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일본의 한 플라모델 회사의 정신대피규어가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적 있습니다. 결국 한 블로거가 제조사와 접촉하여 한국의 위안부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면서 사건은 진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 플라모델시장이 상당하다는 것도 보여주었습니다. 소수 매니아의 취미정도로 알려진 플라모델이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낼 정도로 저변이 넓다는 것을 확인시킨 것입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플라모델 중에서도 건플라 사진이 많이 눈에 띕니다. 이러한 건플라 게시물에 대한 댓글 호응은 좋은 편입니다. 얼마전엔 건담의 무기들을 실제로 개발하겠다는 기사가 포털 메인에 일제히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이것만 봐도 건플라가 한국에서 꽤 인기 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과연 어떤 매력이 있길래 사람들은 건플라에 빠져드는 걸까요. 짧게는 서너시간 길게는 며칠이 걸려 만드는 이 플라모델을 통해 사람들은 무엇을 얻는걸까요. 건담관련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는 자쿠러님을 한 플라모델 매장에서 만나 건플라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자쿠러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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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쿠러님이 만드신 '자쿠'



저희들 어렸을 땐 플라모델이라면 탱크나 장갑차 비행기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플라모델도 그 분야가 상당히 다양하더군요. 건프라도 결국 플라모델의 일종입니다. 플라모델을 어떻게  분류하고 있습니까.

크게 '스케일'과 '캐릭터'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보셨던 탱크 등의 전쟁무기가 바로 스캐일 플라모델입니다. 건프라처럼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각종 SF 메카나 인물을 모형화한 것은 캐릭터 플라모델이고요. 
플라모델명칭에 대해서
Plamodel( 플라모델)이란 명칭은 원래 일본의 Marushin이란 업체가 상표등록한 것으로, 이후 권리를 양도받은 일본공업완구협회가 표준 용어 지정하며 널리 퍼지게 된 단어이다. 정작 플라모델을 태동시킨 서양에선 명확하게 이에 대응하는 단어가 없이 model kit, hobby kit, miniature kit 등을 혼용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국립국어연구원에선 얼마 전 플라모델을 외래어로 규정하고 '조립모형'이란 순화어를 제안했다.

스케일은자동차나 철도 모형을 제외하면 흔히 '밀리터리 플라모델'로 불리울만큼 전차, 전투기, 전함, 군인 등 각종 병기에 치중하여 모형화하고 있습니다. 세분하면 육상병기를 모형화 한 것을 AFV(Armoured Fighting Vehicle, 장갑전투차량), 전투기나 민항기 우주선은 Aero, 전투함이나 여객선, 잠수함은 Ship, 민간 스포츠용 차량 및 모터사이클로 Auto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잘 안 알려졌지만 철도 문화가 발달한 서양 및 일본에선 매우 폭넓은 저변과 지지를 받는 철도 모형 분야가 또 있습니다.  각 장르에 같이 어울릴 수 있는 피겨 모형이나 각종 액세서리도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합니다. 얼마 전 국내 매스컴을 통해 잠시 논란이 되었던 정신대 피겨도 이런 피겨 & 액세서리 분야이며, 특히 각종 시대별 군인 피겨는 유럽을 중심으로 히스토릭 피겨(Historic Figure)라는 독자적인 분야를 형성할만큼 가장 전통적이며 저변이 가장 넓은 모형 분야이기도 합니다.

캐릭터는 일본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는데 90년대 들면서 정교한 완성품 모형이 널리 퍼지며 전통적인 플라모델 시장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건플라입니다. 일본 아니메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에 나오는 각종 로봇을 모형화한 일본 반다이 사의 독점 장르입니다. 원래는 SF 로봇 캐릭터 모형 분야였지만 일본 및 아시아권 모형 시장에선 따로 독립시켜 구별할 정도로 거대해졌습니다. 원작이 일본 아니메인만큼  일본 시장이 대부분을 점하지만 90년대 이후 인터넷으로 한국을 비롯한 여러 아시아 국가에 건담 시리즈가 퍼지며 급속히 시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각종 대중매체에 등장한 로봇이나 메카를 모형화 하는 분야 SF 메카가 있습니다. 헐리웃 영화나 일본 아니메/만화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고 스케일과 마친가지로 캐릭터도 각종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모형화한 캐릭터 피겨가 있습니다.

