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스포일러에 경기 일으키는 분은 안보시는 게 좋습니다. <더 로드> 스토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리뷰입니다. 





세상은 멸망했다. 나무는 불타고 동물들은 사라졌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바다는 파란 빛을 잃었다. 세상에 남은 건 가장 지독한 동물인 인간 뿐이다. 

인간만 남은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까? 남은 음식으로? 그것이 떨어지면? 폐허가 된 세상에서 인간은 남아있는 인간을 먹고 산다. 부모가 자식을 먹고 덜 굶주린 자가 더 굶주린 자를 먹는다. 약자인 아이들과 여자는 이 세상에서 거의 사라졌다. 아이를 본 노인이 정말 오랜만에 봤다며 놀라워할 정도이다. 





그 폐허의 세계에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간다. 이들은 착한 사람이다. 왜 착한 사람이냐면 아직 사람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사람을 먹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을 먹어 세상은 나쁜 사람만 점점 남게 되었다. 이들은 세상에 얼마 남지않은 착한 사람이다.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에게 잡아먹힐뿐 아니라 스스로 죽기도 했다. 착한 사람의 아내는 어느날 먼저 떠나겠다며 집을 나가버렸다. 어둠 속에서 아내는 곧 죽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떠나는 아내 앞에서 울부짖을 뿐 말릴 수 없었다. 죽음보다 더한,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지옥을 벗어나는 아내를 잡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세상에 남았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묻는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예요?" 아버지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아들은 또 묻는다. "우리는 언제까지 착한 사람일 수 있어요?" 아버지는 절대 사람은 먹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들을 만난다. 나쁜 사람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착한 아버지와 아들은 용케 도망친다.




착한 사람은 자신들보다 약한 사람들도 만난다. 착한 사람은 그들을 잡아먹지 않을 뿐 아니라 먹을 것까지 준다.




착한 사람은 그렇게 폐허가 된 세상을 착하게 착하게 착하게 착하게 떠돈다. 사람을 먹지 않고 최소한의 인간의 품격을 지키며 착하게 착하게 착하게만 돌아다닌다. 아무런 기약도 없이 희망도 없이 그저 착하게 떠돈다. 




그러다 착한 아버지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도 이 폐허가 된 세상에서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굶어죽거나 누군가에게 잡아먹히거나. 그러면 착한 사람이 세상에서 둘이 사라지게 되고 세상은 그만큼 나쁜 사람이 더 많아지게 된다.  




착한 아버지가 떠난 직후 한 남자가 아들을 찾아온다. 남자가 말한다. "이제 나하고 함께 가야 할 것 같구나"

아들은 남자를 믿을 수 없다. 아들은 이 남자가 착한 남자인지 나쁜 남자인지 알아야 한다. 아들은 남자에게 아이가 있냐고 묻는다. 있다고 한다. 아이들을 잡아먹었냐고 묻는다. 무심한 듯 아니라고 말한 후 남자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온다.


"난 너희들을 따라왔어"


더 로드의 주인공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그러나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마지막 남자인 것 같다. 


남자는 왜 착한 아버지와 아들에게 접근하지 않고 따라만왔을까? 인간이 인간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인간은 서로에게 야수다. 착한 아들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상대가 인간인지 야수인지 확인해야 했다. 그들이 사람을 먹는 나쁜 사람인지 안먹는 착한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 그래서 접근하지 않고 착한 아버지와 아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이들이 착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접근하는 방법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걸로 의문은 끝이 아니다. 남자가 착한 아버지와 아들을 따라온 이유가 남는다. 이게 바로 착한 사람과 이 남자의 차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저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착한 사람이었지만 남자는 착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착한 사람이었다. 남자는 착한 사람이면서 착한 사람들을 조직하는 사람이다.



아이가 남자의 가족을 만났을 때 눈시울이 붉어진 것은 안도감 때문이 아니었다. 거기에서 대부분 착하게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죽어가는 착한 아버지는 착하게만 살면 될줄 알고 평생을 나쁜 사람에게 치이면서 살아온 우리의 부모다. 세상에 남겨진 아들은 부모의 삶을 답습할 우리 자신이다. 착한 아들 앞에 나타난 남자가 현실의 착한 우리에게 말한다. 나쁜 사람들을 피해 착하게만 떠돌지 말고 함께 나쁜 사람에게 맞서 조직하자고. 마지막 장면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눈물이 흘렀던 것은 세상을 떠돌 착한 사람 운명을 벗어날 돌파구를 보았기 때문이다. 

착한 아버지는 나쁜 사람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계속 돌아다녀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가 아닌 현실의 착한 사람들도 나쁜 사람을 피해 돌아다닌다. 땅을 가진 나쁜 사람들과 돈을 가진 나쁜 사람이 땅도 돈도 없는 착한 사람을 몰아댄다. 대부분의 착한 사람들은 그들을 피해 달아다지만 때론 더는 돌아다니지 않겠다며 망루를 올려 저항하다 희생당하는 사람도 나온다. 


착한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좋아진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그냥 착하게 세상을 떠돌기만 하면서 나쁜 사람의먹잇감만 될 뿐이다. 착한 개인의 착하게 살겠다는 각오로 세상은 좋아지지 않는다. 세상이 더욱 나빠지면 착한 아들의 의심처럼 착한 아버지는 언젠가 그 각오를 내려놓을 수 있다. 세상이 착해질려면 착한 사람이 조직되어야 한다. 나쁜 사람이 조직되면서 세상이 나빠지는 것처럼 착한 사람이 조직되어야 세상은 착해진다. 착하게 살겠다는 각오가 지켜지기 위해서 착한 사람은 조직되어야 한다. 


"착하게 살자"는 "착하게 조직하자"가 되어야 한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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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쫀쫀남 2010.01.19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좋네요. 그런데 정말 경고대로 스포일러 한가득. 괜히 읽었어, 괜히 읽었어...

  2. 뭘더 2010.01.19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3. 레오 2010.01.19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세상은 참 여러 사람들이 사는 별입니다

  4. 레몬박기자 2010.01.20 0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 함 봐야겠네요.

  5. 정암 2010.01.25 1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탁월하신 분석입니다^^

  6. 디지탈보헤미안 2012.04.25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뷰 잘 봤습니다 ^ㅡ^

    "착하게 살자"는 "착하게 조직하자"가 되어야 한다. 이 이야기에 적극 공감하는데요.. ^^ 세상엔 '관성'이라는게 있어서 짧은 시간에 뿅~ 하고 쉽게 바뀔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멀리, 그리고 장기적으로 내다 보았을 때 '착하게 조직되어가는 세상'은 좀 더 나은 세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