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또 틀린 말이다. 반복되던 역사는 혁명 앞에서 반복을 멈춘다.

매트릭스의 니오는 설계자로부터 자신 앞에 서너 명의 니오가 더 왔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이전에도  선택받은 자들이 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수퍼파워의 니오도 결국은 반복되는 역사의 섭리를 피할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설계자는 어떤 선택을 해도 반복을 피할 수 없다면서 그중에서 좀 더 유리한 선택을 할 것을 조언한다. 그러나 니오는 설계자가 제시한 것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니오는 사랑하는 여인도 시온의 인간도 아닌 기계들에게로 달려간다. 

니오는 제시된 선택이 아닌 혁명을 했다. 니오는 설계자가 제시한 것 중 하나를 선택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닌 선택지에 없는 길을 갔다. 결국 니오의 혁명은 시온의 멸망이라는 반복을 멈추게 했다. 선택지에 없는 길 그게 바로 혁명이다.

혁명이 역사의 반복을 멈추게 하는 것은 물리력 때문이 아니다. 물리력은 반복을 지연시킬 뿐 멈추게 할 수 없다. 역사의 반복을 멈추게 하는 것은 가치이다. 혁명이 역사의 반복을 멈추게 하는 것은 혁명이 가치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고대의 삶의 방식은 예수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사랑이라는 가치에 의해 반복을 멈추었다. 프랑스혁명의 박애의 가치는 인종차별이 죄악임을 알렸다. 자유의 여신상이 표상하는 미국혁명은 인간에 대한 권력자의 구속을 부당한 것이라 가르쳤다. 혁명이 사랑과 박애와 자유의 가치를 만들었고 그 가치들은 인간을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에서 구해냈다.

지식은 가치를 만들지 않는다. 말로 논리는 만들어도 그 논리로 가치를 이룰 순 없다. 가치에 반대하는 자들도 얼마든지 반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논리 대결을 백날 해봐야 논쟁만 있을 뿐 가치는 나오지 않는다. 가치는 희생에서 나온다. 반론할 수 없는 인간의 희생이 가치를 만든다.

혁명이 가치를 만드는 이유는 혁명에 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선택지에 있는 보기들은 삶을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선택지에 없는 길을 가려면 죽음을 무릎쓰거나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희생 위에 쓰인 주장은 사람들에게 그 이유에 대한 생각을 집중적으로 하게 만들고 그렇게 해서 그들이 희생으로 쓴 주장 위엔 가치가 실리게 된다.

니오가 시온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리력이나 판단력이 아니었다. 매트릭스는 그보다 더 강하고 상대할 논리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매트릭스엔 가치가 없다. 계산이 아니라 희생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치를 기계는 만들 수 없다. 매트릭스에 없는 유일한 것은 가치이고 그것은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고 인간은 그 가치를 희생으로 만든다. 결국 니오는 희생을 행동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행동하지않는 양심은 악"이라고 했다. 이 말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은 죽음을 무릎썼다. 의문의 교통사고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일본에서 납치되어 바다 속에 산 채로 수장될 뻔했고, 군사정권에 의해 사형도 선고받았다. 여러차례 자신을 희생한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의 가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김대중이 만든 민주주의 가치 앞에 이땅의 독재의 역사는 반복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철저히 실천했다. 조금의 거짓이나 양심을 속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독재의 잔당들은 노무현을 흠집내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도 별 수 없다며 민중을 현혹시키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가치를 실천하면서 그 가치와 한몸이 되어버린 노무현의 흠집은 바로 민주주의의 흠집이었다. 결국 노무현은 자신이 표상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가치를 만든 자는 가치를 지킨 자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 슬픔의 충격에 87일 뒤 가치를 지킨 자를 따라 가치를 만든 자는 따라갔다. 두 사람이 떠난 후 그들이 만들고 지킨 민주주의 가치는 이제 이땅에 완전히 새겨졌다. 이 가치에 더 이상 희생을 바칠 일은 없을 것이다. 남은 일은 반복되는 독재의 역사 앞에 이 가치를 들이대고 멈추게 하는 일이다. 남은 우리는 가치를 위해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 눈을 부릎뜨고 지적하는 작은 불편만 감수하면 된다. 

이것도 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악 중의 악이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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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 2009.08.22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민주주의는 후퇴하고말것입니다.
    어떻게 이런일들만 일어나는지,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2. 공감 2009.08.23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글에 정말 공감합니다. 삶에 항상 이유를 붙이고 강건너 불보듯 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다.

    옳은 말입니다.

    반성합니다.

  3. 케케96 2009.08.23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4. 까치 2009.08.26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이렇게 잊지않고 있는 분들이 있어서~~
    두분의 행동하는 양심을 우리 모두가 이어나가기를 기대합니다.

  5. 종종걸음 2011.12.01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박하셨던 분....늘 그리운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