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해봤자 배부른 사람 따로 있다. 라는 지난 기사를 통해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요청한 바 있다. 내 부탁에 몇 분이 응해 주셨는데, 그 중에 외국계 IT 회사에 근무 하시는 분이 계셨다. 그 분은 남기신 글에서 한국계와 외국계 IT 회사 둘 다 근무한 자신의 경험이 야근 이슈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 같아 인터뷰에 응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상외의 수확이었다. 그는 한국회사의 불합리하고 열악한 노동실태를 뚜렷이 드러내줄 수 있는 귀중한 취재원이었다.

그 스스로 ‘극과극’이라고 표현한 양쪽 회사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그를 익명으로 '탈출맨' 이라고 부르겠다. 

커서 : 대략적인 나이와 성별은?

탈출맨 : 30대 후반의 남성이다. 

: 이전에 다녔던 한국계 회사는 어떤 회사였나?

 : 이동통신 회사의 외주회사다. 3개 중에 하나. 거기서 웹싸이트의 유지보수와 관리팀 팀장이었다. 

: 팀장이면 봉급도 적지 않았을텐데 외국계로 옮기고 봉급이 줄진 않았나.

: 연봉으로 표시되는 금액은 500만원 이상 줄긴 했지만 페이는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그런데 훈련이나 평상시 출장비용과 각종 수당 등의 연봉외 수입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실 수령액은 외국계가 많은 편이다.

: 옮긴 회사는 어떤 회사인가. 

: 미군이 사용하는 컴퓨터 시스템의 유지관리를 맡고 있다. 옮긴지는 만 1년 4개월 되었다.  

: 지금 회사의 근무 시간은 어떻게 되나.

: 7시30분에 출근하여 4시30분에 퇴근한다. 11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점심시간이다. 출퇴근은 개인에 따라 변동이 가능하다. 보통 내가 출근 시간이 빠른 편이고 건물의 다른 사람들은 8시 부터 5시 까지 근무 시간인 사람도 많다. 개인의 출근 시간 조정은 개인의 의사에 의해서 가능하다. 강요받는 경우는 없다.  

: 4시30분이면 상당히 이른 시간인데 퇴근 후 무엇을 하는가.

: 5시 즈음 집에 도착을 해서, 30분 뒤에 애기들을 찾으러 놀이방에 간다. 3살과 4살의 딸아이 둘이다. 집사람도 일을 하는데 나와 거의 같은 시간에 출퇴근 한다. 아이와 놀이터나 집 근처에서 1시간 정도 함께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다가 6시 30분에 집에 들어온다.

이전 직장에선 밤 늦게 퇴근했고, 주말에도 거의 근무 했기 때문에 아내가 육아를 다 했다. 부모님의 경우 처가집은 아직 일을 하고 계시고 본가는 지방에 멀리 있는 관계로 육아에 대한 도움은 거의 받을 수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가족이 우선이다. 애들 치과병원에 가야 한다고 학교로 애들을 데리러 가고 아내가 몸이 조금 안 좋다고 퇴근을 하는 등 모든 것의 중심은 가족이다 . PM과의 중요한 미팅이 있더라도 양해를 구하고 불참하고 가족을 챙기는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것을 보면서 문화적인 차이일 수도 있었지만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 육아 때문에 일찍 퇴근이나 조퇴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 예전 회사 다닐때보다 집안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을 거 같다. 와이프와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없는지.

: 예전의 회사에서는 애들을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매일 들어오면 애기들 자는 모습만 봤다. 주말에도 어쩌다가 같이 있기만 하면 다행이라는 심정이었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싶다. 요즈음은 아침에 애기들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이 아빠다. 애들이 울면서도 ‘아빠’ 한다. 처음 했던 말도 ‘아빠’다. 놀이터에 함께 가서 놀고싶어하는 사람도 당연히 아빠다. 애기들이 정말로 아빠라는 존재가 그저 돈을 벌어 주는 사람이 아닌 친구이자 든든한 보호막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아내는 지금의 여유에 무척이나 만족한다. 어제 놀이터에서 아내가 아파트의 다른 분과 이야기 하면서 “지금 삶의 여유는 돈으로 살 수 없어요”라는 말을 하더라.


