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부터 24일까지 4박5일의 일정으로 일본 도쿄에 다녀왔습니다. 각 기업노조의 실무자로 구성된 10명의 일행과 일본 jr동노조 청년부 대의원대회를 견학하고 청년부 노조원들과 교류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본 jr동노조는 청년부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고 합니다. 청년부 주최로 매년 독자적인 대의원대회와 스포츠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노조가 직면한 투쟁에도 청년부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잘 조직된 청년부는 jr동노조의 성공적인 세대교체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Jr동노조 청년부는 현재 한국 노조에 중요한 착안점입니다. 노조가 전면화한 87 항쟁 후 사반세기(25년)를 지낸 한국의 노조는 지금 고령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반면 새로 수혈되어야할 젊은 노조원들은 노조에 무관심합니다. 이런 청년층을 조직해 시급히 세대교체를 이루어내야 하는 한국 노조에 jr동노조 청년부는 절실한 배움입니다.

그래선지 이 행사를 기획한 국제노동자교류센터(ICLS)의 참가자들에 대한 압박은 상당했습니다. ICLS는 행사에 참여하는 각 노조에 위원장 또는 실무자급을 보낼 것을 요청했습니다. 행사를 기다리는 중에도 ICLS 발신 메일이 참가자에게 여러차례 보내져 행사를 주지시켰습니다. 일본에 오기 전 참가자들은 하루의 사전교육도 받아야 했습니다. 사전교육을 수료하지 않으면 참가자격이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엄포까지 있었습니다. 


국제노동자교류센터란(ICLS)?

ICLS는 한국에 본부를 둔 국제노동자교류를 위한 기구이다. ICLS는 한국의 공공연맹과 일본 동노조의 수년 간의 교류와 연대의 바탕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다른 아시아의 6개 국가가 참여하면서 총 8개국의 노동자 단체가 모이게 되었다. 국제노동자교류센터의 헌장 1조에는 "국제노동자교류센터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직면한 문제들을 극복하기위해 경험을 공유하고 전략을 논의하며 정신적 물질적 연대를 건설하며 서로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기위한 노동조합네트워크다"라고 쓰여있다. 자본과 권력은 상시적으로 연대한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 같은 이념을 지배 패러다임으로 만들어내어 노동자를 착취한다. 왜 세계 노동자는 연대하지 못할까? 왜 노조는 지배 패러다임을 만들지 못할까? ICLS는 세계 노동자의 그런 고민을 담아내는 기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일본 노조는 현재 극도의 침체기입니다. 60-70년대 막강한 투쟁력을 과시하기도 했던 일본 노조는 이후 정부와 언론의 끊임없는 공격에 침체의 길로 접어들어 현재는 대부분 노사협조주의로 가면서 파업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노조는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매년 노조원들을 한국 노동자대회에 보내 한국 노동운동의 역동성을 배워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본 노조의 현실에서 jr동노조는 어떻게 한국이 부러워할 정도의 청년부를 조직한 걸까요?

일본 jr동노조 청년부를 이해하는 열쇠는 일본철도의 '민영화'에 있습니다. 일본철도도 과거엔 한국처럼 하나의 국영기업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87년 민영화로 jr동노조가 속한 jr동일본을 비롯, 서일본, 동해 등 7개의 회사로 나뉘게 됩니다. 민영화 전후 10년 간 일본은 철도에 신규인력을 거의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직원의 고령화로 회사도 인력을 충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91년 1500명을 시작으로 매년 신규직 사원이 입사했습니다. 이와함께 단카이 세대가 3000명씩 퇴사하면서 jr동노조의 세대별 구성비는 급변하게 됩니다. 전성기 노동조합을 경험했던 노조원들은 거의 사라지고 노동운동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노조라는 조직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젊은 세대가 큰 비율로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민영화로 인한 노조원의 세대단절은 노동조합에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노동조합은 그 탈출구로 젊은 세대를 조직하고 의식화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청년부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를 결정하게 됩니다. 청년부의 레크레이션 활동을 지원하고 평화연수와 유니온스쿨 등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매년 노동자대회 때는 백여명에 가까운 청년부 노조원을 한국에 견학 보내는 등 국제교류 행사에 청년부를 대대적으로 참여시켰습니다. 민영화라는 위기는 오히려 청년부의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일본 jr동노조 청년부 활성화가 투자의 집중만으로 가능했던 건 아닙니다. 일본 청년부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로 당시 청년부는 일본 노동조합 내의 선진 대오로 노조 집행부의 우경화, 협조주의화 경향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청년부는 노조 집행부와 대립·갈등하기도 했으나 청년부 활동을 통해 경험과 학습을 축적하면서 청년들은 노조의 활동가와 간부로 커나갔습니다. 60년대 청년부의 역사적 토대가 없었다면 jr노조집행부가 청년부에 대한 상상력을 가질 수 없었을 겁니다. 


