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노동자등반대회에 참가했습니다. 한일노동자 등반대회는 해마다 양국을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행사인데 올해는 제주도에서 열렸습니다. 한라산을 등반한 다음날 한국과 일본 노동자들은 함께 제주 4.3 유적지를 돌아봤습니다. 제주 4.3 학살에 관해선 신문 등의 미디어를 통해서 접했을 뿐 유적지는 처음입니다. 역시 학살의 현장을 직접 보는 것과 미디어를 통해 전달받는 것은 공명하는 감정의 층위가 달랐습니다. 유적지를 맨눈으로 돌아보면서 한 가지 생각을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진 후 대전과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수도를 옮겨가던 정부는 8월18일 예비검속자 처형 명령을 전국에 내립니다. 이 명령에 따라 모슬포 경찰서는 8월 20일 새벽 2시 61명을 처형하고 같은 날 새벽 5시 다른 곳에서 다시 149명을 처형합니다. 군당국은 학살 뒤 학살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유족의 시체인도를 거부하고 유해를 암매장 한 후 민간인 통제 지역으로 설정하여 무장군인이 경비하게 합니다.




이 묘역은 새벽 5시 처형된 149명 중 132명의 유해를 모신 묘역입니다. 부대확장 공사 도중 매장지의 유해가 표출되어 학살 6년만인 1956년 유해의 수습이 허락되었고 그때 발굴된 유해가 여기에 모셔진 것입니다. 그러나 6년 동안 흙탕물 속에 뭍혀 억눌렸던 유해는 시신구분은 커녕 뼈를 추리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족들은 132개의 칠성판 위에 머리 하나에 등뼈, 팔, 다리뼈들을 적당히 맞추어 132구를 안장하고 이 묘역을 백조일손이라 명명하였습니다. 그 뜻은 "조상이 다른 일백서른 두 할아버지의 자식들이 한날, 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되었으니 한 자손"이란 것입니다.





백조일손 묘역에서 나오다 선생님 앞에 모여선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방금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은 입구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이 잔혹한 역사를 품고있는 유적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보면서 착찹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저 선생님이라면 이 기가막힌 학살의 역사를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세계와 너무나 다른 진실에 학생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워할까? 




4.3유적지 연수의 마지막코스는 4.3 평화공원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백명은 넘어보이는 여중생들이 무리지어 재잘거리며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제주지역 학생들 대부분이 4.3 유적지를 견학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제주 학생들은 학살의 역사를 학습하고 있었습니다.





전시관의 한 안내원이 불이 들어오는 제주도 지도 위에서 4.3 당시 내려졌던 해안에서 5Km 아래로 내려오라는 소개령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고 사람을 죽인 것도 그렇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산에서 안내려간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아주 안타까운 눈빛으로 "왜 안내려왔어요? 내려오면 살 수 있잖아요."라는 질문들이 가이드에게 던져졌습니다. 농민들이 삶의 토대인 땅을 두고 떠나긴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불안한 정치상황에서 내려간다고 살 것이라는 보장도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대답을 가이드가 아이들에게 해주었습니다.




토벌대의 총에 맞아 평생 턱이 없어 무명천으로 감싸고 살아가신 진아영할머니도 아이들은 보고 지나갔습니다.




4.3 공원 희생자의 묘비엔 아버지의 이름을 대신 올린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누구의 子'로 이름 올려진 7-8세 정도의 희생자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이 것도 보았을 겁니다.




4.3평화공원 전시관을 보고난 감상을 메모지에 적어 붙인 통로입니다. 





여기에 아이들이 적은 메모지가 몇 개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울해지는 것같다"는 아이, "평화롭게 살"자는 아이, "행복한 때에 태어나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는 아이의 메모가 보입니다. 이 전시관을 둘러본 후 생긴 아이들 가슴의 작은 생채기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가까운 근대사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게 아이들은 잘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 어른들이 왜 이웃에게 총을 쏘았는지, 산에 있는 사람들은 왜 내려오지 않았는지, 그저 답답하기만 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기엔 60년 전 우리의 역사가 너무나 잔인합니다. 지금 설명하기 힘든 것도 있습니다. 어른도 몸서리 쳐지는 학살의 역사를 굳이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하느냐고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잔혹한 학살의 역사를 가르치는 걸까요?

인류의 역사는 그야말로 학살의 역사입니다. 서로를 증오하고 편이 갈린 사람들 간에 숱한 학살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학살은 인류가 풀지못한 문제입니다. 문명사회가 언제 또 학살의 위기 앞에 설지도 모를 일입니다. 서로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상대에게 우위에 섰을 때 상대를 어떻게 다룰지 우리는 아직 장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학살의 유혹과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미워했고 어떤 이유로 죽였으며 그 휴유증이 어떠했는지 끊임없이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이념으로 법으로 권력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해서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학살에 가담할지 모릅니다. 우리 자신이 학살 앞에서 학살임을 깨닫고 몸서리 치게 되도록 교육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히틀러 한 명의 명령으로 수백만명의 유대인이 죽었습니다. 수천명의 예비검속자가 6.25 전쟁중 정보장교의 명령으로 사살되었고 뼈도 못추렸습니다. 인간이 의존하는 조직은 언제든 학살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런 조직에 몸담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학살은 항상 경계해야하는 것입니다. 조직적 존재인 인간은 모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학살의 경고를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배워 내면화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미치광이의 학살 도구가 되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주도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 일행도 한 수학여행단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들어왔습니다. 요즘 수학여행이 궁금해서 공항에 있더 학생들의 수학여행 일정책자 하나를 챙겼습니다. 나중에 집에와서 그 학생들의  수학여행코스를 훑어봤습니다. 한국에서 학살의 역사가 가장 깊이 새겨진 제주도를 갔는데 학살의 역사를 학습하는 코스가 없었습니다. 일정엔 유명관광지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제주도에는 4.3 유적지가 많습니다. 학생이라면 4.3유적지 한 곳 정도는 둘러봐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제주도 오는 학교는 그 점 고려하고 갔으면 합니다. 이 사회를 위해 아이들에게 몇시간이라도 제주도에서 학살의 역사를 배우게 했으면 합니다. 

Posted by 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