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발이는 재밌었다. 사랑이 뭐길래에서 하희라와 최민수의 사랑은 사람들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번지게 했다. 그들의 사랑 사이에 터져 나오는 대발이 아버지의 호통은 웃음을 터뜨리게했다. ‘맞아 맞아’ 하면서 한껏 몰입했고 유쾌하게 시청했다.

그러나 며느리전성시대는 재미없다. 신혼인 두 사람의 사랑연기는 맛깔스럽지 않다. 남편이 좋아 마냥 까부는 미진의 모습은 유난스럽다는 느낌만 든다. 차라리 복수동생과 미진오빠의 사랑이 더 눈길을 끄는데 최근엔 이마저도 시들한 느낌이다.

연기 탓일까? 그보다는 시대차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15년 전은 그래도 며느리가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했던 때였다. 결혼을 앞둔 여성에게 시부모님 모시고 살겠냐는 질문을 tv 앵커들이 서슴없이 들이댔고 질문 받은 여성들은 대부분 모시겠다는 모범답안을 내곤 하던 때였다.

그러나 지금 여성들은 시부모 모실 각오를 하고 결혼하진 않는다. “요새 누가 시부모 모시고 사냐”는 말이 드라마 연기자들 입에서 쉽게 튀어나온다. 혹시나 시부모 모시고 살자고 고집 피우는 희안한 남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는 정도다.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아버지 배역 비중은 컸다. 그 당시 시집살이는 결혼의 전제조건이었기 때문에 얘깃거리가 못되었다. 시집살이 자체에 대해서는 저항을 할 수 없었고 좋은 시부모 만나길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의 관심은 대발이 부모가 얼마나 별나냐에 맞춰질 수 있었다.

그러나 ‘며느리전성시대’에서는 별난 시할머니에게 눈길이 가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도대체 왜 미진이 대가족의 일 많은 집안에 시집갔을까하는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한다. 드라마는 미진의 시집살이 선택에 대한 의구심을 “미진이 복수를 너무 사랑하니까”로 넘기려고 하지만 시청자의 눈길은 좀처럼 넘어가지 못하고 미진의 연기를 민망스럽게 바라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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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전성시대’ 10월20일 방영분에서는 시어머니가 외출을 하는 바람에 일어나는 소동을 다루었다. 언제나 시할머니의 명령을 떠받들고 살던 시어머니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시도를 하게 되고 그 바람에 며느리 미진이 직장일도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음식점 시중을 들게 되는 해프닝을 다루었다.

여성들은 이 소동에서 서로에게 하기 싫은 일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어머니가 외출하면서 딸과 며느리에게 일이 넘어갔고 딸은 거짓 핑계를 대고 일을 며느리에게 몰아버린다. 며느리 미진은 집안 일 때문에 하지 못한 직장일을 고모댁 형님에게 다시 떠넘긴다. 일을 넘기거나 핑계를 대며 상황을 탈출하는 여성들의 표정은 수업시간 땡땡이 치는 아이의 유치한 모습과 닮았다. 가족질서 속에서 여자들은 어린아이 모습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여자들은 모두 성격이 정상적이지 못하다. 사회성 없는 시어머니는 답답한 행동으로 웃음을 산다. 며느리 미진은 뒷감당 생각 안하고 아무렇게나 일을 저질러 빈축을 산다. 복수의 동생은 현실과는 완전히 담쌓은 사람이다. 송선미가 분한 수현의 시어머니는 히스테릭의 극치를 보여준다. 미진의 엄마는 까탈의 극치다. 그 와중에 수현은 외도를 한다.

반면 남자들은 아주 온화한 성품의 인격자로 나온다. 복수의 아버지는 예의와 사리에 밝다. 복수는 분명하고 사려깊다. 미진의 오빠는 유쾌하고 호탕하다. 미진의 아버지 이영하는 부드러움의 극치다. 가족 질서 내에서 어린아이처럼 구는 여성과 달리 남성들은 가족의 질서를 관장하고 조정하는 절대자요 지배자로 비춰진다.

며느리전성시대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미진의 며느리로서의 성공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새롭게 들어간 가족질서에 잘 적응하고 맞닥뜨리게 되는 갈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유쾌한 얘기가 될 듯하다.

그러나 현실의 가족은 미진이 상대하는 복수집안처럼 만만하지 않다. 미진처럼 한 가족의 질서 내로 들어가는 경우 현실에서 느끼는 가족의 무게는 엄청나다. 아무리 작가가 복수집안을 희화화 했어도 시청자는 대가족의 고단함을 알고 있다. 미진이 즐거운 척 발랄한 척 연기해도 시청자들은 미진에게서 안스러움을 지우기 힘들다. 드라마처럼 하루 종일 쌓인 가족의 짓눌림이 저녁에 퇴근한 남편의 다독임으로 한순간에 풀린다는 것도 마치 코 큰 남자가 여자에게 인기 있다는 속설만큼이나 웃긴 얘기다.

하희라같이 똑 부러진 며느리는 몇 명이나 될까. 미진처럼 설렁설렁거리며 잘 상처받지 않는 여성은 또 얼마나 될까. 새로 부여된 가족질서를 극복한 덜렁사원 미진은 지혜롭고, 시어머니와 갈등에 진저리를 치는 회사의 팀장 송선미는 어리석은 여자일까.

문제는 여성의 품성이 아니라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된 가족질서이다. 자신들을 위해 자신들이 만든 질서 속에서 남성들이 고민할 것은 없다. 남성들은 이 질서 속에서 인격자와 절대자의 모습을 지켜낼 수 있다. 반면 여성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질서 속에서  항상 갈등하고 핑계 대고 용서를 구하는 철딱서니가 될 수밖에 없다.

해결법은 갈등의 원천인 일방적인 가족질서를 여성들이 거부하는 것이다. 좀 과격한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사회가 ‘며느리전성시대’같은 드라마로 전통적 가족질서를 미화하면서 여성들을 압박하는 짓만은 삼가야한다. 최소한 “미진처럼 해봐라” “하희라 봐라”라는 식의 소리가 며느리들 만난 시부모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해야한다.

며느리전성시대는 전통이라는 미명을 걷어버리면 온갖 여성차별적 시각으로 점철된 드라마이다. 전통을 보호막으로 여성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이런 드라마 이제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KBS는 ‘며느리 전성시대’를 그만 방영했으면 한다. 이건 재미도 없고 시대에도 맞지도 않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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