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인 세대` 노후공포가 온다…저축 月17만원


괴담이 떠돈다. 이른바 고령화 괴담이다.

준비하지 못한 노인은 비참한 노후를 보낼 것이고 부양해야할 노인의 증가로 젊은 세대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안을 거라 한다.

이게 왜 괴담이냐고? 앞으로 다가오는 두려운 현실이 아니냐고?

단언컨데 괴담이다. 

사회가 고령화 되는 건 맞다. 젊은 세대의 비율이 축소되는 것도 맞다.

그러나 간과하는 게 있다. 생산의 증가다. 

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반면 고령화의 추세는 산술급수적이고 그것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고령화가 된다해도 노령층이 젊은층의 수십배가 되지는 않는다. 고작해봐야 두 배 정도 될까? 하지만 생산은 수십배 수백배 끝없이 증가한다.

미래를 얘기할 때 정상적이라면 10배, 100배 증가한 생산을 어떻게 나눌지를 얘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 당연한 얘기가 나오지 않고 고작 2배 정도의 제한된 변화인 고령화 괴담이 들끓는다.  

희망적인 미래가 밀려나고 절망적인 괴담이 나도는 이유는 뭘까? 

자본이 계속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다. 

생산이 증가해서 풍족해지면 자본은 의미를 잃는다. 많은 돈이 없어도 충분히 만족스런 삶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본가들은 권력을 상실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은 수요를 자극한다. 

그러나 생산의 증가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수요를 자극하는 것으로는 사람들를 기만할 수 없다. 수요의 자극만으로는 자본의 권력 상실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또 하나의 수단을 더 동원했는데 바로 공포다. 자본은 돈이 없으면 삶이 위험해질 수 있다며 공포의 수요를 만들어낸다. 수요의 자극에 버텼던 사람들도 공포의 위협엔 무릎끓고만다.

시대마다 자본이 주입하는 공포는 그 내용을 달리하고 있는데 21세 초 대한민국에 자본이 퍼뜨리는 공포의 괴담은 바로 고령화다. 이 괴담은 사람들을 자본에 복종시키고 있다.

우리가 해야할 고민은 젊은 세대의 노령층 부양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할 진짜 고민은 폭증하는 생산을 전 세대가 어떻게 나눌까 하는 고민이다. 왜 보다 풍족해진 생산물을 두고 세대 간에 갈등이 벌어진단 말인가? 

고령화는 절대 개인의 준비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럴 수록 현재의 욕구가 폭발하여 사회는 주체할 수 없이 양극화되어 노후를 부양할 수 없는 사람이 더 많아지게 된다.  

해결법은 전 사회적인 나눔의 합의다. 분배 체계의 재정비다.

고령화 괴담에 휩쓸리지 마라. 우리는 더 많이 생산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Posted by 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