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경찰과 회사가 쌍용차에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공장엔 대형화재가 발생했고 노조원 두명이 추락했다고 한다. 전쟁터와 다름없는 상황이 한반도의 한 곳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자본일까 노조일까?

겉으로 보면 노조에 더 큰 책임이 있어 보인다. 노조원들 쇠파이프와 방패를 들고 무장한 채 공장을 봉쇄하고 있다. 제 3자인 경찰이 그 사이에서 노조원과 맞서고 있고 당사자인 회사는 그 현장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이다. 카메라로 전해지는 그림을 보면 노조는 강성이고 회사는 약자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보이는 건 빙산의 일각이다 그 밑의 95%를 봐야 실체를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은 몸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쇠파이프를 들고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더 벗겨낼 것도 없는 속살 그대로다. 반면 기업은 자본으로 수겹의 외피를 입고있다. 언론으로 감싸고 용역으로 감싸고 최후엔 재산권을 내세워 경찰을 걸칠 수 있다.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 노동자는 속살을 내보이고 기업은 여전히 몇겹의 외피를 둘러싼 모습으로 이 사태에서 비쳐지고 있다. 이러니 속살을 내보인 노동자가 흉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려면 자본이 걸치고 있는 몇겹의 외피를 꿰뚫어봐야하고 노동자의 맨살에선 절박함을 읽어야 한다.

노조는 다 같이 살자고 했다. 한 명도 자르지 말고 무급순환휴직으로 모두 쌍용차의 노동자로 남자고 했다. 그렇게하면 사측의 구조조정안과 동일한 효과의 절감효과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주장이 사측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강경한 요구인가? 함께 살자는 건 기업에겐 금기사항인가? 돈을 똑같이 아낄 수 있다는 데 왜 거부하는가? 함께 살면서 아끼면 기업이 아닌 자선단체 같아서 그렇나? 구조조정해가며 절감해야 기업답다고 생각하는 걸까?

회사는 구조조정을 반드시해야겠다고 한다. 쌍용차에서 그들이 원하는 숫자의 노동자들을 몰아내야 기업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지 않으면 어떤 자본도 투자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노동자를 짤라야 투자가 있다? 그렇다면 회사는 지금 자본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동자를 짜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은 지금 자본을 위한 액션을 취하고 있단 말인가.

쌍용차를 살릴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한명도 자르지 않고 같이 가면서 살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을 자본이 선호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투자이익을 빼가려면 회사를 자신들 맘대로 조종해야하는데 노조가 있으면 그러기 쉽지않기 때문이다. 자본은 회사의 이익을 노조와 나누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걸 꺼려하는 것이다. 회사는 자본에게 그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해드리겠다며 노동자를 짜르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다시 생각해보자. 누가 강성인가? 자본인가 노조인가? 노조는 같이 살자고 한다. 너무나 인본적인 얘기다. 노조는 이러한 인본주의적 주장을 온몸을 던져 알리고 있다. 자본은 다 살려줄 수 없다고 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명이라도 더 짤라야 한다는 주장을 노동자와 가족들 앞에 들이대고 있다. 그 잔인한 자본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용역을 동원하고 경찰의 진압을 부추기고 있다.

누가 강성인가? 자본을 위해 절대 같이 살 수 없다는 회사인가 다 같이 살기위해 무급순환휴직하겠다는 노조인가? 

쌍용차는 결국 자본과 인간의 싸움이다. 이 세상을 자본의 논리로 지배하겠다는 강성자본과 그에 맞서는 인간의 대결이다. 

노조가 강성이라는 사람들. 자본의 승리를 바라는 그대들은 혹 캐병진이신가? 평생 자본의 거시기나 빨고 살아갈 캐병진말이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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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비 2009.08.05 1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강성자본... 타협할 줄 모르는 강성자본에 그들의 대리인 국가권력. 이것이 문제지요. 예리한 표현이시네요.

  2. Teferi 2009.08.05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경에 '네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는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거다란님이 노동자를 전부 고용하고도 쌍용차를 살릴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거다란님이 쌍용차를 사서 경영하시면 됩니다. 지금 파산을 앞두고 있는 쌍용차의 순자본가치는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채권자에게 갚을 채무는 존재하겠지만요. 자본주의는 얼마든지 거다란님의 의사를 존중합니다. 거다란님이 쌍용차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을 행동으로서 증명해 보이십시오. 거다란님이 현금이 없다면, 거다란님의 신용으로, 사업계획서로 자금을 조달해서 쌍용차를 인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거다란님이 쌍용차 정상화에 성공하신다면 님은 님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 외에 주식가치의 증가로 인한 엄청난 부도 손에 얻게 될 것입니다.

    • 커서 2009.08.06 0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성경은 성경 믿는 분에게 인용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성경이 제겐 별 쓸모가 없는 책이라.

      지금 님의 생각이 바로 자본의 논리 안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자본의 논리 안에서 머리를 굴리니 자본의 소리는 옳고 노동자의 소리는 개소리로 들리는 거지요.

      노조가 쌍용차를 살릴 수 있다고 무급휴직하자고 하잖아요. 노조 말 따라서 해보면 되지. 무슨 애들 말따먹기도 아니고 니가 나가서 쌍용차 살려보라니. 성경이 그렇게 유치한 책인가요. 성경인용하는 사람들 논리가 이정도라니...ㅉㅉㅉ


      그런데 쌍용차 노동자가 제시하는 방안은 자본의 논리 안에서도 노동자를 모두 고용하고 쌍용차를 살리는 방법입니다.

