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졸업생 여러분!
프리드먼의 세계화적 관점에서 볼 때엔 세상이 평평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세상은 원래 평평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공평하지도 않습니다. 인정하기 싫을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개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합니다.

지난 2월 25일 있었던 고려대 이기수총장의 졸업축사 중 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몇번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위의 말은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을 두고 한 말이다.<세계는 평평하다>는 프리드먼이 2005년에 낸 책으로 세계화를 긍정하고 역설한 책이다.

프리드먼이 말하는 세상이 평평해진다는 것은 기술의 발달과 시장 개방으로 경쟁의 장에 지역과 계급의 차이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본토의 미국인이 인도의 엔지니어와 경쟁하고, 사장부터 말단 사원까지 똑같은 정보를 얻는 세상으로 경쟁의 장은 이제 누구나 올라올 수 있게 평평해졌다는 얘기다.  

프리드먼은 '평평하다'를 일종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설명한다. 산업혁명이 우리의 생활을 급변시켰듯 지금 우리도 세계가 평평해지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이 '평평하다'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세상을 평평해지게 만드는 10가지 동력을 제시하기도 한다.

프리드먼의 '평평하다'는 한마디로 설명하면 개인이 지역과 계급의 제한이 없는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지금 오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평하다'는 개인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지역과 계급의 영역에 보호받은 사람에겐 피곤한 일이고 그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에겐 기회가 되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이러한 평평한 세계화의 시대에 개인의 도전을 고취시키고 세계의 급변에 개인이 발빠르게 대처할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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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전환점, 변화, 대처, 도전과 기회. '평평하다'가 내포하고 있는 단어들이다. 이기수총장의 졸업축사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런 단어들과 총장의 축사가 호응되지 않기 때문이다.  

총장은 축사에서 세상은 "'원래' 평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 '평평하다'는 역사의 변화를 포착한 말이다. '원래'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세상은 평평함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평평해지는 세상을 향해 '원래'평평하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한 얘기가 된다.

바로 뒤에 '평평하다'를 '공평하다'로 대치시킨 것도 이상하다. 이건 '평평하다'가 내포한 의미를 읽지 않고 표면적인 뜻만을 받아들여 '공평하다'와 혼동한 오류로 보인다.

프리드먼이 말한 '평평하다'는 도전적 개념이다. 세상이 평평해졌으니 맘껏 도전하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말이다. 그러나 총장이 표면적인 의미만으로 대치한 '공평하다'는 안정적 개념이다. 총장의 축사는 개선을 촉구하긴 했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눠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좌절의 뉘앙스가 강하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경쟁의 장이 누구나 참여할 수있도록 공정해졌음을 말했지 누구에게나 같이 공평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도전적 개념의 '평평하다'를 안정적 개념의 '공평하다'로 바꾸어 버리니 총장의 축사는 인생이 공평하지 않다는 투의 탄식이 되버리는 것이다.

총장은 마지막 줄에서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개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 '평평하다'는 역사의 변화를 포착한 말이다. 인간이 개선하거나 건드리기 어려운 흐름이다. 이건 우리가 대처하고 적응해야할 거대한 변화인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개선하라는 건 좀 황당한 소리다. 세상의 거대한 변화가 아직 완전하지 못함을 낙심하고 그 개선을 요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스워 보인다. 2005년에 나온 프리드먼의 선도적 개념을 받아들이기도 급급할 텐데 말이다.



고려대 총장의 축사는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프리드먼 : 세상이 평평해지고 있어요. 우리는 그 시작점에 있습니다. 도전합시다.

고려대총장 : "아직 안 평평해졌어요. 실망이예요. 평평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합시다"

프리드먼 : %^%&&* 뻥 ~~~~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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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금이 2008.03.04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세줄에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군요. 처음에 읽을땐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는... ^^;

  2. 레드바다 2008.03.04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금이님 말씀이 맞네요...간략하게 마지막 세줄만 올렸으면 간략하면서도 함축적 메시지 전달이 될번.

    글 읽은 느낌이 마지막 세줄땜에 지름길을 왠지 돌아서 간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