탈출맨의  이쁜 딸들

: 스스로는 어떤 변화를 느끼는가. 재충전의 기회로 활용하는지.

: 우선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막연히 하고 싶었던 공부에 대한 열의도 생겨서 자격증 과정 등록을 해서 이수 했다. 업무에 관련된 교육도 3개월 동안 받았다. 물론 그건 회사에서 비용 전체를 지원하여 주는 것이다.  

: 한국계 회사 퇴근시간은 어땠나.

: 평균적으로 9시나 10시 즈음에 퇴근을 했다. 주중에 2~3일은 너무 늦어서 택시를 타고 가기도 했다. 회사에서 10시가 넘으면 택시비를 지원해 준다고 해서 택시를 탈 생각으로 야근을 했더니 택시비만 한달 40만원 정도 받았던 적도 있다. 참고로 심야 할증을 해도 한번에 3만원이 안되게 택시비가 나오는 거리다.

한달에 2번은 중요한 시스템 업데이트가 있었던 관계로 휴일 근무와 밤샘이 있었고 끝나면 보통 새벽 6시 즈음이었기 때문에 회사 아래의 사우나에서 잠을 잤다. 아예 회사에서는 사우나 정기권을 직원들에게 끊어줬다. 평균적으로 토요일 후무를 포함해서 휴일날 반은 쉬고 반은 출근 했다. 휴일 출근 하는 날에는 거의 늦은 시간 까지 야근 근무가 이어졌다. 중요한 보고나 시스템 업데이트가 있을 경우엔 집에서 옷만 갈아 입고 오기도 한다. 그렇게 일주일 넘게 근무한 적이 부지기수다.  

한번은 애들도 보고 싶고 아내도 너무 힘들어해서 7시 퇴근을 하려고 했는데, 같은 부서의 과장이 극구 말리는 것을 보고 포기하기도 했다.

: 야근에 대해 수당은 주는가.

: 야근 때는 저녁식사비가 제공 된다. 이 경우도 10시 이후에 퇴근 하는 사람에게만 지원 된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먹었다. 밤샘의 경우 사우나 회원권 한 장이 나왔고 집에 다녀올 경우 퇴근 할 때의 택시비가 지원 된다. 너무 늦게 마치기 때문에 차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제도다. 따로 수당이나 보상은 없었다. 야근이나 휴일 근무의 경우에도 업무의 연속성 때문에 당연시 하는 분위기였고 그에 대해 간부들이 미안해하거나 다른 보상을 해주는 경우는 없었다. 

: 다른 동료들은 이런 야근에 대해 불평 안하는가.

: IT 업종의 경우 야근이 거의 일반시 되는 분위기다. 어느 회사를 가더라도 정시에 퇴근하는 경우가 없다. IT쪽은 특수한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여건이 비슷하다. 그래도 그중 좀 더 나은 쪽으로 이직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팀의 경우도 야근과 휴일 근무 등의 혹독한 노동강도에 질려 30% 정도가 물갈이 되는 편이었다.

: 현재의 회사에선 야근을 해본 적 있는가.

: 외국계 회사라고 해서 전혀 야근이 없는 것은 아니다. 1년에 2번 정도는 12시간 교대 근무를 한다. 을지훈련과 RSOI때다. 하지만 그때도 시간 스케줄이 정확하게 나와 있다. 어느 곳에서 얼마만큼 근무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려준다. 야근 수당의 경우 보통 근무 때의 1.5배 이며 휴일 근무의 경우 2배이다. 휴일 야근의 경우는 2.5배 이다. 물론 정확하게 계산되어서 정산이 되고, 정산이 마치는 대로 보통의 경우 급여일 전에 바로 지급된다.

