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있거나 유사한 것들과 비교하면 하나의 정의가 또렸해진다. 트위터를 알고싶다면 그와 유사하거나 관련있는 싸이월드, 휴대폰, 게시판, 블로그 등과 비교하면 된다.

트위터는 보다 열린 싸이월드다. 트위터는 싸이월드보다 관계가 넓고 활발하다. 트위터는 아고라 휴대폰이다. 트위터는 개인 간의 소통 도구인 휴대폰에 공론을 도입했다. 트위터는 나만의 게시판이다.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나와 관계있는 사람들만 보인다. 트위터는 작은 블로그다. 트위터는 블로그의 1인미디어적 성격을 보다 확대시켰다. 

여기에서 두 개의 축 '관계'와 '공론'을 찾게 된다. 싸이는 트위터에 비해 공론이 부족하다. 휴대폰은 관계는 깊지만 아예 공론이 없다. 게시판은 트위터에 비해 관계가 부족하다. 블로그는 트위터에 비해 관계와 공론이 조금씩 약하다. 유사한 미디어와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트위터가 관계와 공론이 풍부한 미디어라는 것이다.

공론과 관계가 풍부하면 긴밀한 공론의 장'을 만든다. 참여인원의 제약을 네트워크가 극복한다. 그 위에 공론이 흐르면서 공론의 장이 만들어진다. 그리스 폴리스에서 가능했던 공론의 장을 21세기에 만들어낸 것이다.

민주주의 적들은 공론의 장을 파괴하는 자들이다. 민주주의 적들이 공론의 장을 파괴하는 것은 거기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 공론의 장이 형성되는 것을 막는다. 미디어를 장악하거나 미디어에 기계적 중립을 요구하면서 공론의 장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관건은 공론의 장에 달렸다. 공론의 장만 제대로 형성된다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21세기에 트위터는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어 공론의 장을 실현시키고 있다. 그래서 나는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 것이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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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 2010.09.11 1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위터가 세상에 끼친 영향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권력의 해체와 민의 주인됨이라 했을 때, 트위터가 전부가 될 수는 없겠죠. 트위터에 접근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권리, 나아가 더 많은 사회적 권리를 위해 싸우고있는데 이들이 자칫 트위터에 대한 열광에 파묻힐까 우려스럽습니다. 세상을 바꾼다 안바꾼다 논쟁이 불편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