정신대피규어사건에서 소통은 없고 소동만 일으킨 한국언론

플라모델은 어떻게 시작된 것입니까.


기원은 멀게는 근대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군 출신 귀족이나 부자들이 과시나 취미 목적으로 전투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Diorama: 모형으로 만든 정경)나 건축물, 함선의 정밀 축소 모형 만들거나 장인들로 하여금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점차 취미용 공예품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고, 20세기 초반엔 기차 모형도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며 모형 제작이나 수집 취미가 성인용 취미의 한 분야로 독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당시까지만 해도 모두 장인급 고급 손놀림이 필요한 수작업이었습니다. 제작 시간이나 비용이 만만치 않아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호사스런 취미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전통적인 정밀 축소 모형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것이 바로 세계 제2차대전입니다. 당시 커다란 부대 배치 상황판에 각종 실제 병기를 본딴 말을 쓰곤 했는데, 이를 납품하던 회사들은 플라스틱 사출 성형을 이용하여 말들을 대량 생산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군의 수요는 대폭 줄어들었고 납품 업체 중 일부는 이를 민간용으로 판매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플라모델의 직접적 기원입니다. 가장 초창기의 회사였던 영국의 Airfix 사를 비롯하여 미국의 Monogram과 Level, 프랑스의 Heller 등 많은 업체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며 플라모델은 60~70년대엔 소년부터 청년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급속히 시장을 확대하고 전성기를 누립니다.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플라모델 시장 초창기부터 최신 병기보다는 세계 제2차대전, 특히 나치 독일군의 각종 병기가 줄곧 인기를 누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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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서 플라모델을 고르는 아이들. 현재 플라모델 시장의 주고객은 20-30대이다.



일본이 플라모델 시장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주일미군을 통해 서양의 플라모델을 접하고 일본도 바로 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특히 시즈오카 현에 밀집했던 솔리드 모형(목제 모형) 공방 중 Tamiya, Hasegawa, Aoshima, Fujimi, Marushin 같은 업체들이 초기의 조악한 카피품 단계를 거친 뒤 결국 70년대 이후 뛰어난 품질로 전세계를 석권하하고 주도하며 플라모델 시장의 큰 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플라모델의 캐릭터 중에 하나였던 건플라는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었습니다. 건플라는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까.
건플라 명칭에 대해서
일본 선라이즈 사가 제작한 로봇 아니메 [건담 시리즈]에 등장하는 각종 모빌슈트(작품에 등장하는 전투용 로봇을 지칭)를 반다이가 모형화 판권을 취득하여 나오게 된 것이 건플라이다. '건담 플라모델'을 줄여 건플라(GUNPLA)라고 한다. 이 이름은 반다이가 상표등록을 해놓았다.

건플라하면 반다이죠. 원래 완성품 장난감을 취급하던 반다이는 70년대 초반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플라모델 시장에 끼어들고자 자회사인 반다이모형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없이 경영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다 <우주전함 야마토>('74)가 영화 <스타워즈>의 인기와 함께 뒤늦게 대히트하자 판권을 갖고 있던 플라모델도 동반으로 대히트하며 살아나게 됩니다. 이 당시 일본 소년들의 주된 관심사는 우주SF와 밀리터리가 그 전부였다고 해도 좋을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 <우주전함 야마토>가 그런 시류를 재빠르게 작품에 도입한 덕을 본 거죠. 반다이모형은 다시 한 번 대히트를 누릴 비슷한 성향의 후속 작품을 찾고 있었는데, 때마침 대중적 흥행엔 실패했지만 청소년~대학생 SF 및 밀리터리 팬에게 많은 관심을 끌던 <기동전사 건담>에 주목하게 됩니다. 모형화 판권을 취득하여 80년 후반부터 건플라를 내게 됩니다.

