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 32호 팔만대장경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팔만대장경은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다. 그 자랑거리 몇가지를 들면 이렇다.

첫째, 팔만대장경은 현존 세계 대장경 가운데 가랑 오래된 것일 뿐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둘째, 팔만대장경의 정교한 판각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조선의 명필인 한석봉은 이를 두고 "육필(肉筆)이 아니라 신필(神筆)이다"라고 경탄했다. 

셋째, 18세기 초 각국의 한역대장경을 대조 교정한 일본의 학승 인징은 팔만대장경의 내용과 교정을 모든 나라에서 견줄만한 상대가 없는 대장경이라 극찬하였다.

네째, 팔만대장경은 일본과 청나라에서 새로운 대장경을 조성할 때 핵심원전으로 채택되었다. 일본의 축쇄대장경은 팔만대장경 인경본을 저본으로 1880-1885년에 신연활자 5호로 조성되었으며 청나라의 빈가대장경은 1908-1913년에 종앙이 축쇄대장경을 저본으로 조성한 연활자 4호본이다.

다섯째, 팔만대장경은 자연친화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보존기술력으로 760년 이상 거의 완벽하게 원형을 보존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귀중한 우리의 문화 유산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과 속장경(續藏經)이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된 뒤 1236년 만들기 시작하여 1251년 총 8만 1,258매로 완성되었다.

만들어진 과정은 이렇다.
 




교정과 편집 : 먼저 대장경에 새길 원전을 확정하는 작업이 있었다. 

고려의 초조대장경을 기본으로 하여 송나라의 개보착판 대장경 요나라의 거란대장경 등을 서로 비교하여 오탈자와 내용의 옳고 그름 중복 및 생략 여부 등을 철저하게 바로잡았다. 이러한 교정 작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13세기 중엽 고려 사회의 불교학 연구 역량이 동아시아 지역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목 : 대장경 경판으로 쓰기에 조건이 맞는 나무를 구해야 했다. 

경판 나무는 재질이 균일하여 글자 한 획 한 획이 깨끗하게 파져야 한다. 너무 단단하여 글자 새기기가 어려워 서도 안된다. 너무 연하면 삐침 부분이 떨어져 나가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재질에 맞춰 산벚나무와 돌배나무 등을 골라 썼는데 이런 나무들은 소나무 등 침엽수처럼 집단으로 모여 자라는 것이 아니고 한두 그루 씩 다른 잡목 속에 섞여 수집에 문제가 많았다.  

치목 : 보존과 판각에 용이하게 나무들을 일정 기간 다스려야 했다.

수집된 나무들은 일단 바다뻘에서 2년 간 삭혔다. 그후 나무들은 경판 제작에 알맞은 크기로 잘라 소금물에 삶아졌다. 이 과정에서 나무의 진액이 빠지고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의 소금기가 목재 표면에 발린 상태가 되어 건조할 때 갈라짐이나 비틀어짐 등의 결함을 줄일 수가 있었다. 또 해충의 피해를 막고 조각하기도 쉬워졌다. 이 과정을 거친 나무들은 그늘에 1년 간 말려졌다. 치목은 경판의 수명이나 인쇄의 질을 좌우함으로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했다.


 


판하본 : 나무에 올려놓고 새길 글씨를 준비했다.

대부분의 경판은 초조대장경의 체제대로 한 장에 22-23줄, 한 줄에 14자를 썼다. 판하본은 마치 한 사람이 쓰듯 일정한 서체를 이루고 있는데 당시 대표적 사경 서체인 구양순 필체로 통일하였다. 판하본 작업에는 많은 관료와 유교지식인 승려지식인들이 적극 참여했는데 마치 한 사람이 쓰듯 일정한 서체를 유지하기 위해 교정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쓴 판하본은 경판에 거꾸로 붙여 글씨를 새겼다.





제지 : 경판 인쇄에 쓸 종이를 만들었다. 

