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2월23일)자 한겨레신문 27면 기사 하나에 눈길이 갔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진짜 노동해방이다."라는 제목으로 '진보평론' 겨울호 특집 '노동해방 다시보기'를 소개하는 기사다. 기사가 소개한 진보평론 겨울호는 '노동신성성'을 깨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기사를 보고 느낀 점을 덧붙여본다.


이성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노동신성성은 서구시민 사회에서 "노동을 강제하기 위한 동원의 이데올로기"로 주로 쓰여 왔다. 카를 마르크스도 "노동은 본질적으로 자기 실현 활동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질적인 규정에서 소외돼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해, 마르크스주의자들 역시 노동신성성을 강조했다. 
제레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에서 지적했듯, 급속한 정보화는 인간의 노동력을 점차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구조적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노동신성성은 19세기 자본주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핵심 반론이었다. 대부분이 노동자였던 시대에 노동의 신성화는 자본가에 맞서 대중의 연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급속한 기술의 발달로 노동이 점차 줄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노동이 신성화되면 될 수록 노동자를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하는 자본가들이 올라가고 그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노동자는 더 약해졌다. 자연 대중의 연대도 약해졌다.

세계는 현재 거대한 아이러니에 빠져있다. 기술의 발달로 더 많은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인간은 그 생산물을 효과적으로 분배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 많은 생산이 두려워 막고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분배를 막고 가능한 생산을 차단하는 이데올로기 중 하나가 바로 '노동신성성'이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는 구호가 사회양극화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소득을 노동으로부터 분리해 모두에게 보장하자는 기본소득론과도 연결된다... 박영균 편집위원 역시...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물리적-비물리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장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생산력에 참여하고 있는데, 자본은 자신의 교환체계에 들어온 부분만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매기고 있는 모순을 짚었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진짜 노동해방이다


과거엔 투표권도 돈으로 사야하는 권리였다. 그러다 19세기 말 인간의 기본권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현재 인간은 노동을 통해 소득은 확보해야하지만 앞으로는 투표권처럼 기본소득도 인간의 기본권이 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자본가들은 경제가 무너진다고 통탄할지 모른다. 그러나 무식한 노동자들에게 투표권을 주었지만 귀족들이 탄식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각성한 노동자들은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공짜가 경제를 타락시킨다는 자본가들의 예언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투표권이 정치의식을 성장시킨 것처럼 기본소득은 노동의식을 성장시켜 경제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인간이 자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생존과 존엄에 대한 위협 때문이다. 자본은 자신들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누구든 노숙자와 같은 비참한 인생이 될 것이라고 위협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자본의 이런 위협은 통하지 않는다. 인간은 노동에 대한 위협이 아닌 부탁을 받게 될 것이고 노동자들은 지시가 아닌 참여에 의한 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노동에 대한 보상은 명예와 조금 더 높은 물질의 향유가 될 것이다. 

돈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권력 때문이다. 인간이 돈을 많이 모으려는 이유는 권력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력과 돈의 고리를 차단하면 인간이 권력을 위해 돈을 모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기본소득이 바로 권력과 돈의 고리를 차단하는 장치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돈을 가진 사람의 권력은 줄어들고 그러면 인간은 권력을 위해 돈이 아니라 인품으로 승부하려 할 것이다. 

소비에트 공화국같은 그런 권력의 장막이 생길 것이라고? 그런 걱정 안해도 좋다.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소비에트의 권력장막은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가능한데 지금은 정보를 차단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대중은 인터넷을 통해 권력을 향한 도전자들의 인성경쟁을 아주 공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인터넷에 공개되지 않은 자에겐 그 어떤 작은 것이라도 권력을 향한 도전을 허락하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되면 자본주의의 시대는 끝나게 된다. 인권이 강화되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종교가 쇠퇴한 것처럼 노동신성성에서 탈피해 기본소득권을 얻게되면 자본주의는 지금의 종교 정도의 신세가 될 것이다. 자본가들은 '공짜는 타락' 같은 흘러간 교리를 떠들며 일부추종자들과 함께 부흥회를 하고 다닐지도 모른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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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팽 2010.12.23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본소득은 모든 생명이 누리는 천부적 기본권리입니다.

    • 커서 2010.12.23 2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동물들은 다들 자기 먹을 것들은 주변 환경에서 충분히 구하죠 그런 자연이 인간에겐 없어졌는데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죠

  2. 호루스 2010.12.23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흥미로운 이론이지만...그리고 진정 바라마지 않는 이론이지만...

    글쎄요...마치 막스주의처럼 뭔가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생길것 같은 막연한 의문감은 왜일까요...

  3. 2010.12.24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만 보고 수꼴인줄 알았는데.. 기본 소득권이란 개념이 참 신선하네요.

    그래도 노동은 신성한 거라고 보입니다.

    노동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정체성을 확립시켜주지요.

    단지 노동이란 개념이 단순히 재화를 생산해 내는 데만 한정되면서 사회발전속도 만큼을 못 쫓아가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활동(약탈이나 아주 개인적인 일들을 제외한)을 노동이라고 본다면, 기본 소득권에 대한 명분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 커서 2010.12.28 1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본소득권은 인권과 마찬가지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산한 것 중 90%는 우리가 아닌 역사에서 누적된 기술의 결과죠 그렇다면 90은 모두 나눠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