민영화로 1/4이 잘려나간 JR동노조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복수노조가 시행되었다. JR동노조는 JR동일본 주식회사 내에서 가장 큰 노조로 전체 사원수 61,000명 중 약 45,000명의 조합원을 확보하고 있다. 87년 민영화 당시 8만명을 넘던 jr동일본철도의 직원은 2010년 6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JR동일본철도의 2010년 현재 평균연령은 43.5세, 평균근속년수는 22.7년. 평균임금은 약 340,000엔, 고졸 초임은 144,700엔, 대졸은 183,000엔. 조합비는 기본급의 약 1.9%인데 하계수당 및 연말 상여금도 포함해 년 14회 징수한다. 노조 전임자는 약 100여명으로 전임자 임금은 전액 노조에서 지급한다. 일본은1949년의 노동법개정(개악)에 의해 전임자임금 지급이 금지되었다. jr동노조는 2010년 7월에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조직 내 후보를 입후보시켜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다. 



출처 : 일본 JR동노조 홈페이지




jr동노조 청년부는 일본에서도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JR동노조 청년부의 대의원 대회엔 한국에서 온 우리 일행뿐 아니라 일본 내 다른 단체들도 견학을 왔습니다. 이렇게 일본과 한국을 통털어 가장 성공적인 jr동노조 청년부는 어떻게 청년들을 노조를 중심으로 결집시키는 걸까요? 노조에 대한 젊은층의 무관심은 한국과 일본의 공통적 현상인데 JR동노조는 이걸 어떻게 극복하고 청년부를 조직한 걸까요?

JR동노조는 젊은 노조원들에게 서클활동이나 체육활동을 권장·지원하고 있습니다. 청년부는 년 1회 정기적으로 스포츠 페스티벌(종합 체육대회)과 야구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교류의 시간에 한 청년 간부는 자신이 거의 모든 체육 서클에 가입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처럼 JR동노조는 투쟁이나 이념보다 써클과 체육활동으로 젊은 노조원들과 쉽고 많은 접촉면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KTX 비정규직 조합원 강연회.출처 : 일본 JR동노조 홈페이지

 



그렇다고 jr동노조가 노조원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닙니다. 입사 차수에 따라 청년부에 대해 중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교육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1-2개월에 한번씩 유니온스쿨을 진행하고 있는데 유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수료자에 대해서는 평화연수에 참여할 기회를 우선적으로 배정합니다. JR동노조는 한국 KTX조합원들을 초청해 청년부를 대상으로 한 강연회·토론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출처 : 일본 JR동노조 홈페이지




JR동노조가 청년부 활동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역사 교육입니다. 현재 일본 우익세력은 전쟁을 영원히 포기한다는 평화헌법 9조를 바꾸어 일본의 재무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맞서 JR동노조는 반전·평화운동을 열정적으로 전개하고 있는데  아우슈비츠 수용소, 중국의 남경대학살 기념관, 한국의 서대문 형무소등을 찾는 평화연수를 실시하여 젊은 세대가 전쟁의 참혹함과 일본제국주의의 침략만행을 인지하고 역사의 눈을 뜨게 해주고 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 시위 현장을 찾은 JR청년부. 출처 : 일본 JR동노조 홈페이지




한일청년노동자교류도 JR동노조 청년부의 중요한 사업입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등반대회와 축구대회를 통해 한국노동자들을 만나고 있고 2004년부터 매년 한국노동자 대회에 참가해 역동적인 한국의 노동운동을 직접 보고 경험하는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올해도 11월에 70여명의 청년부 노조원들이 한국노동자대회를 찾을 예정입니다. 


지난 3차 희망버스 때는 서울에서부터 희망버스를 타고 온 JR동노조 조합원들. 출처 : 국제노동자교류센터



노조 속의 노조 JR동노조 청년부
 

JR동노조의 청년부원은 17,600명에 이른다. 32세 이하면 누구나 청년부원이 될 수있는데 17,600명이라는 숫자는 32세 이하의 JR동노조원 숫자의 거의 일치하는 걸로 보인다. 청년부 대의원은 200명 당 1명이 선출될 수 있는데 2011년 현재 대의원 숫자는 총 148명이다. 청년부는 조합으로부터 예산을 배정받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1년마다 정기대의원 대회를 개최하여 임원 선출, 사업계획 수립 등 노조 대의원 대회와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올해 대의원 대회는 3월부터 준비되었는다고 한다.