건플라가 플라모델 시장을 압도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건플라가 플라모델 시장을 압도한다고 보기엔 힘듭니다. 서양 쪽은 압도적일 정도로 스케일 플라모델 시장이 강세이며 일본 플라모델 시장에서 건플라는 약 1/3 정도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만화왕국 일본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플라모델을 포함한 일본 모형 시장의 60% 정도를 각종 캐릭터 모형이 차지하고 있고, 일본 모형 시장이 전세계 모형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이 매우 큰 만큼 일본제 캐릭터 모형의 대명사로 위키페디아에 등록될만큼 알려져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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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쿠러님



어쨌든 한 캐릭터가 일본 플라모델 시장의 1/3을 장악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건플라가 매니아드에게 어필한 장점들이 있을텐데...

건플라들은 당시의 일반적인 캐릭터 모형이나 장난감과 다른 몇가지 특징을 지녔는데, 우선은 SF 플라모델의 관례였던 Non-scale(무축척) 대신 1/144라는 축척을 사용했던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방침은 제작 도중 우연히 나온 결과였는데 스케일 플라모델의 대표적인 축척 중 하나였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 건플라들을 보다 정교하고 보다 현실감있는 고품질이라 인식하게 되며 건플라가 차별성을 띄게 됩니다. 그리고 스케일 플라모델만 만들던 당시 일본의 성인층 소비자들도 밀리터리 성향이 강한 SF 로봇이라는 점과 1/144란 축척이 주는 현실감 때문에 건플라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이윽고 원작 아니메와 건플라가 언론을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사회적 이슈가 되며 엄청난 히트를 하며 일본 아니메와 장난감 업계에 하나의 신화로 자리매김 합니다.

이후 제작된 여러 후속 건담 시리즈는 원작의 흥행 요인을 잘 파악해서 아예 제작 기획단계부터 아니메와 건플라의 연동을 당연시하고,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여 충족시키는 방향을 최우선시하며 일본 캐릭터 시장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해서 현재는 반다이 주가가 건담 시리즈 흥행 여부에 따라 오르내릴만큼 건담 아니메와 건플라는 반다이의 상징이 되었으며, 건담 시리즈 작품과 건플라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조차 없을만큼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모범적이자 성공적인 미디어 믹스(Media-Mix) & OSMU(One Source Multi Use) 사례로 인정받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반다이 사는 소비자 편의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건플라의 품질 향상에 지속적인 노력을 하였는데, 그 결과가 바로 많은 이들이 귀찮아하는 접착제와 색칠이 필요없이 커터칼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완성할 수 있도록 정밀 성형 기술 확립하여 전세계 플라모델 기술 향상에 나름대로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접착제와 색칠을 해야 하는 다른 장르의 대다수 플라모델도 건플라에 사용된 기술을 참고하고 소비자가 보다 손쉽게 플라모델을 제작할 수 있도록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건플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담 원작만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시리즈가 얼마나 나왔습니까. 일본에서 이 만화 인기요인은 무엇입니까.

건담 시리즈의 원작은 79년 방영된 TV 아니메 <기동전사 건담>입니다. 이 작품이 일본 아니메 역사는 물론 이후의 각국 SF 문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우선은 NASA의 우주 개발 계획을 차용하고 상당히 구체적이며 현실 세계와 연관성이 높은 근미래 지구권의 정치 분쟁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상당수 SF가 지나치게 허구적이거나 낙관론적이고 은하계나 전우주적 규모로 실감이 나지 않던 점에 비추어 보면 매우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죠.

로봇 아니메 작품답게 작품의 주역인 로봇들도 <마징가 Z>처럼 지구의 수호신이나 수퍼맨처럼 히어로 위치가 아니라 전쟁을 벌이는 당사국들이 전차나 전투기처럼 대량으로 생산하며 소모하는 병기 일색이라는 점이 당시 밀리터리 성향이 강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입니다.

