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우리 아이들이 신종플루 검사받는 장면. 다행히 신종플루는 아니었다.


엄마 신종플루 걸리면 나쁜 학교예요?


아내와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아이가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대뜸 던진 질문입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이랬습니다.

오늘 아이가 짝지에게서 학교에 신종플루 환자 두명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아이들끼리 얘기라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쨌든 아이는 이 이야기를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초등학교 3학년 사촌언니에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사촌언니가 "니네 학교 그러니까 안좋은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촌언니의 그 말에 기분이 상해진 아이가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한 겁니다.  

아이의 질문에 아내가 간단하면서도 재치있는 답변을 했습니다.


민지야 SS501 김현중도 신종플루 걸렸잖아. 그러면 김현중도 나쁜 사람이야? 아니지? 병 걸린 게 나쁜 건 아니거든.


아내와 아이의 통화를 듣고나니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가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눈이 멀어지는 병이 온 도시에 전염되자 정부는 눈먼자들을 수용소에 격리합니다. 처음엔 수용자에 대해 결코 차별하진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인도적인 도움도 제공합니다. 그러나 점차 전염병이 확산되면서 수용소의 눈먼자들은 저주와 증오의 대상이 됩니다. 나중에 군인들은 눈먼자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장난삼아 죽이기도 합니다.


그냥 계속 걸어와, 계속 이쪽으로 걸어오란 말이야, 정문 너머에서 병사 하나가 짐짓 우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눈먼 사람은 일어서서 세 걸음을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멈추었다. 말이 이상했던 것이다. 이쪽으로 계속 걸어오라는 말은 계속 가라는 말과는 다르다. 이쪽으로, 이 방향으로  계속 오면 너를 부르는 사람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총알과 마주쳐서 현재의 실명 상태를 다른 형태의 실명 상태로 바꾸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범죄에 가까운 권유를 한 사람은 그 성질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은 병사였다. 상사는 즉시 그를 꾸짖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연달아 두 마디의 명령을 뱉어냈다, 정지, 뒤로 돌아.



과학이 발달하기 전 전염병은 신의 저주로 여겨졌고 저주에 걸린 사람은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전염병에 걸리는 순간 사람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함부로 다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도 모두 사라지지 않고있습니다. 80년대 에이즈에 대해선 동성애자나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내린 하늘의 천벌이라는 말이 돌기도 했습니다.   

어린 조카가 아이에게 한 말은 전염병의 공포에 대한 본능적 반응입니다. 사람들이 전병병에 걸린 사람에게 자꾸 도덕적, 종교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전염병 걸린 사람을 격리하고 멀리해야할 이유를 본능적으로 찾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차별을 함으로서 자신은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위를 하고 싶은 맘도 있을 것입니다.

신종플루에 방어 본능을 보이는 것은 어린 조카뿐 아닙니다. 어른들에게도 차별적 인식을 드러냅니다. 신종플루가 외국가서 놀고오니까 걸리는 병이라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질병을 저주로 보는 인식의 변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신종플루 확진을 받은 김현중에게 악플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질병을 환자의 인격과 동일시하는 중세적 인식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미 과학적으로 전염병이 밝혀졌고 국가적 예방시스템도 어느 정도 가동되는 오늘날도 전염병에 대한 사람들의 방어적 본능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신종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자꾸 발생하는 것을 볼 때 신종플루를 둘러싼 이러한 사건들이 단순한 해프닝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반복되다 보면 전염병에 대한 차별이 서서히 커지고 이 사회에 고정된 인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강구되는 강력한 수단에 이런 차별이 녹아들게 될 것입니다. '차별'을 '예방'이라고 하며 환자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병은 인간 역사에서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인간은 질병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그렇다면 질병의 예방과 함께 공존도 얘기해야 할 것입니다. 질병과 공존하지 못한다면 우리끼리도 공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눈먼자들의 도시' 속의 끔찍한 장면은 바로 예방만 있고 공존은 없는 극단적 세상의 모습입니다.

점점 환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제 전염병의 차별에 대한 주의와 고민도 있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Posted by 커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뭔소린지;; 2009.09.10 0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존도 니미럴 해결책이 있어야 공존하는거지.....우리는 하나니 같이 뒈지자 이소린가??

  2. 똥꼬아빠 2009.09.10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 연관될 수도 있겠네요.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 흥미있게 보았는데요. 저는 우리사무실에서 운영하는 미생물 배양시설에서 미생물 냄새(?)가 솔솔 풍겨날때면 "12몽키즈"가 생각나서 가끔 섬뜩하던데요.

    • 커서 2009.09.12 1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들 현실의 하 장면을 영화나 소설의 장면에 매치시켜보고 그러는군요. ^^

      12몽키즈도 재밌게 봤죠. 시간여행 빼곤 좀 현실적으로 느껴지더군요.

  3. 박희성 2009.09.12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다란님 ! 하도 오랜만이라 이름도 잊어버릴 지경이네요 .
    내마음의 수필인 까시님의 부탁을 받아 바톤 이어받기 릴레이 수필을 썼답니다.
    주제는 "나이 "입니다. 내마음의 수필 까시니믜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쓰는 요령이 나와 있습니다.
    바쁘겠지만 저는 거다란 님을 이어받기로 지정했습니다.
    아무쪼록 좋게 봐 주시고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4. zz 2009.09.20 0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밋네 인간이란게 다그렇지 어차피 내리는건 뇌니까 뇌는 자기보호를 위해 무슨짓이든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