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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간 플랜카드에 글씨와 그림을 그리는 네팔 아이들

 

네팔 모랑학교 아이들과 보낸 3일

 

처음 네팔을 가기로 했을 때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 전에 미얀마를 다녀왔는데 별 힘든 걸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열악하다는 나라이다. 하지만 주변의 염려와 달리 난 미얀마에서 힘든 걸 느끼지 못했다. 도시의 풍경은 우리나라 60년대였고 불빛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기사정도 열악했지만 그게 관광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호텔은 호텔 다웠고 서비스도 나쁘지 않았다. 호텔과 관광지를 차량으로 움직인 우리에겐 미얀마의 열악함은 지나가는 풍경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네팔은 달랐다. 호텔이라고 도착한 곳에 처음 내렸을 때 잠시 당황했다. 호텔처럼 보이는 건물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나와서 가방을 들어줄 때야 바로 앞에 있던 낡고 어두운 건물이 호텔인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 모텔은 여기에 비하면 특급 중에 특급이었다. 


더운 나라인데도 방엔 선풍기만 있었다. 에어컨은 비싼 특실방에만 있다고 한다. 에어컨이 있어도 무용지물일 때가 많았다. 전기가 자주 끊겼기 때문이다. 물을 아껴 쓰라는 주의를 들었는데 물값이 아까운 게 아니라 너무 많이 쓰면 뒷 사람이 따뜻한 물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네팔의 버스였다. 자리를 다 채워서 가는 버스에 에어컨이 안 나왔다. 버스만 아니라 대부분 차량이 푹푹 찌는 날씨에 창문을 열고 달렸다. 이런 버스를 타고 수도 카투만두에서 네팔의 남쪽 끝 모랑까지 먼지 날리는 흙길을 밤새 달렸다. 목만 살짝 돌려도 느껴지는 끈적거림과 창문도 안 보이는 덮덮한 먼지 속에서 한숨도 자지 못한 채 15시간을 버스에 갖혀 있었다.


우리 일행이 네팔에 온 건 모랑에 있는 초등학교 증측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곳 학교가 한국의 단체와 개인의 후원으로 학교를 증측하게 되면서 증축식에 한국의 후원자들을 초청한 것이다. 단순히 증축식 참석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네팔의 학교후원사업은 한국에서 일했던 네팔 이주노동자 단체와 합작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다. 현지 실정을 파악하고 네팔 이주노동자와 현지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보다 긴밀한 연대사업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모랑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조금도 쉬지 못하고 곧바로 아이들이 기다리는 학교로 가아 했다. 평지에 남쪽에 있는 모랑은 고지대에 북쪽에 있는 카투만두보다 더 습하고 더웠다. 밤새 달린 버스에 지친 우리를 더 숨막히는 모랑의 더위가 맞이한 것이다. 호텔에서도 에어컨을 찾기가 어려운 이곳에서의 나흘 중 첫날이라 생각하니 몸은 더 쳐졌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 앞에서 활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폭염 속에서 백명이 넘는 아이들이 우리를 반기며 교실에서부터 뛰쳐나왔기 때문이었다.





학교 앞에 마련된 개교식장은 차양을 쳐서 햇볕은 피할 수 있었지만 습한 더위는 빽빽히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더 기승을 부렸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러나 바로 몇 미터 앞에 있는 생수통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식장 중간에 앉아 오도가도 못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있는 백명이 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도저히 나 혼자 목을 축일 수가 없었다. 얼마뒤 아이들에게 물 한모금씩 나눠진 후에야 나도 물을 들이킬 수가 있었다. 



참가자들이 네팔 모랑초등학교에서 직접 수업을 진행했다.

제기만들기 후 제기차기 하는 모랑초등학교 아이들.



그렇게 해서 그날 들이킨 물이 생수병 5병이 넘었던 것 같다. 마시고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조금만 돌아다니면 땀에 범벅이 되었고 그러면 갈증에 벌컥대며 생수 한 통을 마셔댔다. 신기한 게 그렇게 물을 많이 마셨는데 학교에서 소변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나중에 호텔에서 화장실에 갔는데 소변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모두 땀으로 다 배출된 것이었다. 그 다음날도 학교를 찾아갔는데 전날과 비슷한 양의 땀을 흘렸고 마찬가지로 소변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그때부터 였던 것 겉다. 이후론 덥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못했다. 더우면 더울 뿐 그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라면 목을 흐르는 한 줄기 땀에 턱을 처들어 털어내고 땀에 달라붙은 옷의 끈적거림에 주춤거리며 걸었을텐데 네팔에선 땀에 젖은 몸을 그대로 내버려 뒀다. 내가 애써 참은 게 아니라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도무지 더위를 피할 데가 없으니 몸이 더위에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은 것이다. 


몸을 타고 흐르는 땀을 끈적거린다고 닦아내지만 사실 그 땀은 몸을 식혀준다. 에어콘이 있어 더위를 피할 수 있다면 이 땀에서부터 더위에 대한 반응이 시작된다. 땀이 없어도 에어컨이 식혀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위를 피할 데가 없는 곳에서 땀은 몸을 식혀주는 거의 유일한 기능이기 때문에 땀에 몸이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사실 더위라는 게 더위 그 자체보다 끈적거림 같은 사람을 신경 쓰이게 하는 부분이 더 더위를 크게 느끼게 한다. 땀에 덜 신경쓴다면 더위로 인한 불쾌감은 줄어들 수 있다.  


요즘 나는 왠만한 더위에도 덥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네팔을 다녀온 이후로 왠만큼 덥지 않으면 차에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물론 덥다. 자동차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 바람도 덮덮하다. 그러나 참을만 하다. 더위를 피할 데 없는 네팔에서 땀을 흠뻑 흘려본 며칠간의 경험으로 인해 땀과 끈적거림에 대해 덜 신경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할 때 해석을 보지말고 계속 읽어보란 조언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해석을 안 보면 답답해 미칠 것 같아 거의 대부분 답안지의 해석을 확인했다. 그래선지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영어 실력은 거의 늘지 않았다.차라리 그 시간에 한글로 된 우리 책을 더 많이 읽었더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더위를 피할 데가 있다면 몸은 더위를 극복하는 법을 배우기 힘들다. 에어컨이란 답안지의 유혹을 몸이 떨쳐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네팔이 내게 준 깨달음은 이런 것이다. 몸의 배움을 얻고 싶다면 몸의 답안지를 치워라. 부족하면 답안지 없이 공부하는 것처럼 당장은 답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몸으로 스스로 익힐 수 있다. 답안지를 치울 자신이 없다면 답안지가 없는 곳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네팔에 여행가고 싶다면 아래 여행사를 이용해보길 권한다. 이주노동자가 운영하기 때문에 한국말로 상담받을 수 있다. 그리고 운영자는 네팔학교 후원사업을 같이 하고 있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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