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엔 지역신문이 부산일보와 국제신문 두개가 있습니다. 둘 중에 국제신문을 주로 봅니다. 판매부수로는 부산일보가 앞서지만 국제신문이 더 재밌는 기획물이 많습니다. 국제신문 기사 중에 제가 반드시 놓치지 않고 보는 기사가 있는데 바로 충남대 서영교박사의 <전쟁과 시장>입니다. 




이 기사에서 서영교박사는 역사 속에서 전쟁이 어떻게 시장과 관계했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현대에 어떻게 이어져 오는지도 드러냅니다. 그의 기사를 보고나면 시장 없이 전쟁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전쟁은 시장의 산물인 겁니다.   




이번 주엔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철포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처음 일본인에게 철포(조총)을 가르쳐 준 건 포르투칼인들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빨랐습니다. 포르투칼인에게 철포를 받은지 50년만에 유럽을 능가하는 철포를 만들어냅니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한창 때 일본의 철포 숫자는 유럽대륙 전체의 철포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철포의 보급으로 인해 일본의 전쟁에도 시장이 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비싼 철포를 구입할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쟁으로 시장도 발달하게 됩니다.




일본에 철포가 들어온지 50년 뒤, 일본은 조선침략을 획책합니다. 그쯤에 대마도도주는 조선에 일본의 철포를 바칩니다. 조선과의 교역으로 이익을 얻는 대마도주로선 일본의 조선침략이 이익이 될리 없습니다. 대마도도주는 조선이 철포로 무장한다면 일본의 공격의지도 수그러들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조정은 철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철포는 활보다 사거리도 짧고 연속으로 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편한 철포에 일본인들은 왜 그렇게 열광했을까요? 그건 철포의 조작이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활을 숙달할려면 몇년이 걸리지만 철포는 단기간이면 가능합니다. 조선조정은 단기간 대병력 양성이라는 철포의 진정한 위력을 몰라봤던 겁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철포 전투력을 직접 본 광해군은 철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1만 철포 병력을 양성했다고 합니다. 이때가 조선화력의 절정기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광해군은 유학자들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조선은 현실주의자 광해군이 물러나고 다시 친중주의자가 날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00년 뒤 조선은 다시 일본의 침략을 받고 정복 당합니다. 이 대목에서 현실주의자 노무현이 물러나고 친미주의 세력이 집권한 오늘의 현실이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과연 친미주의 세력이 계속 집권하는 이 나라는 몇년 뒤 어떤 봉변을 당하게 될까?


아쉽게도 서영교박사의 연재는 12월29일 끝납니다. 지난 24일 서영교박사는 기사를 끝내면서 국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국제신문 인터뷰 기사 : 본지 연재 '전쟁과 시장' 마치는 서영교 박사

서영교박사의 국제신문 연재물은 지난 11월 전쟁기획자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여 나왔습니다. 서영교박사의 책처럼 재미와 가치를 동시에 가진 책도 드물어 보입니다. 자신있게 권해드립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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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5 15: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또, 도쿠가와가 세력을 잡는 에도막부 시대가 열리면서 일본에서 총기는 외려 천대받기 시작했습니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도쿠가와 가문이 총보다 좀더 일본적인 장도를 선호하면서부터 그랬습니다.

    그래서 19세기 중엽에 일본의 쇄국정책을 거두게하려고 찾아왔던 영국인들, 프랑스인들, 미국인들은 당시 일본인들이 자기네들이 16세기에 쓰던 조총을 아직도 쓰고 있다고 비웃었죠.

    사실 우리도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안동김씨 일파가 세도정치를 펴고 과학기술을 무시하여 총기류는 오히려 수백년전보다 성능이나 수가 더 떨어졌습니다.

  2. 2008.12.25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승총이 머스켓보다 훨씬 일찍 나온거 아시죠? 머스켓총을 사용하는 전쟁을 보여주는 영화로 '패트리어트:늪속의여우'가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면 조총(일본식 화승총)이 정말 쓸 가치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횡대로 5-6열로 구성된 머스켓부대는 앞사람이 쏘고 뒤에 있는 사람들이 장전을 하는 식이거나 좀 조직력이 덜 떨어진 군대는 열 교대 없이 쏘고 몇분동안 장전하고 쏘고 몇분동안 장전하는 식입니다.

    이것은 현대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당히 불편한 것입니다. 총을 쏴서 죽이는 경우는 사실 별로 되지 않고 쏘면서 거리가 가까워지는데 거리가 거의 맞닿을 때 백병전을 누가 잘하느냐에 따라서 더 승패가 좌우되었습니다. 당시 최정예 대영제국 머스켓보병의 장전시간이 2분에 3발이었다고 하더군요. 이후 좀더 개량된 라이플과 미국 콜트의 연발권총이 나오고 나서 총기간의 전쟁으로 완전히 굳어졌죠.

    그러니까, 조총이 머스켓보다 먼저나온 것을 감안하면 당시 아무리 유럽보다 개량되었다고 하더라도 고작 위력이 조금 나아진 정도이며 여러면에서 상당히 후진적이며 실전적으로 기병이 아닌 궁대나 보병을 상대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습니다. 사정거리로 보나 위력으로 보나 월등한 활을 들고 있는 궁대에게 그야말로 발렸겠죠.

