필기하시던데 일본분들 많이 적으시더라고요. 오다상만 안적고 나머지 분들 열심히 적으시더라구요.

(오다씨 크게 웃으면서)감상문이나 보고서를 써야 되니까 아마 그런 거 같아요. 대표로 온 그 사람들이 각 현장에서 본 걸 전해야하니까요.




지금 한국정치상황이 많이 안좋아졌다는 거 알고 계시죠. 한국의 노동운동을 지켜본 일본인으로서 그런 것을 실감하십니까.

5번 노동자대회에 참가했는데 점점 규모가 작아지는 거 느끼고 있어요. 처음엔 길거리에서 했는데 2년전인가 시청앞에서 하려고 했는데 경찰이 버스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못했고 작년도 서울역 앞에서 했는데 너무 작은 거 같아요. 그리고 경찰이 많아요. 경찰은 많아지고 집회규모는작아졌어요. 다른 시민단체 사람들한테 들은 얘기로는 마스크도 쓰지 못한다고 하던데. 아! 미네르바 있죠 그분 어떻게 되었어요.

지금 재판 중입니다.

그런데 그 법이 옛날부터 있다고 들었어요. 오랫동안 그 법이 적용되지 않았고 잡았던 사람이 없었다던데. 한번 그렇게 가면 정부 탄압이 심해진다고 생각해요. 이게 시작이죠. 그래서 처음부터 반대해야되는 거예요. 시민들이 그런 법이 나쁘다고 생각하면 늦어요. 지금 이명박대통령이 되니까 그런 법을 만들어요 시민들 모르게. 그것들 나쁘다고 생각하면 그땐 늦어요.

혹시 일본도 이런 법들이 있나요.

전쟁일어나면 협력해야 한다는 전쟁협력법이 2005년인가 2006년인에 만들어졌어요. 전쟁에 협력하지 않으면 경찰에 잡혀가는 거예요. 사람들은 전쟁 없으면 괜찮다고 해서 상관없다고 하는데.

전쟁이라고 하면 되죠. 꼭 전면전쟁은 아니라도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북한과 전쟁 중이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일본정치인들이 그 법을 찬성했단 말이죠.

그 때는 자민당이라는 우파가 우세해서 통과되었어요. 야당은 반대했는데 통과했어요. 고이즈미가 나쁜 법을 많이 만들었어요 그 법 아니라 비정규직 법도 고이즈미가 개악했어요.

어떤 식으로 말이죠.

파견법이라고 있는데 처음에 생겼을 때 전문적인 일만 파견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파견이 가능해요. 그래서 작년에 시작했던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해고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일본사회단체가 그걸 반대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게 미디어에 안나타납니까. 적어도 한국에는 어느 정도 그런 개악시도가 나타나면 야당과 시민단체가 반대하면서 이슈화가 되고 일반시민들도 어떤 법이 나오는 지 알고 있거든요. 일본은 잘 모릅니까.

아예 대부분 시민들은 몰라요.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은 반대하는데 잘 알려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통과하면 잊어먹어요.tv나 뉴스도 친정부적으로 비판적인 뉴스가 없어요. tv보면서 그 말 그대로 믿고 nhk도 정부 말 그대로.

전태일열사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우리가 권위를 갖고 있는 것이 그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분 덕분에 오늘이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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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얘기를 나눴을 때 버스로 노동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1시10분에 차가 떠난다고 했는데 딱 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오다씨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노동자가 좀 더 결속력을 가질려면 두 나라 공통의 노동위인이 필요합니다. 전태일을 한국과 일본 노동자가 함께 존경하면 두 나라의 공감대는 더 넓고 깊어질 수 있습니다. 일본에도 그런 분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같이 한국과 일본의 노동히어로를 찾아 추모한다면 그 어떤 노동자교류보다 더 효과가 클 것입니다. 제 말에 오다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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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주완 2009.04.20 0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일본에 전쟁협력법이라는 게 제정된 걸 몰랐네요. 그 때 어렴풋이 그런 논란이 있었다는 건 기억나는데, 잊고 있었네요.
    마지막 노동히어로....음, 괜찮은 것 같네요.

    • 커서 2009.05.06 1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다상은 부산지하철에도 한번 왔다고 합니다. 일본과 협력이 좀 더 긴밀하다면 노동자의 힘이 더 클 것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