또한, 작품 속 등장인물들도 군인 신분으로 단순히 지구의 평화나 구원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위기와 고난을 당하거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고뇌한다던지, 추악한 인간군상의 양상을 다양하고 상당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연출하여 사실적인 드라마와 몰입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대다수 SF로봇 아니메가 열혈 주인공이 무적의 로봇을 타고 외계의 침략에서 지구를 구해낸다는 상투적인 도식에 얽매여 있던 상황에서 청소년 시청자들은 <기동전사 건담>에서 일종의 컬처쇼크를 받고 열렬한 지지를 보내게 된 겁니다.

그리고, '작품의 현실성'을 '건플라의 1/144 축척이라는 현실성'으로 직접 체감할 수 있게 되며 건담-건플라는 80년대 일본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습니다. 또한, 전지구적 전쟁이라는 거대한 세계관 규모 덕분에 작품의 팬 집단은 물론 각종 상업 매체에서 원작에서 언급되지 않은 지역이나 시기에 독자적인 부대나 병기 등을 모형이나 만화, 소설 등 여러 방법으로 끼워넣어 즐기는 건담 시리즈 특유의 팬덤 문화를 만들어내고 이 자체가 상품화되며 많은 인기를 누렸는데, 이러한 팬덤 문화는 오늘날의 전략전술 시뮬레이션이나 온라인 게임처럼 이용자가 가상 세계에 직접 참여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과 즐거움을 당시 팬들에게 주었다는데서 그 선구자적 의의를 찾을 수 있고 건담 시리즈가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후 만들어진 후속작들도 지구권의 전쟁-로봇 병기-전쟁 속의 인간 군상이라는 원작의 기본적인 구도를 그대로 지키면서도 작품 제작 시대에 걸맞는 현실성을 부여하며 꾸준히 인기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건담 시리즈는 크게는 원작의 세계관을 잇는 '우주세기 속편 시리즈'와, 새로운 세계관과 배경을 무대로 삼는 각기 독립된 '비 우주세기 시리즈'로 나뉘어 지난 30여 년 가까이 TV용 12개 시리즈, 극장용 5개 작품군, OVA 5개 시리즈 등 20여 개 이상의 아니메 작품과 외전 소설, 만화, 게임 등 다양한 파생 작품군을 전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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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의 설정들에 대해 얘기해주십시오. 만화가 가진 철학이라면.

원작인 <기동전사 건담>은 인류가 지구와 달을 중심으로 우주진출하여 생활하지만 제2차대전의 연합국과 추축국처럼 지구연방과 지온공국 두 진영으로 분열되고 두 진영 모두 모빌슈트(로봇)를 주력 병기로 사용하며 지구권의 패권을 놓고 전지구적인 규모로 1년 동안 전쟁을 벌인 우주세기라는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과 등장인물은 대다수가 징병된 소년병이나 군인, 정치인입니다. 특히 군이나 정치 조직 내 권력 투쟁과 음모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시청자들은 민주정이지만 부패한 기득권인 지구연방과 식민지 탈피와 기득권 타파 명목으로 독립전쟁을 일으킨 군사독재국가 지온공국, 그리고 각 진영에 소속된 등장 인물들이 보여주는 나름의 정의와 이데올로기에 선악 구분의 모호함을 느끼고 일방적으로 한 쪽을 응원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작품 속에서 우주에 진출한 인류에 걸맞는 정신적 혁신과 영원한 평화를 상징하는 뉴타입(신인류)이라는 철학적 코드가 이야기의 중요한 축이자 작품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며 80년대 초중반 일본의 유행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의 우주세기 후작들도 기본적으론 지구연방과 지온공국의 잔당이나 그와 비슷한 성향의 우주이민 두 세력의 무력 분쟁을 축으로 하며, 비 우주세기 작품들도 작품 내 명칭은 다르지만 지구와 우주 이민, 또는 지구 내 세력 집단 간의 무력 분쟁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최근 건담의 무기를 과학자들이 개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가능한지요. 건담에 나타난 무기의 기술들이 과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건가요.

