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찾아와 곧 지구가 멸망한다고 알려주면서 생존의 대가로 천문학적인 돈을 요구한다. 영화  2012에서 노아의 방주에 올란 탄 사람들은 일단 너무나 황당한 이 지구멸망론을 믿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증거로 천문학적인 액수인 10억 유로를 지불했다. 여기서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니 믿음의 크기가 그만하니 내 너를 구원하리라."

당장 지구 멸망의 징후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3년 뒤 지구가 멸망한다고 믿었다면 그 믿음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노아가 이웃들의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배를 만들어 살아남은 것처럼 2012의 부자들도 10억 유로나 지불한 그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 생명을 얻었다. 여기에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될 수 없다는 신앙 구원론의 기독교 교리가 엿보인다.

그러나 믿는다고 다 배에 타는 건 아니다. 그전에 먼저 선택을 받아야 한다. 노아도 신이 선택한 사람이었다. 신이 세상의 멸망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노아는 살 수 있었다. 2012의 생존자들도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세상의 멸망을 알려준 건 하나님이 아니라 G8의 선지자(관료)들이다. 그런데 2012의 선지자들은 가족 일인당 10억 유로를 지불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지구 멸망을 알려주었다. 성경에서 신의 은총이 2012에선 자본의 은총으로 바뀐 것이다. 

성경의 노아의 방주엔 평범한 노아가 탔지만 2012의 노아의 방주엔 부도덕한 사람들이 몰렸다. 생존자들은 일단 자신만 살겠다며 몰래 승차권을 돈 주고 산 사람들이다.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는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은 공범들이다. 자신이  키우는 개는 태우면서 정작 배를 만든 중국 노동자들은 못 타게 하는 파렴치한 자들이다. 그것도 모자라 노아의 방주에 타는 사람끼리 서로 배신하기도 한다. 성경이 말하는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어떻게 이런 자들이 구원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단 한번의 선행으로 이들에게 구원받을 자격을 준다. 원래 타기로 했던 사람들과 배를 만든 인부들을 버리고 가려던 노아의 방주는 마지막 순간 그들을 다시 태워주기로 결정한다. 생존자들이 그간 저질렀던 모든 악행은 이 한번의 선행으로 영화 속에서 말끔히 용서받게 된다. 그 어떤 범죄자라도 회개하면 구원받는다는 기독교의 교리가 바로 영화에서 재현된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 그 한번의 선행이 문명을 지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노아의 방주 티켓을 돈을 주고 팔았을 때,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을 죽였을 때, 99.99999%의 나머지 사람들이 작별할 시간도 안주고 자신들만 도망쳤을 때 이미 문명은 무너졌다. 혹시라도 대해일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아마 방주에 탄 생존자들에게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생존자들은 문명의 기준에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이다.

2012의 생존자들은 지켜낸 건 문명이 아니라 자신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설명하지 못한다. 돈이 많아서 살았다고 할 것인가? 사람들을 속여서 살아남았다고 할 것인가? 누군가를 죽여서 살았다고 할 것인가? 생존자들은 누구보다 추악한 자신들이 살아남은 이 비도덕적 상황을 후세에게 합리적·도덕적으로 납득시킬 수 없다.

그들의 생존을 설명할 수 있는 건 문명이 아니라 종교이다. 그들은 지구가 멸망하는 순간 십억유로를 가지고 있었다. 선택받은 것이다. 그들은 종말론을 믿고 그 돈을 지불했다.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한번의 선행을 저질렀다. 회개한 것이다. 생존자들은 후세에게 이렇게 외칠 것이다 "우리는 선택받았고 믿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회개했다. 그리하여 신이 우리를 구원했다."고.

새로운 세상은 부도덕한 생존자들에게 정당성을 주기 위해 종교를 만드는 작업을 먼저 시작할 것이다. 생존자들은 자신들을 구원한 돈을 정당화하고 그 것이 신이 선택한 증거라고 강변할 것이다. 이 종교 위에 문명이 만들어지고 종교의 터전 위에 만들어지는 문명은 종교를 거역하지 못한다. 종교가 다시 문명을 지배하면서 지난했던 종교와 인간과의 투쟁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영화가 의도한 건지 아닌 건지 몰라도 '2012'를 보다보면 종교의 시작에 대한 아주 깊이있는 통찰을 얻게된다. 내가 이 영화에 박수치는 이유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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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와 2009.12.07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보다해몽???????......으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2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할리우드식... "멋진 CG 감사" 이거면 충분한듯..

