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안철수에 대해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안철수가 2003년 구속된 SK 최태원 회장의 구명운동을 한 과거를 들춰 공격했다. 책에서 재벌을 비판한 안철수가 재벌인 최태원 구명운동을 한 것은 모순된 행동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철수 측은 즉각 최태원 SK그룹 회장 탄원서 제출에 동참한 사실을 인정하고는 "10년 전 그 탄원서 서명에 대해 당시에도 부담을 느꼈고, 내내 그 일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왔다"고 해명했다. 


박근혜가 어렵게 찾아내긴 했지만 그 비판에 일반대중이 수긍할지는 의문이다. 이념과 생각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동정심도 느낄 수 있다. 정치·경제적인 대립을 인간적인 발로에서 쓰는 탄원서에까지 이어가 문제삼는 건 대중에게 반감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나온 동정론도 있다. 정운찬 전 총리는 1일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친구가 법정에 서 '탄원서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어느 누가 안 써줄 수 있겠냐"며 9년전 최태원 SK회장 구명 서명 건으로 곤경에 처한 안철수 원장을 적극 감싼 것이 그것이다.


이번 일에서 눈길을 끈 건 오히려 안철수의 '대응'이었다. 박근혜 측의 비판에 대해 안철수 측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는 점도 솔직하게 밝혔다. 억지스러워 보이는 비판에 신속하고 깔끔한 대응으로 보통의 정치인과는 다르다는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박근혜의 안철수에 대한 '재벌 탄원서' 공격을 보면서 문득 작년 서울시장 재선거 때 박원순 시장에 대한 나경원 측의 '재벌 기부' 공격을 생각났다. 당시 나경원 후보 측은 박원순 후보가 몸담았던 '아름다운 가게'가 재벌의 기부를 받은 점을 비판했다. 재벌을 중심에 두고 박원순과 안철수, 기부와 탄원서를 대응시키면 두 사건 사이엔 대칭이 만들어진다.


어려운 처지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한 '탄원서'와 '기부' 그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탄원서와 기부는 이념이나 생각의 차이와 상관없이 소통하고 나눌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그 상대가 재벌이라는 점을 들어 공격한다. 인간적인 미덕까지도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 공격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이런 무리한 공격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안철수에 대해 공격할만한 '꺼리'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안철수와 박원순 둘 다 아무리 찾아봐도 딱히 공격할만한 게 없기 때문에 정치·경제의 이념적 차이를 인간적 미덕에까지 끌어들이는 것 아닐까.


한국의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이 가장 잘 쓰는 수법이 '양비론'이다. 이들은 양쪽 다 문제라는 식으로 정치혐오를 부추겨 자신들의 큰 잘못을 가려왔다. 보수진영의 이런 수법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엔 정치혐오가 만연해 있다.


그런데 만능 수단일 것 같은 양비론이 통하지 않는 인물들이 정치판에 나오기 시작했다. 보수진영이 조장한 정치혐오에 대중들이 정말 흠잡을 데 없는 인물들을 '발굴'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중들의 기대에도 부응했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었고 이번 대선에선 안철수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가 재벌의 기부를 받은 것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격은 논란을 야기시켰지만 박원순의 지지율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약간 빠졌던 박원순의 지지율은 다른 이슈로 국면이 전환되자 곧 회복되었다.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안철수에 대한 공격도 새누리당이 기대하는 그런 효과는 없을 것 같다.


‘검증’은 거품빼기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다지기가 될 수 있다. 검증의 칼이 날카로우면 거품을 터뜨리지만 뭉툭하면 다짐질만 해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안철수 같은 견고한 인물들에 대한 어설픈 공격은 오히려 정치인으로서의 굴곡을 만들어 내실을 다져주는 효과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안철수를 향하는 박근혜의 검증 칼날은 뭉툭해 보인다. 현 시점에서 새누리당이나 보수진영의 고민은 안철수에 대해 더 날카로운 공격꺼리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일 것이다. 가만 있자니 점점 부풀어 오르고 그렇다고 입을 대자니 다져주는 꼴만 되는 게 현재 새누리당이 처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서울시장 재선거에서 후보를 못낸 민주당을 조롱했다. 그러나 박원순이라는 제3의 후보를 부른 건 정치혐오를 부추긴 새누리당이었다. 정치가 썩었다며 양비론을 퍼뜨리길래 대중은 정치 밖에서 새 인물을 '발굴'한 것이다. 안철수를 부른 것은 새누리당의 자업자득이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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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chmond 2012.08.02 1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검증’은 거품빼기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다지기가 될 수 있다. 검증의 칼이 날카로우면 거품을 터뜨리지만 뭉툭하면 다짐질만 해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안철수 같은 견고한 인물들에 대한 어설픈 공격은 오히려 정치인으로서의 굴곡을 만들어 내실을 다져주는 효과를 줄 수 있다.' 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