평상시의 야근은 거의 없다. 꼭 자기가 할일은 시간을 분배해서 하고 만약 그 시간 안에 못하면 다음 날로 넘기고 피치 못할 경우 야근을 하지만, 미리 overtime 근무에 대한 허락을 받아야 한다. 허락이 떨어져야만 O/T를 할 수 있다. O/T를 승낙하면 그 시간만큼 수당이 정확하게 지급된다. 그냥 몇시간 내에서 O/T를 하는 경우는 Comm Time으로 축척을 하고 그 시간은 언제든지 자신이 마음대로 쓸수 있다. 예를 들어 대구에 출장을 갔는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 6 시였다면 원래 4시 30분에 퇴근해야 하니깐 1시간 30분의 comm. Time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오바한 시간은 아무 때나 원할 때 그만큼 일찍 퇴근해서 스스로 보상받는다. 4시30분 퇴근인 나의 경우 내가 원하는 날 3시에 퇴근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출장시 출장지로의 이동하는 여행 시간도 근무시간으로 친다.

: 한국계와 외국계 회사의 근무조건이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나.

: 이전의 회사에서 미국의 업무 강도 분석 기법을 적용 시켜 보니 업무강도가 200%가 넘었다. 총체적인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때의 분석 결과였다. 인원의 확충과 업무의 정확한 분담이 필요하다. 제발 새벽에 반영 되어야 할 내용을 저녁에 이야기 하는 것도 그만 두었으면 한다. 숙력된 PM의 역량, 시스템 적인 개선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원청의 무리한 요구도 자제되어야 한다. IT 프로젝트의 경우 저가 수주가 만연하고 일을 잘하는 것 보다는 적은 돈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난 다음에 눈가림으로 아웅 하더라도 잘 마치는 것이 중요한 분위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업무 개선은 힘 들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용산의 미군병원은 오랜 기간을 두고 짓는다고 한다. 병원을 짓는 건축법이 일정기간 이상 걸려서 짓도록 하기에 아주 점진적으로 한쪽을 만들어 오픈하고 이후 나오는 문제점을 검토하여 다시 반영하고 다음 것을 진행하고 해서 짓는다. 아직도 짓고 있고 언제 끝이 날지는 모르지만, 다 만들고 난 다음에는 오래 쓴다. 적어도 부실공사로 붕괴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짓는 동안에 모든 문제점이 다 나오고 검토되고 보강이 된다.

: 외국계 간부들의 기획력은 어떤가. 한국직장인들의 경우 간부의 기획력 부족으로 중복되거나 필요없는 일을 해서 야근으로 이어진다는 불평이 많다. 외국계는 업무 지시가 합리적인가.

: 외국계 회사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 큰 사람의 황당한 기획이 전체  프로젝트의 의견에 반영되기도 한다. 기획력이 한국의 회사에 비해서 좋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한국 회사의 기획력이 좋을 때도 많다. 그러나 외국계 회사는 필요 없는 일과 중복 되는 일, 그리고 수행하는 사람의 의견 무시, 이전의 주먹구구식의 경험에 나오는 아니면 말고 식의 지시, 원청의 눈치보기식의 업무 지시는 전혀 없다. 위의 내용들이 결국엔 야근으로 이어진다.

이 곳에선 자신의 의견이 반영이 된다. 일을 처리 할 때 몇 일 걸린다고 이야기 하면 아무도 그 의견에 반대를 하거나 왈가왈부 하는 사람이 없다. 철저하게 전문가의 의견대로 수행이 된다. 위에서 누가 ‘몇 일까지 이 일 해’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언제까지 필요한데 다른 일들에 비해서 우선순위를 좀 당겨 줄 수 없냐는 부탁은 한다. 이 경우도 근무시간 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에 한해서다.

: 한국계 회사 간부 중에 좀 황당했던 간부는 없었나.

: 너무 많았다. 나도 그가 시킨 일이 어이없다는 생각이 하면서도 팀원들에게 그 일을 다시 내리곤 했다. 한 두 장의 보고서로 끝날 일을 한 권의 책으로 요구하는 간부, 자신의 보고서를 하청업체의 PM에게 강요하는 원청의 업무 담당자, 술자리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2차 3차를 함께 꼭 해야지만 직장의 문화라고 생각 하는 간부, 내가 죽으면 같이 죽는 다고 생각하면 아랫사람들을 줄 세우기에 급급한 간부, '내가 아직 퇴근 안했잖아' '내가 휴일에 출근 하는데 너는 왜 안해' 라는 간부, 등 너무 많아서 다 적기가 힘이 든다. 하지만 그런 조직에서는 나 또한 그런 간부였을 수 있다.

