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 독립영화 조용한 남자를 봤다.

독립영화 조용한 남자의 시놉시스 - 언제나 궁상맞은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 상호. 누가보더라도 멋진 남자와는 거리가 멀고 자신의 친구들과 연인, 가족까지 무신경하게 만드는 그이지만, 오로지 단 하나, 연극에서 만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열정을 보여주며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영화를 보고나서 11년 전 봤던 플란다스의 개를 떠올렸다. 두 영화는 한 남자의 구질구질하고 위태로운 일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아내(애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그들의 여자들은 남편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다른 점이 있다면 조용한 남자의 주인공이 자신이 선택한 길에 훨씬 더 자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을 다룬다는 점에선 유사하지만 그 보여주는 방식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플란다스의 개가 일상을 확대해서 보여준다면 조용한 남자는 일상의 한 조각을 그대로 떼어내서 던져주는 영화다. 영화적 효과로 확대된 플란다스의 일상은 우리가 놓첬던 부분을 보여주면서 키득거리거나 끄덕거리게 하지만 조용한 남자의 일상은 무미건조하게 그대로 흘러가버린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감독은 아주 지루한 영화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영화를 다 본 관객은 감독의 이 말을 '다큐멘터리같다'란 말로 바꾸어 얘기했다. 클로즈업도 배경음악도, 어떤 영화적 효과도 찾을 수 없는 영화였다. 일상의 표현보다는 재현에 가까웠다. 





조용한 남자는 오해받기 딱 좋은 영화다. 이제 시작하는 독립영화 감독으로서 배우와 자신의 모자라는 능력을 감추고 예산도 아낄 수 있는 모호한 실험영화를 한게 아닌가 하는 오해다. 예산을 아낀 것은 맞다. 그러나 영화는 모호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유일하게 상징적인 장면 삼양라면이...




재현극같은 배우들 연기가 철저히 의도적이란 걸 눈치챈 건 극중 연극 연습장면에서였다. 영화의 연기보다 연극 속의 연기가 더 극적으로 보였다. 두 연기의 충돌은 이 배우들이 연기같지않은 연기를 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주인공인 배우는 관객 인사 자리에서 감독님에게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연기에 힘을 빼라"는 소리였다고 털어놓았다. 배우들의 발성은 보통의 우리처럼 뭉개져서 때론 알아듣기 힘들었고 주변인의 의미없는 표정과 손짓 몸짓이 주인공과 함께 화면을 채웠다. 일상을 철저히 관찰해서 그 행동과 배치를 그대로 재현한 장면은 말 그대로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 100분 동안의 일상의 나열이 점점 극적 긴장을 높여가더니 주인공을 클로즈업한 마지막 장면에선 진한 울림을 주었다. 사건의 고리로 연결되지 않고 일상들을 하나씩 쌓아간 영화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 사회자가 "저희가 엄살을 좀 떨었죠"라고 말할 정도로 독립영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많았을텐데 관객들 대부분이 영화를 즐기고 있었다. 

너무나 생생한 일상의 재현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자기 일처럼 안타까운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영화를 본 게 아니라 정말로 연극을 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배우들의 철저히 힘뺀 연기는 관객을 깊이 체험하게 만들었다. 이런 연출이 김재한 감독이 처음 시도하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확대된 일상만 감상했던 내게는 영화 속 일상의 발견이었다. 





이 영화를 설명하면서 최근 있었던 최고은씨 사건도 많이 거론되었다. 영화 속 '조용한 남자'는 최고은이면서 또한 김재한 감독 자신이기도 하다. 궁상맞고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연극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주인공을 김재한 감독은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는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건 최고은씨나 김재한 감독 같은 예술인을 답답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대답인 것 같았다. 





조용한 남자들 중엔 봉준호나 박찬욱처럼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 대부분의 조용한 남자들은 조용한 남자의 일상을 계속 이어가거나 운이 없는 경우 최고은씨 같은 운명을 맞기도 한다. 





내가 몰입한 최고은 김재한의 일상은 솔직히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것이었다. 그 길을 지치지 않고 간다는 것은 김재한 말대로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밥은 많이 못나누더라도 적어도 예술을 택한 사람의 용기에 박수를 칠 수 있는 그런 사회는 되자. 





* 2월 25일 있었던 시사회는 소극장에서 블로거 등을 상대로한 시사회였습니다다.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극장시사회는 3월 3일 저녁 7시 30분 창원 중앙동 메가박스 영화관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이 흥미로운 영화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


크레딧- 각본/편집/감독; 김재한, 촬영; 박중언, 조명; 이찬원, 동시녹음; 박우람
출연배우- 이규성/윤연경/박동영/이상현/김현주/장종도/정다운누리 외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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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한 2011.02.26 2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은 밥과 김치가 아니라 더 나은 작품이 나올 밑거름이 될거라 확신합니다. 애정을 가져 주심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 파비 2011.02.27 0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용한 남자가 조용남이었군요. 그러고 보니 봉준호나 박찬욱 같은 성공한 조용남도 있었네요. 또 그러고 보니 생활의 발견도 불필요한 영상, 음향 이런 거 완전 제거하고 현실의 재현에 충실했던 영화 같았는데요. 기억하기로 정말 지루하네 했던 영화였던 거 같아요. 그 지루한 일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어쩌면 생활의 발견이었을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음향효과 같은 거 싹 삭제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번에 했는데... 그래도 거기선 제가 시사회 때 말씀드린대로 러브신이 몇 개 있었었다는... 물론 생활의 발견은 저예산 독립영화는 아니겠습니다만... 흥행도 꽤 성공했죠? 무미건조함, 효과없는 일상의 재현, 이런 것도 하나의 기법일 테지요.... 암튼^^ 저는 계속 러브신이 아쉽다는... ㅎㅎ 농담입니당~

    • 커서 2011.03.01 14: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 에전부터 이런 걸 좋아했습니다 서울의 달의 김운경씨 작품도 일상을 재밌게 포착한 드라마라 너무 좋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