건담의 세계관에선 70년대 NASA에서 입안했던 우주 개발 및 식민지 계획을 그대로 차용합니다. 핵융합 에너지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이 모두는 과거부터 여러 과학자들이 꾸준히 제안하고 현재도 지속적으로 연구 중이므로 비교적 실현 가능성이 높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작품의 핵심인 모빌슈트, 즉, 거대로봇은 실현 가능성이 낮습니다. 현재 군용으로 연구되는 보행형 로봇은 대개 인간이나 동물 크기인데다 모습도 대개는 비인간형입니다. 이런 현실의 연구 방향과 달리 건담 시리즈의 로봇은 대개 20m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인데다 그마저 과학적인 고려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실 인간의 모습 그대로 10배 키우면서 인간같은 움직임을 보여주는 건 과학적으론 불가능에 가깝거나, 가능하더라도 전투용 병기로 사용할 의미와 가치는 없습니다. 때문에 작품 속에선 모든 전자 장비를 망치며 레이더를 교란하는 가상의 입자(미노프스키 입자)를 제안하며 인간형 로봇 병기를 합리화하고 당위성을 부여하지만 이 입자 자체가 허구이므로 로봇에 대한 것은 거의 모두가 그야말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허구일 따름입니다. 인간의 모습을 본딴 거대한 로봇 병기가 등장하는 건 오로지 시청자와 로봇이 일체감을 느끼며 적과 도시를 부순다는 쾌감을 주기 때문이지요.

작품에서 플라스마 입자를 전자기 레일로 가속하여 탄환으로 삼는 입자 빔 포를 사용하는데 이런 원리를 이용한 병기는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 연구 중입니다. 다만 순수한 플라스마 입자를 탄환으로 쓰는 게 아니라 금속이나 세라믹 계열의 탄환을 화약과 전자기 레일로 복합 가속하는 전열화학포나 전자기만으로 가속하는 레일 건 등을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고자 한국 육군도 XK-2 전차의 차세대에 전열화학포나 레일 건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선보이기도 했죠.

일본 방위청에서 얼마 전 '건담을 만들겠다'고 하여 떠들썩하게 했는데 실은 미국의 랜드워리어 계획을 본딴 첨단 보병 장비 개발 계획을 홍보하기 위해 일본에서 너무나 유명한 건담 단어를 갖다 쓴 해프닝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병사의 보호를 위해 인공 근육과 관절로 작동하는 장갑강화복(파워드슈트)를 의식하고 있다고 하는데, 건담에 등장하는 모빌슈트라는 용어는 원래 파워드슈트에서 따온 것이니 슈트라는 점에선 일치한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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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건담매니아들과 시장 현황은 대략 어느 정도이고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요.

지난 80년대 중반의 무단 복제 서적(일명 로봇백과)과  건플라를 무단 복제한 국산 플라모델이 국내에서 대히트하며 당시 청소년들에게 널리 퍼졌고 이들이 현재 한국의 건담 마니아와 관련 캐릭터 상품 시장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몇몇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작년 현재 건플라를 비롯한 전체 캐릭터 모형 시장은 약 1000억원에 규모에 육박하며 이를 즐기는 인구는 최대 20여만 명, 그리고 반다이코리아에 따르면 반다이코리아를 거친 공식적 건프라 시장은 수십억원 규모지만 이에 포함되지 않는 병행수입 업체나 비공식 유통 경로를 포함하면 그 수배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내 건담 팬덤의 활동 양상은 크게는 작품 자체와 관련 영상 매체나 관련 서적류를 즐기는 작품 팬과 건플라로 대표되는 캐릭터 모형 팬으로 양분할 수 있지만, 사실 두 가지를 동시에 즐기는 부류가 대다수이며, 동시에 다수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모형 팬이기도 하므로 건담이나 건프라 팬 규모만 따로 추정하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참고로 대표적인 건플라 동호회인 달롱넷 (dalong.net)만 해도 까다로운 가입 조건에도 불구하고 20~30대를 주축으로 800여 명이며, 10대를 포함한 국내 전체 건플라 팬 규모는 최소 수만 명에서 최대 10여만 명을 초과할 수준으로 짐작할 순 있겠습니다.

