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의 살아남은 자들은 노조를 비난했다. 말 뿐만 아니었다. 회사 앞에서 사람들을 조직해서 물리력도 행사했다. 살아남은 자들의 아내들은 쌍용차 앞에서 단식을 하던 민노당 강기갑대표에게 물을 끼얹기도 했다. 

쌍용차 직원 아내들 "국회의원 물러가라" - 오마이뉴스
[5일 쌍용차 공장 주변 풍경] 시민사회단체 인사 폭행당하기도 





지금 어제의 동료를 증오하고 그들을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자들은 누구이가? 공장안의 죽은 자들의 동료들이다. 그들 또한 죽을 뻔 했었는데 간발의 차이로 살아났다. 운명이 갈리자 그들은 즉각 구사대가 되고 노조의 파괴자로 돌변했다. 

산자들은 죽은자들 때문이라고 한다. 공장을 떠나지 않는 그들을 치워야 자신들이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산자들은 자신들을 삶과 죽음의 심판대에 세우고 공장 안의 동료들에게 죽음을 명령했던 자들의 편이 되었다. 죽음을 명령받은 자들에게 왜 빨리 죽지 않느냐며 죽음을 명령한 자를 대신해 판결문을 들이댄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동지를 잘라내는 합의안에 서명할 수 없다. 조합원을 위해 모인 조합이 조합원을 잘라내는데 서명하면 그 순간 노동조합의 정체성은 상실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는 동료를 죽이지 않고 살아나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강구해온 것이다. 반면 자본은 정리해고가 노동에 가하는 파괴력을 잘 알기에 그 기대를 품고  기어코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쌍용차의 사측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딜레마를 얼마나 인지하고나 있을까? 만약 쌍용차노조가 이렇게까지 저항하지 않았다면 산자는 지금보다 더 적었을 것이다. 산자 중에 상당수는 노조가 있기에 살 수 있었는데 그들이 지금 노조를 쫒아내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이번 한번만 살고 말 것인가? 노조가 와해되면 그 다음의 방패막은 사라진다. 노조가 와해된 쌍용차에서 사측은 정리해고의 칼을 맘대로 휘두를 것이다. 지금 사측 노동자들은 회사의 다음 구조조정을 위한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강자는 약자를 게임의 법칙으로 다룬다. 고대격투기처럼 둘을 싸움붙여 이기는 자에게 삶을 주겠다는 식이다. 쌍용차는 산자와 죽은 자로 갈라놓고 파산이냐 정리해고 수용이냐를 선택하라고 했다. 그러자 산자들은 게임을 끝내기 위해 죽은 자들에게 달려갔다. 쌍용차의 사측 노동자들은 부당한 게임으로 끌어들인 강자에 대해 동료와 함께 맞서지 않고 같은 약자인 공장 안의 노동자들을 내모는 게임에 몰두한 것이다.

약자들은 자신들을 게임으로 끌어들인 사람에 대한 증오보다 앞에 선 같은 처지의 약자를 더 증오하게 된다. 게임의 유리한 진행을 방해하고 흔들려고하는 자들에게 득달같이 달려든다. 쌍용차 사측 노동자들은 같은 공장안의 노조원과 그들을 위해 달려온 시민들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강자는 게임의 법칙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해 약자 간에 게임을 시켜놓고 자신들은 빠져버린다. 부당한 게임을 만든 자들이 받고 져야할 비난과 책임은 게이머가 되버린 약자들이 모두 덮어 쓴다. 강자들이 만든 게임에서 약자만이 남아서 서로를 저주하는 것이다. 강자는 이렇게 약자를 지배한다.

중고차를 한대 살 계획이었다. 쌍용차 사태를 보면서 중고차가 아니라 새차를 사면 어떨까 생각했다. 쌍용차가 노사가 합의하고 다시 가동된다면 무리하겠지만 할부를 해서라도 쌍용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어제 합의를 보고난 후 그런 마음이 싹 가셨다.

강자는 게임의 법칙을 만든다. 나도 내 가족의 차에 있어선 아주 잠시 강자가 될 수있다. 내가 불매하는 한 대는 작지만 이런 한대가 모이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면 강자가 되어 우리도 게임의 법칙을 만들 수 있다. 소비자인 우리가 만드는 게임의 법칙은 물론 불매가 될 것이다.

나와 함께 게임의 법칙 만들어 갈 사람들 없나? 그 게임의 법칙에 자본가들을 올리고 싶다.

Posted by 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