    북미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던 당시 영국의 경제력이 나머지 유럽 국가들을 몽땅 합친거와 거의 맞먹었는데 유럽에 차차 잠식되어가던 아시아의 변두리 국가 일본이 유럽보다 훨씬 개량된 총기류를 만들었다는 것은 솔직히 과장된 것 같고요(부산 신문이란데가 원래부터 친일했기에), 그냥 유럽식 전쟁에 보편화되었던 화승총을 산지가 많은 일본의 지형에 맞게 개량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이 전쟁에 진 이유는 조총보다는 내부에 있습니다. 당시 조선군을 모두 합친 수는 지역 예비군 비슷한 것까지 포함해서 5-6만에 불과하였고 왜군은 아시다시피 직전신장(오다 노부나가), 풍신수길(원래 목하등길랑), 모리가, 덕천가 등등 여러 토착세력가들이 싸우는 전국시대가 막 끝난 시점이었기에 군사력이 어쩔 수 없이 강해지고 권력층에 의한 살인이 많아지면서 사회가 경직되었고 전쟁에 승리한 사무라이들이 영지를 받지 못해 불만이 쌓이면서 전쟁을 이끌만한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쳐들어올 작전이었다면 17세기에 왜군이 쳐들어온 것은 다행입니다. 만약 일본이 총기류를 꾸준히 발전시켜 우리 선조들이 쓰던 활이나 검을 그야말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라이플을 가지고 들어왔다면 조선은 병력이 많아도 이길 수 없었겠죠. (당시 조선이란 나라가 얼마나 형식적이고 유교적인 것을 쓸데없이 중시하였기 때문에 조총따위는 쳐다보지도 안았을 겁니다.)

  3. asiale 2008.12.25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님아 .. 일본의 화력이 유럽보다 컷다고 표현해서 친일이라고 굴레를 씌우는것은 정말 웃기네요...
    조총이 활보다는 약한무기이지만 사용이 매우 쉬어서 초보도 운용할수 있지요..
    금방군대를 조직할 수 있고, 공장을 만들면 대량생산도 가능하기에 활보다 헐 유용하고 자본주의 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지요..
    그리고, 거다라님은 남한을 비웃네요 ㅋㅋ
    친미주의자가 판친는 남한이 맘에 안드시나보네요...
    그래도, 수령님이 판을 치는 북한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혹은 공산주의 독재가 판을 치는 미얀마나 쿠바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4. ㅇㅇ 2008.12.25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향을 떠나서 친미주의자가 판을 친다라...여기에 비판적 시각이 엿보이네요.
    그래도 자기네 인민들도 못 먹여살리고 달러 퍼부어서 관광간 사람을 쏘아죽이는 친북주의자가 판을 치는것 보단 차라리 친미주의자가 많은게 나은 것 아닌가요?
    물론 그 친미라는 것이 그 정도가 과도하지만 않으면 정도가 동일하다면 북한이나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미국이 나은것 같습니다만...

  5. lime 2008.12.25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asiale. 반미 하면 공산주의자 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마인드가 더 궁금한데요.

  6. 중요한 것은 2008.12.25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미 반미 라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현 시점에 중요한것은 형식적인 유교만 따지다 시대에서 뒤처지듯이 쓸대없는 이념에 대한 논쟁 보다는 앞으로 이나라가 우리들 국민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된다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현 정부에서는 자신들의 의견에 반하거나 시위를 하면 빨갱이로 몰아 새웁니다
    이 어디 어처구니 없는 구 시대적 발상이며 한심한 논리 인지요 논리적으로 틀린것을 지적하고 아니라고 하는데 그것에 대한 정당한 발언이 아닌 무식한 우격다짐의 횡포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듯 굳어버린 뇌로 발전없는 이념을 따질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논의를 해야 한다 보입니다
    제발 이 글에서도 글에서 서영교 박사께서 그런 발언한게 걸리긴 하지만 그것에 발끈하여 그걸로 물고 늘어지지 말고 발전 없는 현 사회를 보는게 옳지 않나 싶습니다.

  7. 아무러면 어때 2008.12.26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미냐 친북이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광해군과 같은 냉정한 현실주의를 갖는게 중요합니다. 아쉽게도 친북을 운운하는 분들의 상당수가 누군가와 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지요. 중국이나 일본, 또는 북한보다 미국이 낫다는 것 자체가 우습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외교란 힘의 논리이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운용되는 것이지 박애정신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따라서, 믿을 건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의 이익이 된다면 누구랑도 친해질 수 있는 겁니다.

  8. 중요한 건... 2008.12.29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미냐 반미냐가 중요한 게 아니죠.
    이래서 역사를 똑바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니깐.......
    조선이 당시 임진왜란을 겪고 그 뒤로도 정신 못 차리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건,
    그저 당리당략에 치중해서 싸우느라 새로운 것을 빨리빨리 받아들이지 않고, 명분만을 생각하고,
    과학기술을 중시하지 않고, 폐쇄적이었기 때문이었죠.
    친미네 친일이네 쪽바리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 말고 뛰어난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본받는 자세가 필요하죠. 한국인들은 쓸데없이 허영심과 자존심만 넘 강해요.
    한국은 근대기에 광해군 이후 친중으로 돌아서서 쇠락했고, 일본은 친중을 하지 않아 강성해진 게 아니잖아요. 일본은 중국에서든 유럽에서든 그들의 개방요구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교역을 해서 새로운 문물에 빨리 눈을 떴기 때문에 강해질 수 있었던 거지....
    좌파든 우파든 암튼 지금도 이렇게 이상한 논리 들이대는 사람들 보면 참 답답합니다.

    • 커서 2008.12.29 13: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국 외부의 세력과 결탁하려는 자들이 나라를 망쳤다고 말하는 겁니다. 친중주의자들로선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 판을 흔드는 것보다 중국에 매달리는 작은 나라로 만드는 게 더 좋죠. 마찬가지로 친미주의자들은 계속 한국을 미국에 의존적인 나라로 만들어 두어야 자신들의 권력이 계속 유지되는 겁니다. 결국 한국의 문제는 친미나 친중주의자 같은 외세의존적인 자들이라는 겁니다.