과거 활발했던 한국프라모델산업이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한국프라모델산업의 위축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모형 시장 규모 자체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습니다. 다만 플라모델로 한정한다면 상당히 위축된 건 부정할 수 없는데, 이는 80년대만 해도 청소년 층이 즐길만한 여가 및 놀이용 상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플라모델이 가장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던데 따른 반사이익에 지나지 않았으며, 국내는 물론이며 전세계적으로 90년대 이후 들어 청소년층을 겨냥한 다양한 상품이 등장하며 이들이 플라모델에서 대거이탈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때문에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플라모델 및 장난감 제조사인 아카데미의 작년 매출액 250억 원 중 100억원과 70%의 제품이 성인 고객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보도가 있을만큼 국내 모형 시장도 70~80년대부터 플라모델 각종 모형에 익숙한 성인 남성층이 주요 고객으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모형 시장 규모 자체는 확대되었는데 이는 성인 고객층이 수만원~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각종 제품을 지속적으로 구입할 경제력과 수집벽을 가졌으며 그만큼 제품 가격 제체도 고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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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적으로 대히트한 아카데미의 제품



그리고, 국내 캐릭터 플라모델 시장은 건플라를 비롯한 반다이 제품이 70~80%를 차지한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지나치게 한 쪽으로 편중된 상태이기도 하며 전체 플라모델 시장에서 건플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원인 중 하나는 접착제나 색칠 없이도 쉽게 완성할 수 있는 건플라와 상당히 까다로운 기존 스케일 플라모델의 제작 난이도 차이, 그리고 완성된 형태의 모형 상품이 여러 경로로 판매되며 입수하기 쉬워져 기존 플라모델 소비층이나 신규 구매자도 플라모델보다는 완성품 모형으로 돌아서는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장 흐름에 대해 기존 플라모델 제조사들은 보다 쉬운 조립 방법과 완성품이 따라올 수 없는 고품질, 다양한 상품군 개발로 대응하고 있지만 제품 특성상 장기적으로는 비교적 소수의 마니아나 컬렉터를 대상으로 어떤 모형도 따라올 수 없는 정밀성을 지닌 고가 제품에 주력하는 형태로 전체 플라모델 시장이 안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몇몇 OEM 형태의 금형 제조사를 제외하면 현재 국내 플라모델 제조사는 아카데미 사가 유일하다시피 합니다. 이는 대다수 국내 제조사가 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플라모델을 모방하던 수준에 안주하다 80년대 말 관련 시장이 개방되며 저작권의 강화와 조악한 품질로 고객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다시피한 게 아카데미 사이며, 아카데미 사는 2000년대 초반까지 뛰어난 품질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생산하며 내수 시장에 주력하였지만 결국 국내 플라모델 시장이 수입품 위주로 재편되며 수입품의 품질과 다양성을 이기지 못하고 내수 시장마저 빼앗겨 해외 수출 위주로 전향합니다, 그나마 2000년대 이후엔 신제품 출시마저 뜸해져 현재는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국산 플라모델 제조사로 정도로 시장 영향력은 급격히 축소된 상태입니다. 한국의 금형 기술은 매우 뛰어난 편인데, 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여건이 안타깝고 현재는 수입품 일색이지만 앞으로나마 국내 모형제조사들이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 이 인터뷰는 10월29일 건대입구에 위치한 플라모델 매장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와 이후 보충이메일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Posted by 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