JR동노조의 청년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는 점점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년부의 이례적 활동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jr동노조는 일본에서도 강력한 노조 중 하나입니다. JR동노조의 평화헌법9조 지키기 운동은 우익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JR동노조에 대해 정권의 탄압이 가해져 급기야 조합원 7인이 구속되는 우라와 전차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JR동노조는 60회의 공판이 진행된 동안 매회 천명의 조합원을 동원하는 재판투쟁으로 공안탄압에 맞서고 있습니다. 이 투쟁에 JR동노조 청년부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투쟁의 과정에서 JR동노조는 연대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투쟁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그 일환으로 참의원 선거에 동노조 간부를 입후보 시켜 당선시켰습니다. 여기에서도 청년부 조합원들은 적극적 활동으로 참의원 당선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일본의 공안탄압 우라와전차구 사건
 

 2000년 경 동노조 동경지방본부 산하의 '우라와(浦和)전차구'(전동차사무소에 해당)의 '우라와 전차구 분회'에서 요시다(吉田)라는 한 조합원이 동노조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던 노사협조주의 노조의 행사, 수련회 등에 몰래 참석하는 등 반(反)조직행동을 한 것이 드러나, 이에 대해 분회 간부들이 여러 차례 설득 행동(개인적인 설득, 나아가 분회 총회에서의 비판 등)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조직적 행위를 계속하여 분회간부들과 마찰을 빚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퇴직함. 그런데 2년이 지난 2002년, 요시다는 노동조합 때문에 강제로 퇴직당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은밀히 접수(퇴직 강요혐의). 나중에 확인된 바, 요시다의 고소고발은 회사와 경찰 등의 사주에 의한 것이었음.(경찰에서 고발장을 작성해 줌) 고소장 접수 후 비밀리에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2002년 11월 1일, 동노조 우라와 전차구 분회의 분회 간부 7명을 퇴직강요죄의 혐의로 전격 구속하는 한편, 동노조 사무실 및 노조간부 수십명의 자택 등에 대해 압수 수색을 벌임. 그러나 사건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일본 내 반합법 정치조직인 '가꾸마루파'(혁명적마르크스주의파)의 옛 기관지 등을 집중적으로 압수 수색하는 등, 조직사건 날조를 통한 노조탄압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나타냄. 노동운동 관련 구속 자체가 없어져버린 일본에서 이 정도의 사안을 가지고 7명씩이나 구속시킨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으나, 동료는커녕 가족 면회도 허용치 않는가하면 보석 청구도 모두 기각되는 등, 극심한 탄압이 계속되다 구속 344일 만인 2003년 9월경에 겨우 보석 석방.(일본은 구속 기간의 제한이 없음)

우라와 전차구 사건은 평상시 자위대 파병 반대, 미군 기지 철수, 일본 평화헌법 9조 사수 투쟁 등 반전 ․ 평화 운동과 반정부적 활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고,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저항해온 JR동노조 및 JR총련에 대한 정권 차원의 반격, 손보기 작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동조하는 사측과 언론, 나아가 동일본 내 다른 노조들까지 합세한 총체적인 동노조 ․ JR총련 죽이기 공작이라 할 수 있음.

국제노동자교류센터 제공 자료 중에서 



한일노동자 교류 모습출처 : 일본 JR동노조 홈페이지




지금까지 일본 JR동노조 청년부 대의원 대회에 참석하게 된 배경과 JR동노조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다음 글에선 JR동노조 청년부의 대의원 대회 현장 모습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어서 3번째와 4번째 글에선 청년부 간부들과의 교류에서 들었던 얘기와 느낀 점을 얘기하고 5번째 글에선 일본에서 본 궤도노동자의 모습도 보여드리겠습니다. 





20일 오후 2시 넘어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는 수십번을 탔지만 기류에 흔들릴 때면 여전히 무섭더군요. 다른 사람은 안 그런 것같은데.

습기가 많은 일본은 참 덥더군요. 돌아와서 들으니 아내의 말에 의하면 한국은 너무 시원해 추울 지경이었다고 하죠. 원전 때문에 절전 중인 일본은 공공장소의 에어콘은 28도로 맞춰져 있었는데 그래서 더 더웠습니다. 그런데 지진도 없었던 우리나라는 왜 28도인지...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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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1.08.29 0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출장중이신가 봅니다.

    안부 전하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