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지방선거는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 박근혜 의원이 칼에 그인 후 지역 여론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전재수 후보가 명함을 건네면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늘로 던져버리거나 심지어 밟아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느그가 박근혜 찔렀제"라며 삿대질 당하는 건 예사였고 멱살을 잡혀 와이셔츠 단추 뜯기는 일도 흔했다. 

그런 수난 속에서도 전재수 후보는 매일 새벽 2시까지 지역을 돌아다녔다. 전재수 후보는 당시 선거가 두들겨 맞으면서 오기로 버틴 선거였다고 떠올렸다. 2006년 지방선거는 전재수 후보에게 선거가 아니라 저항이었던 것이다.  


전재수 후보 조국 교수를 좀 닮은 거 같아~




2008년은 정말 나오기 싫은 선거였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의 집권 직후인데다 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기 힘든 선거였다. 영남의 야권 후보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하거나 아예 출마를 접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재수 후보는 민주당 후보로 다시 도전했다. 



  

낙선하긴 했지만 성과는 있었다. 전재수 후보는 2008년 총선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에서 38.9%의 의미있는득표를 했다. 이 수치는 2008년 총선 전국의 민주당 낙선자 중 최다득표의 수치이기도 하다. 선거가 끝난 후 노무현 대통령은 욕을 먹으면서도 민주당 간판을 달고 출마한 전재수 후보에게 '정당정치가 기본'이라면서 칭찬했다고 한다.





그러나 2차례의 절망적인 선거를 치르면서 내상이 남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재수 후보는 당이 어디요 물어오면 순간 동물적으로 위축된다고 한다. 지난 2번의 선거에서 민주당이라고 할 때 돌아왔던 유권자의 표정과 반응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전재수 후보 빨간옷이 3벌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달라졌다고 한다. 어느 당이요 물어 민주통합당이라고 대답하면 '당신 됐다'고하는 말이 돌아온다고 한다. 빨간옷을 입은 전재수 후보가 구포시장에 나타나면 상인들이 '저기 재수좋은 놈 온다'며 반겨준다고 한다. 





전재수 후보는 지금까지 5만장의 명함을 유권자들에게 나눠주었다. 말이 5만장이지 이만큼을 뿌리려면 하루에 천명씩 50일을 다녀야 한다. 5만장의 명함을 유권자의 손에 쥐어줄 수 있었던 것은 전재수 후보가 그만큼 열심히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주민들도 전재수 후보에게 호응했기에 가능한 수치다.





1차 투어에서 만난 양산의 송인배 후보는 바닥을 기었다는 표현을 썼다. 송인배 후보는 양산에서만 4번째 출마이다. 전재수 후보는 다른 표현을 썼는데 지역민들과 뒹굴었다고 했다. 두 후보 다 야당 후보로서 지역을 지켜온 고층과 애환을 말하고 있다.

선거운동을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전재수 후보는 걷는 게 선거운동이라고 했다. 그러다 유권자 만나면 악수하고 껴안으며 뒹굴러 댕긴다고 했다. 전재수 후보의 휴대폰 벨소리는 '새나라의 어린이'라는 동요이다. 전재수 후보가 휴대폰마저도 지역민의 정서를 껴안고 있었다.





바닥을 뒹구는 전재수 후보의 선거운동 방식은 트위터에서도 이어진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전재수 후보는 자판을 열심히 치고 있었는데 일어난 자리의 모니터엔 트위터가 켜져 있었다. 전재수 후보는 낮에 지역을 돌아보고 밤에 9시부터 11시 사이에 트위터를 하면서 답글도 달아준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2004년 탄핵풍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탄핵풍에도 한나라당은 부산에서 1석만을 잃었을 뿐이다. 전재수 후보는 2004년 탄핵과 2012년은 또 다른 바람이라며 이렇게 얘기했다. "2004년 노풍과 지금 바람은 다릅니다. 2004년 바람은 노무현이라는 타인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생존의 문제, 바로 자신의 문제입니다."

전재수 후보의 말처럼 선거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나와 너의 이야기다. 박근혜와 안철수의 싸움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생존을 보장받느냐 아니냐의 이야기다. 2012년 선거는 우리 자신의 일자리와 아이들의 보육, 부모님의 노후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2012년 선거의 바람은 노풍도 박풍도 아닌 '우리의 바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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