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가 바로 예인선입니다. 일반인들은 '도선'과 '예인'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 도선은 배의 길을 인도하는 것을 말하고 예인은 직접적인 힘을 가해 배를 몰고가는 것을 말합니다. 좌초한 배를 예인하다라는 표현을 흔히 쓰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예인선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배를 끌거나 밀어 목적한 위치로 이동시킵니다. 항구에 들어온 큰 배들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큰 배들은 항구 앞에서 예인에선에 의해 부두에 접안해야 합니다. 출항할 때는 다시 예인선에 이끌려 항구 앞까지 나가야합니다.

 

 

절대로 혼자는 접안할 수 없어요. 죽었다 깨나도 안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도선사가 와도.

 

 


예인선에 대해 설명하던 예인선 노조원 한 분이 눈에 힘을 주며 하는 말입니다. 부산항의 예인선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배도 부산항으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인선은 부산항의 핵심 중에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부산항의 실질적인 동력입니다.

 

 

 

 

예인선엔 또 하나 중요하고도 위험한 역할이 있습니다. 태풍이 오기 전 배들은 피항지로 피항을 해야합니다. 태풍을 피해 피항하는 모든 배들을 한꺼번에 출항시키다보면 예인선은 태풍의 위험을 무릎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태풍 매미 때도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로 모든 예인선 노동자들이 나갔다고 합니다. 그들은 항구의 원동력이자 배의 수호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태풍 때 나가본 적이 있습니까? 작업하기가 불가능한데도 나가라고. 사람들 다 작업했어요.  그때 받은 수당이 만원이랍니다.

 

 

한 선장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부산 광안리 수변공원에 가면 태풍 매미 때 날라온 수톤 무게의 바위가 공원 한 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태풍이 세어도 그 정도의 바위가 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기드문 거대한  태풍 속에 목숨을 걸고 나가 수백억 짜리 배를 지키고 받은 돈이 고작 만원인 겁니다. 이건 진기명기일까요? 아니면 믿거나말거나?

 

 

 

 

더 기막힌 얘기가 있습니다. 예인선 노조원 한 분이 결혼을 했다 칩시다. 그는 결혼식이 끝나고 사랑하는 아내와 4일 동안 꿈같은 신혼여행을 갔다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5일 뒤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아내는 남편이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근무형태라고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립니다. 그러나 남편은 오지 않습니다. 그는 신혼여행을 다녀오느라 쉰 4일을 다른 노동자에게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4시간 근무하고 다시 24시간 또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가 쉰 4일 동안 동료들이 대신한 이를 갚아야 합니다. 어쩌면 신혼의 아내는 최악의 경우 8일 쯤 뒤 남편을 볼 수 도 있을지 모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일주일 휴가가 있습니다 그 휴가를 갔다오잖아요 그러면 내가 일주일 서줘야 합니다. 그건 휴가가 아니죠. 대체인력이 없어요.

 

짝지가 와야 되요 짝지가 한잔 먹고 안오면 올때까지 기다려야 돼요.

 

 

예인선 노동자에겐 휴가가 없습니다. 쉬면 그만큼 다른 노동자가 일하게 되고 나중에 다시 갚아야 합니다. 교대자가 오지 않으면 배를 떠나지도 못합니다. 이 규칙엔 예외가 없다고 합니다. 부모가 돌아가셔도 갚아야 하고 결혼을 해도 갚아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예인선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이 아닌 선원법을 적용받기 때문입니다. 배 위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예인선 노동자에게 선원법을 적용시킵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에 적용받지 못하는 예인선 노동자들은 법정근로시간도 없고 수당도 없습니다. 월차도 연차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인선 노동자들은 보통의 노동자들처럼 노동현장인 배에 출근했다 다시 집으로 퇴근을 합니다. 배위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선원과는 다릅니다. 예인선 노동자들은 배를 타지만 노동환경은 일반노동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올 1월 예인선 노동자들은 법제처로부터 항내만 운행하는 예인선은 근로기준법에 해당된다는 유권해석도 받았습니다.

 

 

 

11일오전 2시30분께 선박건조 작업을 마친 후 예인을 위해 투입됐던 K마린의 K-3호의 기관장 A씨(55)가 밧줄에 다리가 감기면서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됐다.(예선노조파업에 대체투입 선원 다리골절 사고- 뉴시스)

 


파업을 하자 회사에서 대체인력을 투입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사고가 나버렸습니다. 예인작업은 숙련된 노동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입니다. 함부로 대체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회사는 교대근무에 딱 맞는 인원만을 운영하면서 대체인력이 아예 존재할 수도 없게 만들었습니다. 교대근무자가 오지 않으면 퇴근하지 못하는데 대체인력이 있을리 없습니다.

 

 

내 초등학교 아들내미도 사업해먹는다니까요. 땅짚고 헤엄치기예요.

 

 

예인선회사들은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면 부담이 늘어나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 노조원의 말은 좀 다릅니다. 그는 예인선 회사들이 아주 쉽게 돈을 벌고 있다며 탄식합니다. 어떤 식이냐면 한 예인선이 하루에 10건의 일을 했으면 다른 예인선도 그 이상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배가 절대 한 건이라도 더 많이 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예선조합이 있어 예인되는 배를 나눠먹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예인선회사들은 공동협상을 하자는 노조에게 개별협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예인선회사들은 공동분배로 사업을 해왔습니다. 일꺼리 앞에선 하나의 회사처럼 움직인 예인선회사들이 노조원과의 협상은 따로 하겠다고 하는 건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 한국사회는 가만보면 위로 갈 수록 공산주의 식이고 아래로 갈 수록 자본주의가 강해진다. 아래엔 경쟁을 강조하면서 위의 관료나 자본은 의리와 친분을 강조한다. 그들은 우애를 다지면서 아래를 보고 싸우라고 한다. 반대로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밑에는 연대하고 위로 갈 수록 경쟁하는 사회가 더 경쟁력있고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예인선노조 지회장님입니다. 노조원들과 함께 몇달을 각오하고 파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회사는 얼마 버티지 못할거라고 힘주어 말하십니다.

 

결혼휴가 다녀와서 갚아야 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다음 근무 걱정해야한다는 게 기가막힙니다. 태풍 속에서 목숨 걸고 일한 댓가가 수당 만원이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예선노조의 파업 저도 모르게 응원의 주먹이 불끈 쥐어집니다.

 


 

Posted by 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