종이는 닥나무 껍질과 풀을 섞은 묽은 종이죽으로 만들었는데 닥나무 껍질을 곱게 두들긴 다음 맑은 계곡물에 풀을 섞어 묽은 종이죽을 만들고 이를 체로 받혀 얇게 종이를 떴다.





판각 : 한글자 한글자 경판에 새겨넣었다.

건조된 목재는 정해진 두께로 깎아내고 대패로 정밀하게 마무리하는데 그 오차가 1mm이하로 거의 일정했다. 준비된 판목 위에 글자가 쓰인 면이 나무에 닿도록 판하본 원고를 풀칠해 뒤집어 붙이고 그 위에 다시 한번 풀칠을 해서 말렸다  그리고 나서 글씨가 잘 보이도록 식물성 기름을 얇게 바른 후 경판새김에 들어갔다. 한 경판에 두 면씩 새겼다.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인경 : 한 자의 오탈자도 허락하지 않았다.

판각을 끝낸 경판은 한 장씩 종이에 찍어내어 원고와 일일이 대조했다. 잘못된 글자가 있을 경우, 경판에서 그려낸 후 다른 나무에 올바른 글자를 새겨 그 자리에 아교로 붙여 넣었다. 여러 글자가 틀리면 그 줄을 모두 파내고 새로 끼워넣었는데 이 수정 작업은 매우 정교하여 인쇄 후 수정한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제본 : 불교경전이 태어났다.
 
인쇄에 쓰는 먹은 소나무를 태워 아교와  섞어 만든 송연목을 주로 사용했다. 먹물을 경판에 골고루 칠한 다음 종이를 가볍게 얹고 머리카락이나 말총을 밀랍으로 뭉친 문지르개로 가볍게 문지르면 종이에 글씨가 찍혔다. 인쇄한 종이들을 제본할 때는 구멍을 짝수로 뚫는 중국 일본과 달리 인 의 예 지 신을 상징하는 5개의 구멍을 뚫어 실로 꿰메는데 이러한 방식을 오침안정법이라 한다. 책의 표지는 한지를 두껍게 배접하여 능화문이 새겨진 나무판에 대고 돌로 문질러 무늬를 박아낸 종이를 사용한다. 이렇게 하여 붓다의 말씀과 계율이 새겨진 불교의 경전이 비로서 완성되었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이런 과정을 통해서 팔만대장경은 16년만에 만들어졌다. 팔만대장경은 세계가 자랑하는 그 어떤 것 못지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문화유산인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건축물이 아니라 당시의 학문적 성취를 집대성한 문화유산이다. 헛된 권위를 세우기 위해 수백만의 피지배자를 동원하여 만든 이집트의 피라밋보다 우리의 팔만대장경이 그래서 더 자랑스럽다.   

후손들에게 돌덩어리가 아닌 거대한 문자 유산을 남긴 우리 조상이 참 지혜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출처 : 문화재청





* 이 지혜롭고 거대한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싶으신 분은 11월 6일까지 합천으로 가시면 된다. 팔만대장경이 이날까지만 공개되고 다시 100년 비공개된다고 한다.





참고 자료 : 팔만대장경축제, 브래태니커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판 - 그 실체를 알아본다 

* 갱상도문화학교 추진단 주최의 합천 팸투어를 다녀와서 적는 글입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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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흙장난 2011.10.10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팔만대장경이 우수한 이유는 본문에서도 잘 나와있고,
    저도 따로 책도 보고 자료도 찾아 보고 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근데 <팔만대장경이 피라밋보다 자랑스런 이유>인데
    피라밋보다 어떤 면에서 자랑스러운지 피라밋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나옵니다.
    커서님 제목의 기발함은 때론 감탄하지만,
    이번은 단지 '낚시'

  2. 선비 2011.10.14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 역시 거다란합니다.
    팔만대장경도 명물이지만 대장전도 명물이랍니다.

  3. 팔만대장경 2011.11.28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랑스런 우리문화유산 사진 아주 멋집니다ㅎ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