: 외국계는 근무시간이 철저한 반면 근무시간 내의 업무강도는 타이트하단 얘기가 있다. 그만큼 효율적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어떤가.

: 이곳에서도 모여서 Coffee break 하기도 한다. 사람들과 농담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일을 할때는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런 점에서 타이트 하게 보일 것이다.

: 업무평가 시스템은 어떤가 한국에선 자리에 오래 앉아있느냐가 업무평가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 평가의 기준은 항상 다면 평가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가장 우선시 된다. 그리고 그 평가에 윗사람의 평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평가가 더해진다. 자리를 많이 채우고 있고 오래 앉아 있는가가 아닌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을 수행을 했는 지와 주위의 사람이나 윗사람에게 업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는 지가 중요하다.

: 다시 직장을 한국계로 옮긴다면 어떨거 같나. 끔찍하지 않을까.

: 나의 경우 15일의 정기 휴가와 15일의 병가가 있다. 정기 휴가의 경우 일년 중에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진짜 마음대로다. 만약 휴가를 1월 2일 부터 해서 공휴일을 제외하고 연달아서 쉬면 토요일 일요일을 합쳐 거의 23일 된다.  몇 일부터 몇 일 까지 쉬겠다고 하는 간단한 휴가 신청서를 상급자에게 제출해서  승인을 구하면 상급자는 아주 정말 정말 급한 일을 제외 하고는 나의 휴가 신청서를 No 라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퇴근이나 휴가 시에는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면  집이나 휴대폰으로 전화도 안 한다. 아마 한국 회사에서 자신이 아주 아픈 경우가 아닌 이상 이 정도 쉰다고 하면 흔히 이야기 하는 말로 책상 없어질 거다. 이전의 직장에서 일할 때 일년에 휴가 4일 있었다. 눈치 보면서 그중에서 3일 쉬고 마지막 날에는 출근해서 야근했다.

여긴 일년에 2번 정도 바비큐 파티가 있다. 물론 가족들과 함께다. 그때는 음식을 준비해서 전체 회사 직원들과 군인들 등 다 함께 모여서 가족들과 함께 바비큐를 해 먹으면서 오후 내내 먹고 운동하고 논다. 나에게도 좋은 시간 이지만, 애들에게도 아빠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친해 질수 있고 함께 하는 가족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준다. 이곳에서도 아주 가끔 회식 이라는 것이 있다. 거의 1년에 한 두번 있을까 말까다. 이것 또한 꼭 참석해야 한다는 강요 사항이 아니다. 애들과 시간 보내고 싶어서 그냥 간다고 해서 아무도 비난 하는 사람 없다. 이전의 회사에서는 가기 싫은 술자리 회식과 먹기 싫은 술을 2차, 3차, 룸사롱, 마지막에 사우나 까지 돌아가면서 함께 했었다.

나의 경력이나 다른 것들을 생각해봤을 때 한국의 회사로 다시 들어가는 것도 고려를 해보았다. 그러나 그러려면 가족들에게 많은 희생을 강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개인적으로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삶에서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

: 현재의 회사는 계약제가 아닌가. 안정성에 불안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한국계가 더 불안하다. 거긴 이상하게 40 넘어가면 일 못한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여긴 다르다. 나이와 능력을 동일시 하지 않는다. 계약제지만 난 50이 되어도 이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환갑이 넘어서도 당당하게 일을 하고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한국계회사는 불가능하다.

: 인터뷰 감사한다. 야근으로 고통 받는 대한민국의 많은 노동자들이 님처럼 탈출을 했으면 좋겠다. 외국계 회사로 전직이 아닌 한국계 회사에서. 

: 그간 커서님이 인터뷰하거나 댓글취재한 분들의 이야기와 너무 차이가 나는 이야기라 좀 걱정이 된다. 다른 분들께 막연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커서님의 기사가 꼭 사회 이슈화가 되어 한국노동자의 현실이 보다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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