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새벽


어느 사무실 방치된 책장 안에서 먼지를 한꺼풀 덮고 있는 이 유명한 시집을 발견했다. 책을 보자 마치 오랜 동안 찾던 걸 손에 넣은 것처럼 기뻤다. 책이 반가웠던 게 학창시절 주요 시만 보고 놔두었던 시집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그건 아니다. 이 시집에서는 27년이란 시간을 뛰어넘는 어떤 공명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시집과 같은 제목은 노동의 새벽을 펼쳤다. 목젖을 타고 내리는 새벽 소주의 쓴 맛과 "오래 못가지"의 절규가 입안에 웅얼거리는 듯 했다. 시에 전혀 관심없던(지금도 물론) 내가 '시란 이런 강렬함'이다라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배울 수 있었던 시. "전쟁 같은 밤일"과 "새벽 쓰린 가슴" 그리고 "차가운 소주"로 꿰어낸 감정선에 혀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손목이란 단어가 세상에서 가장 무겁게 느껴지게 만들었던 손 무덤이란 시도 생각난다. 1연 마지막 "손목이 날아갔다."에서 그냥 멍해지는 그 충격이란. 그리고 사장님 차도 공장장님 차도 부장님 차도 태워주지 않아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는 2연의 마지막 문구에서도 또 이어지는 충격.

노동의 새벽은 80년 노동현장의 잔인한 현실을 다루는 시다. 30년 전 독재가 판을 치고 자본이 맘대로 부려먹던 시절의 옛날 이야기다. 분노에서 나와 이젠 추억이 될법한 얘긴데 시들은 전혀 추억처럼 들리지 않는다. 얼마전의 기억들이거나 하마터면 갈뻔했던 현실로 다가온다. 앞서 말한 27년을 뛰어넘는 공명을 느꼈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멈출 수 없지

땀에 절어 맥 풀린 얼굴들로
종종걸음 치며 공장문을 쏟아져 나와
인사조차 못 나눈 채
검은 어둠 속으로 흩어지고
비탈진 골목길을 숨가쁘게 오르며
나는 때리면 돌아가는 팽이라고
거대한 탈수기에 넣어져 돌리면
돌릴 수록 쥐어짜지는 빨래라고
하루, 일년, 죽을 때까지
정신없이 따라 돌며
정신없이 바뀌는 세상에
눈빛도 미소도 생각조차
속도 속에 빼앗겨 버렸어


멈출 수 없지란 시가 노래한 80년 대 노동자를 탈수기처럼 쥐어짜는 노동현장은 바로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우리는 그들 앞에서 맛있는 밥을 먹으며 떠들며 논다.  



공장 대신 식당에서, 공장장과 공장의 기계 대신 식당사장과 손님들이 노동자의 쉴새없는 노동을 채찍질하고 있다.


졸음

전생에 일 못하고 잠 못잔 귀신이 씌웠나
꼬집어도 찔러도 혀를 깨물어도
고된 피로의 바다 졸음의 물결에
꼴까닥 꼴까닥
눈앞에는 프레스의 허연 칼날이 쓰을컹 툭탁
미싱 때려밟는 순정이는 
눈감고도 죽죽 누비는 자동 기계가 되어
망치질하는 어린 시다
깨어진 손을 감싸 울면서도
눈이 감긴다


석양

오늘은 밀린 빨래, 쌓인 피로
한자공부도 다 제쳐 놓고
연락만 기다린다는 고향친구를 만나
부모님 소식 고향 소식 들으며
회포를 풀어 보자고 열나게
열나게 밟았는데
----- 수작 부리지 말고 쓰러지지 않을 지경이면 잔업 
        하라고 해 ------
주임님의 고함소리에 노을이
검붉게 탄다


어린 시다의 깨어진 손을 붙잡고도 졸았다는 <졸음>과 간만에 밀린 빨래, 피로 한자공부 하고 고향친구 만나 회포 풀려다 주임의 잔업 고함에 아무말 못하는 <석양>의 장면도 여전하다. 




야근도 고함은 노동현장에선 여전하다. 그들에게 항변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현실도  여전하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아버지 세대에서 아들 세대로 미치도록 싫은 야근과 협박같은 고함소리는 그대로 이어져 왔다. 


휴일특근

벽에 걸린 달력을 보며
빨간 숫자는 아빠 쉬는 날이라고
민주는 크레용으로 이번 달에 6개나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다

민주야
저 달력의 빨간 숫자는
아빠의 휴일이 아니란다
배부르고 능력있는 양반들의 휴일이지
곤히 잠든 민주야


<휴일특근>에서 아버지의 빨간 날을 기다리던 아이는 이제 커서 다시 아빠를 기다리는 그의 아이를 달래야 한다.


여관 잡아 놓고 주말 없이 새벽 4시 퇴근. 그리고 정시 출근. 다닥다닥 붙어서 개발 하면 새벽에 집에들 전화가 오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들리죠. 신혼인데 왜 이런 사람하고 결혼해서 이러냐고 우는 사람이 있고, 그러면 한사람씩 담배 피로 가죠. 그리고 애들 한테 전화 와서 아빠 언제와? 그러죠. 그리고 어떤 와이프한테는 막 화내는 소리를 하고 전화를 끊고. 그러면 죽고 싶죠. 정말 힘든 건 애들이 전화 해서 거의 울다 시피 하면서 아빠 보고 싶어. 언제와? 이러면 정말 일할 맛 안납니다.
http://geodaran.com/24


노동자에게 가족은 회사 다음이다. 3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제조사에서 회의를 하는데 정신이 흐릿해 지면서 온 몸이 저려왔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회의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다가 근처 병원에 들어가서 나 좀 살게 입원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이틀 입원하고 출근했습니다. 병원비는 내가 냈습니다. 또 한번은 겨울이였는데, 야근을 마치고 집에 가야 하는데 너무 아파서 집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집에 가면 아내가 걱정할 것 같고, 출퇴근 시간을 아껴 쉬고 싶어서 회사 근처 러브호텔에 혼자 들어갔습니다. 약은 먹었는데 몸은 점점 아파 오고 서러워서 눈물이 났습니다.(중략)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일 하다가 죽을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http://geodaran.com/30


2010년 대한민국은 여전히 노동의 새벽이 울림을 주는 세상이다. 전쟁같은 밤일을 마치고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고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웅얼거리는 우리는 80년대가 아닌 2010년을 살고있는 노동자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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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심원 2010.02.22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동의 새벽,
    새벽은 오는가 되물으면 분명 온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겠지만...

    • 커서 2010.02.22 1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새벽은 안오고 노동자 손에 핸드폰 쥐어주고 애들은 사교육으로 인질로 잡아놓고 일하라고 계속 더 다그치는 거 같습니다.

  2. 파람아뜨만 2010.02.22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보네요..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는 노동현실이 마음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