    • Teferi 2009.08.06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노조말 따라서 했을 때, 손실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손실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나요? 거다란님이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확신하신다면 거다란님이 쌍용차를 인수하여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를 책임지고 쌍용차를 경영하면 됩니다. 그러나, 거다란님이 그럴 의사가 없다면 거다란님은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것입니다.

      거다란님도 손실을 감수할 생각이 없는데, 누구에게 손실을 볼 가능성을 감수하라고 강요하겠습니까? 자본의 논리와 노동자의 논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류를 범하시는 것입니다. 손실을 피하려는 인간의 논리만 있을 뿐입니다.

  3. buon 2009.08.06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본'이라는 두루뭉술하고 부정적인 단어 대신 좀더 본질에 가까운 '주주'라는 단어를 넣으세요.
    강성주주? 그런 게 존재할 수나 있는 개념입니까?

    다시 정리하면 "쌍용차 구조조정이 실패하면 기다렸다는 듯 주식을 팔아치울 예정인, 그럼으로써 구조조정을 하도록 압박하는 주주들이 바로 강성이다"라는 주장이신데..... 징징대는 대상이 글러먹었습니다. 왜 물이 아래로 흐르냐고 투덜대는 것과 비슷한 주장이군요.

    • 커서 2009.08.06 0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주의 '본질'이 '자본'이고 '주주'는 자본이 '구체'화 된 거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쓴다고 다 글이 아니라는 거죠.

    • buon 2009.08.06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 그냥 뜬구름만 잡는 소리를 반박으로 삼으시면 곤란합니다. 주주의 본질이 자본이고 자본이 구체화된 게 주주라고 칩시다. 그게 제 요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주(든 자본이든)가 돈 벌리는 회사에 투자하고 가치가 없는 회사에서 돈을 빼는 건 자연법칙처럼 필연적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자본의 흐름은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주식 팔지 말라 인간애에 호소한다고 폭락하는 주가가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4. 송순호 2009.08.06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본이라는 것이 참 살벌한 것이네요.
    물론 자본도 사람의 탐욕에서 출발하겠지만 말입니다.

    쌍차 공장에 경찰이 진입하면서
    무차별적 폭행을 저지르는 뉴스를 봤습니다.
    방패로 찍고...
    곤봉으로 내리 치고..

    개 새끼들...
    개= MB
    야가 대통령이라니....

    • 커서 2009.08.06 16: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본의 논리를 그냥 자본주의의 원리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내비두면 노예제가 부활할지도 모를 것 같다는 걱정마저 듭니다.

  5. 玆山 2009.08.06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성노조는 없다고 봅니다..
    다 언론이 만들어 놓은 말들이죠..
    학습된 무기력이란 말이 있듯이 나도 모르게 쇄뇌를 당한거죠

    님께서 말씀하신 강성자본.. 맞는 말 같아요

    회사가 망하는게 결코 노동자들이 회사를 잘 못 경영을 해서 망하는게 아닌데
    결과적으로 보면 경영진보다는 노동자가 길거리로 쫒겨나는 상황!!

    나또한

    우리회사도 노조생기고 20여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임.단협 기간이 오면
    죽는 소릴 합니다..

    국제유가가어떻다..
    세계경제가 어렵다..
    앞으로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그러하니 너희들 누리고 있는 조그마한 복지마저 축소해야한다..

    항상 임.단협 기간이 오면 이런 개악을 들고 나오니까
    노조로써는 파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요

    그럼 조중동은 그러지요 000회사 또 파업 ㅋㅋ

    왜 그들이 파업을 하는지 절대 보도는 안하고 자본이 흘려준 자료를 그대로 싣죠..

  6. blues 2009.08.07 0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성(저질)자본의 서슬에 굴복한 강시(좀비)노동자들이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에 펼치는 폭력을
    보면서 문득 아래 시가 떠 오르더군요.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콩깍지로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울고 있다.
    원래 한 뿌리에서 자랐는데
    서로 삶는 것이 어찌 이리 급할까?.

    위 시는 조조의 아들 조비가 동생인 조식을 겁박하는 상황에서 칠보를 걸으며 죽음과 삶이란 위태한 줄타기 속에서 쓴 시입니다.

    자본의 위력에 굴복하여 동료들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추한 모습.... 물론 지붕 위에서 80년 광주를 그대로 재현한 경찰특공의 연기력에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보다 한 솥밥을 먹던 동료와 그 가족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면서 많이 분개하고 마른 가슴에 비가 내리더이다.
    이 개같은 세상에....

    더 미칠 노릇은 쌍용노동자들이 굴욕에 가까운 타협에 대해 '쌍용주식'을 운운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에 더 많은 절망을 하겠더이다.
    그것도 노조활동을 조금이나마 한다는 사람들이...
    이건 아니잖아요.

    절망적으로 개같은 세상이 되는가 봅니다.

    • 커서 2009.08.08 1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상식 이전에 공동체의식이라도 좀 회복되었으면 합니다. 같이 사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개념이 하나도 없는 좀비들만 득실 거리니...

  7. 하아암 2009.08.08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질'을 '폭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죠. ㅠ 휴...

    • 커서 2009.08.08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세계와 미디어가 그들의 논리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간파하기가 쉽지는 않죠. 계속 주시하고 관찰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