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오치근 그림책 전시회다. 오치근씨가 어떤 작가인지 모르고 그림책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이 전시회에 들어가게 된 건 순전히 아이들 그림책을 전시한다는 사건 때문이다. 얼마나 독특한 그림책이길래 전시회까지 할까 하는 의문에서였다. 전시장의 그림들을 보는 순간 전시할만한다는 생각은 들었다. 일단 수묵화로 그린 동화책 원화가 새로웠다. 그리고 전시장 천장 근처에 붙여진 큰 화선지의 그림들도 눈길을 끌었다.  




이게 전시된 그림들이 출판된 동화책이다. 먼저 그림을 감상하기 전 그림책의 내용부터 살펴봤다.





스토리는 이랬다. 연체동물인 오징어가 자신에게 뼈가 없는 것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왜 뼈가 없는지를 여기저기 묻고 다녔다. 농어는 오징어에게 그냥 생긴데로 살라며 핀잔만 주었다. 또 다른 모이라는 고기는 "못난 탓에 제 뼈까지 잃은 거"라며 "뼈 없이 살아가"라고 더 모멸찬 얘기를 했다.




그러나 농어와 모이의 말에 분하고 서글펐던 오징어는 장대에겐 다른 얘기를 듣는다. 검복이 오징어의 뼈를 감쪽같이 뺏어갔다는 것이다. 장대는 검복을 찾아가 뼈를 찾아오라며 오징어에게 조언해준다.




그러나 힘센 검복은 오징어에게 쉽게 뼈를 내놓지 않는다. 오징어는 주변 고기들의 조언을 들으며 몇차례의 실패 끝에 마침내 검복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나 싸움에서 검복이 불리해지자 오징어에게 뼈없이 살라며 조롱하던 농어와 또이가 갑자기 달려와 검복을 도운다. 그러자 오징어에게 뼈를 찾아오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다른 고기들이 오징어 편에 붙어 이 싸움에 뛰어든다.




오징어는 싸움의 와중에 뼈 하나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검복 패거리가 완강하게 막아서는 바람에 다른 뼈들은 더 찾을 수 없었다. 이후 오징어 패와 검복 패는 서로 대립하게 된다. 동화는 두 패가 대립하는 이 그림으로 끝났다.

일반적인 동화와 분명히 다른 내용이다. 이 동화는 착한 약자가 나쁜 강자를 물리친다는 점에서는 보통의 동화와 유사하지만 그 과정이 확연히 달랐다. 보통의 동화가 막연히 왕이나 신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는 것과 달리 이 동화 속의 오징어는 아주 현실적인 저항과 연대의 전략으로 승리를 쟁취한다. 




다른 동화책 두 권도 내용이 비슷했다. 산골총각이라는 동화는 오소리에게 재산을 빼앗긴 산골총각이 수차례의 도전 끝에 결국 오소리를 물리치고 오소리가 마을에서 뺐아간 모든 재산을 찾아 마을 사람에게 돌려준다는 내용이다. 여기서도 산골총각은 여러 사람들에게 방법을 묻고 실전에서 써보면서 점점 오소리를 이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오치근의 동화는 남들보다 모자라는 것, 빼앗긴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빼앗긴 것을 돌려받기 위해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상대의 약점을 알아내 적절히 공략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과 연대도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동화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저항하고 연대하는 것은 정치적 행동이다. 따라서 정치적 행동을 가르치고 있는 오치근의 동화는 정치동화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동화가 아이들에게 정치를 가르친다는 것이 당혹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꿈과 희망 속에서 살아야 할 아이들에게 저항과 연대는 좀 과격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예전의 동화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 비정치적인 순수한 정서는 아니었다. 과거의 동화는 지배자인 공주나 임금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 시켜주는 내용들로 가득찼다. 그들에게 복종하는 자는 복을 받고 맞서는 자는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가르친 게 과거의 동화이다. 이미 동화에는 예전부터 정치적 메시지가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오히려 과거의 동화가 소수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한 것이었다면 오치근의 동화는 절대 다수를 대변하는 동화라는 점에서더 올바른 것이다. 그리고 동화가 현실과 분리된 환상 속의 세계를 보여주어야 하는 법은 없다. 동화가 목표로 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의 교육이다. 현실과 동화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나중에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현실의 문제에 대해 마법이나 초월자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가르치는 것이 더 유용한 교육일 수 있다.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올바른 정치를 가르친다면 그들은 나중에 선거 등의 국가사에 적극 참여하는 진정한 시민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참여하는 시민들이 많아지면 이 나라 민주주의도 자연 공고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게 아이들에게 정치동화를 읽혀야할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이 동화책을 그린이는 앞서 말한 오치근이고 글쓴이는 백석 시인이다. 아래 내용 참고 하시길.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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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비단안개 2009.09.14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이 백석은 일제시대때 태어나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럼 혼자가 아닌 연대로 일본에 저항과 투쟁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겠는 데요,
    오늘을 살아가는 답이 이미 몇 십년전에 나와 있었네요.

  2. 임현철 2009.09.14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입니다.

  3. 구르다 2009.09.14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을도서관에 수서를 권해보아야 겠습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4. 무터킨더 2009.09.14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요한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세상을 먼저 알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맑고 깨끗한 동심많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을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지요.
    잘못된 세상에서는 그 깨끗한 동심도 짓밟힐 수 있는 것이니까요.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인재로 키우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은 글과 그림 잘 보고 갑니다.

    • 커서 2009.09.15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현실을 가르쳐 주는 방법도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백석시인의 글이 딱이군요.

  5. 백분토론 2009.09.14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생각하는바와 비슷한거 같아요...
    교육이란게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만을 말해준다고 해서 교육은 아니죠..
    오히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것도 교육인거죠..
    요즘 개콘에서 하는 '워워워' 코너에 보면 희망이 소망이 절망이 이렇게 꽁트를 하는데
    어린이들에게 밝은 미래만 보여주는건...
    이런 정글같은 사회를 만들어놓고 커서 도태되거나 노예로 살라는 말밖에 안되는거 같아요
    차라리 절망이 같은 마인드는 과하겠지만.. 최소한 현실을 바로 볼수있는
    또는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볼수 있는 능력은 줘야되는거 같네요 ㅎㅎ

    --------
    그리고 덧붙이자면... 인터뷰 했던 내용중에... 뭔가 좀 더 추가하고자 하는 말도 있었는데..
    전날 술먹고 정신없이 적어서 그런지...ㅎ
    나중에 인터뷰 올라온거 보고 몇가지 사례나 경험이 생각나드라구요 ㅎㅎ
    다음에 기회되면 다시 말씀드릴까 합니다~ ㅎ

    • 커서 2009.09.15 1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콘 그 코너에 대해서 함 써봐야겠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리고 백분토론님 그 추가하는 내용 나중에 메일 부탁드려요. 제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