  2. 2009.12.08 0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레몬박기자 2009.12.08 1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를 보지 않아서 커서님의 의견이 어느정도 극에 충실한지는 말하기 어렵네요. 하지만 기독교 구원관에 대해서는 너무 편협한 생각을 갖고 계신 듯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아무리 착한 일 해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또는 아무리 악한 일을 해도 회개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의 그런 이분법적이고,알량한 수준의 교리가 아니랍니다. 물론 그런식으로 포교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긴 하지만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 속에는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가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 부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구원이란 당장 내 목숨을 더 연명하는데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2012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오래살지는 모르지만 그 목숨 또한 한정적이겠죠.좀 더 오래 산 사람들이지 그 자신이 갖고 있는 죄의 문제, 인생의 불행에 대한 원인적인 문제 해결이 된 것은 아니죠. 그건 구원이 아니랍니다.

    • 커서 2009.12.08 14: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회되면 레몬박님의 얘기 듣고 싶습니다. 저도 교리에 대해선 선교하는 분들 정도 얻어들은 수준이라서...

      저도 2012생존자들이 진정한 종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 동의합니다. 2009.12.08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다란 님의 논지대로 하나를 추가한다면

    방주로 pick up을 받지 못한 인도과학자가 생각이 나네요...

    내용에는 그가 사실은 대멸망을 맨처음 이야기했었다지요....

    그런데 pick up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 자본의 간택이 아니라 자본에 의한 변질을 이야기 하고 싶네요....


    원래는 믿는자들에 의한 합의에 의해 필요한 사람이 방주를 타기로 되어 있었는데....

    방주를 만들려다 보니까 돈이 부족해 표를 팔게 되지요....


    결국 종교의 창시자를 버리고 방주가 닫히게 되고요...


    본질에 대한 배신을 인도과학자의 죽음에서 찾게 되네요...


    그가 픽업되지 않는 것이 매우 큰일이었던 것처럼 주인공에 의해 묘사되지요...


    중국인 노동자들을 구한것은 글쎄요....


    빗나가다가 마지막 양심을 지킨 정도라고나 할까....

  5. 동의합니다. 2009.12.08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팩트에 대한 이해 차이인것 같은데,
    G20 회의에서 돈많은 사람들만 살려줘야 한다고 회의했을 리는 없겠지요...

    모두가 살수 없다면, 합리성아래 살사람을 정하는 것이 옳은 도리겠지요...
    방주내에있던 더글거리는 아랍사람들을 보며, 그러한 기준이 돈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것을 암시해 주죠...

    왜 유럽재벌들이 안나오고

    아랍사람들이....

    반이슬람인 미국식의 사고방식을 엿볼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

    • 커서 2009.12.08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슬람 사람이 나온 것도 그런 의미가 있겠군요. 생존자들이 위선적으로 그려지는 걸 보면 말이죠. 노아의 방주는 생존자가 아니라 인간말종 집합소가 되어버리고...

  6. ginaz 2011.08.08 0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분 들이 감상평으로 '돈없으면 지구급의 재난이 오면 그냥 죽어야 하나보다'라고 쓰시더군요. 헤어날 수 없는 죄의식을 합리화하는 위선의 기제로서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시는 방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또한 단 한번의 선행으로 99.999999999999999(이하 무한소수) 퍼센트의 인류를 죽음을 내던지고 진실을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을 암살해온 극악한 행적을 정당화 시킬 수 없다는 본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왕 흥미가 돋은 김에 다른 포스팅도 이래저래 읽어 보았습니다...우리 사는 세상이 보다 '사람사는 세상'에 가까워야 한다는 주인장 님의 생각에 동감합니다. 어젠가 오늘엔가 '간첩을 신고하는 사람에게 5억에서 7억의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법무부의 발표를 읽었습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기소, 법원의 유죄판결 뿐만 아니라 아무 생각없는 시민들의 극단적인 속물근성과 탐욕에 기대어 공안탄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듯 합니다....보상금5억의 무한탐욕과 공안탄압이 나타내는 공포정치...

    열대야가 한창인데 답답함만 늘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